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조각모음
일상의 조각모음
  • 홍기확
  • 승인 2015.07.20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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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94>

 삶이란 건 의외로 간단하다. 태어났다. 살았다. 죽었다. 한줄 내지는 세 문장. 문장단위로 문단을 할애한다고 해도 세 문단이면 족하다.
 구태여 늘어본다면 일반적인 경로로 태어나서, 초중고대학교를 취사선택하여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옵션을 실행하거나 안 하고, 결국에는 죽으면 그 뿐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삶은 ‘일상(日常)’으로 채워진다. 세월이 흐르며 일상은 파편이 되고 조각이 되어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컴퓨터도 오래 쓰면 파일이 엉클어지고 제자리를 찾지 못해 속도가 느려진다. 이때 하는 것이 디스크 조각모음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면 좋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도 가끔은 조각모음이 필요하진 않을까?

 일상의 조각들이 도처에 늘어져 있다. 손으로 거두어 줍기에는(收拾) 크고 작은 조각들이 너무 많이 널려 있다. 이 서랍 저 보관대에 어지러이 담겨 있다. 홀연히 여행을 떠나려고 해도 이일 저일, 핑계와 약속들로 인해 마음과 정신을 수습하기 힘들다.

 이럴 때는 질문을 던져본다.
 스무 살, 그때 여름에는 뭘 했을까?
 작년, 그때의 오늘에는 뭘 했을까?
 어린 시절, 칠판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수학문제를 지금은 풀 수 있을까?
 어렸던 그때, 그때의 친구들은 다들 무엇이 되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 그때의 사소했던 고민, 커다랬던 고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일상은 곧 인생이다. 그때의 일상들은 새로운 일상으로 대체되고, 과거의 일상들은 오늘의 간섭으로 잊혀간다.
 우리는 모두 결과가 뻔한 길을 걷는다. 다만 과정은 다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일까? 일상의 반복이 인생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은 일상의 조각조각들로 완성되는 것일까?
 편한 질문으로 가뿐하게 인생을 사는 것에 회의적인 것은 여전한 나의 가치관이다. 사소한 것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은 바꿀 수 없는 나의 사고방식이다.

 구름이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비구름임을 의미한다. 비가 내리겠다는 것이다. 가젤이 빨리 뛰는 것은 육식동물이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곧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사람이 빨리 움직이는 것은 파편들을 양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상의 조각모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 하늘을 보니 구름이 빨리 움직인다. 비를 내리겠다는 것인가 했더니,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비가 올 것인가, 말 것인가? 먹구름 사이 맑은 하늘, 이런 바쁜 일상의 여유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가?

 문득 든 생각. 일상의 조각모음이구나.
 혼자가 좋다. 가끔은 혼자여야만 한다. 사람과 있으면 사람을 봐야지 하늘을 볼 수 없다.
 이렇게 가끔은 다른 프로그램을 모두 닫고 조각모음을 해야 한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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