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수저 없는 밥상
수저 없는 밥상
  • 홍기확
  • 승인 2015.08.20 11: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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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95>

 어릴 적. 어머니의 밥상에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다. 아니 원초적으로 밥상에는 어머니의 자리가 없다. 대식구인 형편상 밥상에는 어떻게 자리배치를 해도 어머니의 자리는 없다.
 식구(食口)라는 단어의 뜻답게 밥상머리의 주인공들은 시키지 않아도 잘만 먹는다. 최초의 한명이 밥을 먹고 일어서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부엌에서 주섬주섬 수저와 밥을 챙겨 들고 빈 자리에 자리한다.
 좋은 반찬은 동이 났다. 남은 건 생선찌꺼기, 아무리 해 뒤집고 해체해도 별 볼일 없는 닭고기의 갈빗살, 사형당한 듯 남은 콩나물 무침의 콩나물 대가리들, 제육볶음의 아웃사이더 양파뿐. 그것도 설거지를 하기 위해 허겁지겁 빨리 먹는다.

 어머니의 말,

 “예전부터 빨리 먹어서 지금도 빨리 먹어.”

 무슨 밥을 그리도 빨리 먹느냐는 내 질문에 대한 한결같은 답이다. 모든 것이 담겨있는 어머니의 식사에 대한 불편함. 언제나 쓸쓸하게 들리는 건 단지 내 느낌만일까?

 나는 식당에 가면 누구보다 빨리 수저를 밥상에 늘어놓는다. 상이 한 개든 열 개든 손에 한 움큼 수저를 쥐고 기계적으로 늘어놓는다. 분명 밥상에는 사람만큼의 수저가 있어야 한다. 자리가 있어야 한다. 내 행동은 어머니의 그간 없었던 자리에 대한 절규이며, 신성한 배려다.
 직장생활이 어느 정도 연차가 되자 후배들도 늘었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무릎까지 꿇어가며 수저를 놓는 걸 보면 후배들이 앉아있질 못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요. 제가 할게요.
 싫어. 싫다. 싫다니까. 내가 자리를 만들 거야.

 어머니와 식사를 한다. 나는 병적으로 수저를 놓는다. 반찬을 깔아 놓는다. 그릇을 치운다. 밥상을 닦는다. 설거지를 한다.
 본인의 역할을 빼앗긴 어머니는 여간 어색해 마지않는다. 못내 도와주지만 세월과 습관은 이리도 지독해 떨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약이요. 습관은 바꾸면 되는 것이요.

 어머니는 닭다리와 닭날개를 좋아하신다. 퍽퍽한 살은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에 안 일이다.
 어머니와 나는 경쟁자였다. 나는 닭다리와 닭날개를 좋아한다. 퍽퍽한 살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 다리와 날개는 내 몫이었다.
 어머니는 생선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며, 돼지갈비를 삽겹살보다 좋아하신다. 짜장보다는 짬뽕을 좋아하며, 생선구이보다는 조림을, 생선지리보다는 벌건 해물탕을 좋아하신다.

 이렇게 나는 늦게 안 것도 많다.
 수저 없는 밥상에 수저를 놓는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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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리 2015-09-08 11:36:25
후회하기 전에 늦게 알아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멈추어서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고마운 글 감사합니다.

어머니라는 이름 2015-08-20 13:50:41
코끝이 찡해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는 군요

'사형 당한 콩나물 대가리' 등 남은 반찬의 비유에선 적절하고 깔끔한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덕분에 항상 좋은 수필 한 편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