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수업은 바로 우리 학교에 있어요!”
“아름다운 수업은 바로 우리 학교에 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7.20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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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제주매일 공동기획] 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9> 장곡중학교를 만드는 사람들

장곡중의 대원칙 “교사와 교장이 동등한 위치에서

학생들의 배움만 생각하면 기쁨 두 배, 사랑 두 배“

장곡중학교.

조금 희한했다. 교사와 교장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장곡중학교의 교장실 분위기가 말이다. 미리 취재 약속을 잡고 학교에 들어서자, 교사들이 스스럼없이 교장실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책상에 교장이 앉아있었지만 간단히 취재진을 소개할 뿐, 교사들은 마치 교장이 그 자리에 없는 듯 장곡중학교의 교과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여러 학교를 다녀왔고 모두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혁신학교’였지만 그래도 교사들은 교장실에 들어설 때면 어김없이 긴장을 하거나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이기 마련이었다.

# “우리 학교 수업은 정말 아름답거든요!” 열혈 교사들

취재진이 만난 교사는 박현숙, 이경숙 교사였다. 제주출신이기도 한 박현숙 교사는 이 학교의 수석교사다. 두 교사 모두 장곡중이 ‘별 볼 일 없던’ 2006~2007년 이 학교로 와 2010년 혁신학교를 함께 준비하고 성공적인 안착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장곡중에서 가장 열정적이라는 이 두 교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곡중이 그저 경기도의 한 중학교였을 때 두 교사는 각자 교직생활에 재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1988년 초임 이후 18년째 교단에 서 있던 이경숙 교사는 남편이 능력만 되면 교육계를 떠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장곡중은 힘든 학교였다. 학생지도도 어렵고 학부모 대하기도 녹록치 않았다. 장곡동은 염전이었다. 며느리들이 재산세를 내기 싫어 상속을 거부하는 땅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 무렵 박현숙 교사도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국가가 교사들에게 원하는 것은 충실한 전달자 역할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전달자가 아닌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그러던 때 장곡중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며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너무 바빴죠. 초등학교와 달리 과목마다 담당 교사가 다르니 통합수업을 준비하려면 다른 과목의 교과과정부터 알아야 하잖아요. 11월부터 다음해 신학기 수업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예전엔 이렇게 바쁘지 않았지만 급여가 많다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아이들 가르치는 게 힘드니까. 지금은 급여에 대한 생각이 없어졌어요. 월급을 안 줘도 일할 것 같은데요(웃음).”(박현숙 교사)

교사들은 통섭의 시대, 융합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통합적 고찰이 전제되는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문자와 도표들이 아이들의 삶과 직결될 수 있도록 아이들의 흥미와 배움의 의미를 일깨워줄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은다. 수없이 거듭되는 회의에 회의를 거쳐 하나씩 크고 작은 규모의 교과통합 수업 안이 만들어졌고, 프로젝트 수업은 전체 교육 과정의 절반을 넘어섰다. 교사들은 <어! 교육과정? 아하! 교육과정 재구성!>(맘에드림 출판사)이라는 책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길을 걷다가도 수업을 설계해요. 설거지를 하다가도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쳐볼까? 아이디어를 내죠. 굉장히 즐거워요.”(박현숙 교사)

# 괴짜 교장 “불필요한 것은 싹 걷어버려”

박현숙 교사가 월급을 안 줘도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제야 교장이 취재진에게 다가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월급을 안 주면 누가 일하느냔다.

장곡중 교장실에는 화려한 교장 명패대신 '장곡 참일꾼 정용택'이라고 새겨진 소박한 명패가 자리잡고 있다.

정용택 교장은 ‘괴짜’ 인상이었다. 첫 인상처럼 그는 교장계의 괴짜가 맞긴 했다. 책상에는 엄숙한 명패대신, 나무판에 부드러운 문체로 ‘장곡 참일꾼 정용택’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정말 ‘참 일꾼’이다. 모든 초점을 학교와 학생에 맞춰 불필요한 허례허식은 걷어버렸다.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던 연못을 덮어 농구장을 만든 일이었다. “연못은 불필요해요. 관리비나 들고, 추울 땐 보지도 안잖아요.” 정 교장이 오고 중앙 현관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마주칠까봐 아이들이 잘 이용하지 않던 곳에 탁구대를 놨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3일,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탁구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중앙현관은 춤 동아리 아이들이 춤을 연습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교장이 부임하면 으레 행하는 리모델링은 생각지도 않았다. 대신 직전 관리자가 구조변경을 하며 버렸던 소파와 신발장 등을 가져와 교장실 앞 복도를 북 카페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드나들지 않던 중앙 현관에 탁구대가 놓이자 아이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다.

“고치고 이러는 건 내가 가고 나면 원 위치로 될 것 같았어요. 내가 있을 때 뭘 확 바꾼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정 교장이 맡은 가욋일은 학생들이 만든 고추장을 관리하는 일 정도가 됐다. 교화인 연꽃이 학교에 없어 연꽃을 사다 심었고, 기존에 있던 등나무 벤치에 칡을 심어 ‘칡과 등나무가 얽혀 다툰다’는 한자어 ‘갈등(葛藤)’을 벤치에 붙이고 이곳을 아이들이 갈등을 해소하는 자리로 명명했다.

# 진정한 각자의 역할

그리고 또 하나, 그가 꼭 잊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은 졸업생들을 찍은 사진을 복도에 걸어두는 일이다. 2012년 부임한 이후 매년 잊지 않고 챙긴다. 학생들이 언제라도 아들 딸 손잡고 학교에 왔을 때 “저기, 아빠 있다”는 자그마한 흔적 하나는 남겨두는 게 교장의 작은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서다.

“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나서서 내 생각대로 이끌고 허례허식을 행하기보다, 교사와 학생이 미처 못 하고 지나가는 일을 해 주는 것이죠. 대신 학생과 교사는 수업에 집중하고요.”

장곡중 인근 고등학교의 상위 10위권 아이들 중 9명은 장곡중학교 출신이란다. 학교 수업이 만족스러워질수록 아이들이 고교로 진학했을 때 적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지만 오히려 중학교 3년동안 익힌 문제 해결 능력과 뛰어난 텍스트 해석 능력은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길러줬다.

“어떤 학교는 책상배열만 ‘디귿’자에요. 수업은 하나의 답만 구하는 방식으로 하면서요. 저는 수석교사로서 가끔 다른 선생님들 앞에 설 기회가 있을 때 물어요. ‘당신은 사랑하는 수업이 있습니까’라고요. 선생님들은 지금의 여건에서 힘든 일이라고 말해요. 그러면 저는 말하죠. 우리 학교 수업은 정말 아름답다고요. 다른 학교에 있을 때는 교사로서 세월이 주는 성장만 있었죠. 하지만 혁신학교를 준비하고 수업 안을 재구성하면서 나의 성장이 급격히 일어나니까 너무 행복합니다. 이게 진즉 이뤄져야 했을 ‘학교의 모습’은 아닐까요?(웃음, 박현숙 교사)”

<미디어제주 김형훈기자,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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