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나오던 빨래터 '산짓물'도 복원사업에 밀려 아예 사라져
산지천을 덮은 복개 구조물이 걷히며 산치전은 새 길을 걸었다. 이른바 ‘생태복원’이다. 2002년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 산지천은 다른 시도의 벤치마칭 대상이 되고, 청계천도 산지천을 본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억지로 만든 생태 하천인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산지천으로 내려오는 물은 각종 개발로 수량이 부족해졌고 예전 우물 역할을 하던 가락쿳물 등은 말라버렸다.
급기야 산지천은 주변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다 채우고 계단으로 벽천분수를 만들기까지 했다. 이젠 물을 끌어다 쓰지 않으면서 벽천분수는 볼 수 없다.
그런 산지천이 ‘복원사업’이라는 미명아래 파괴의 과정을 걷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산지천 복원사업은 수질개선과 생태복원을 대명제로 내세우고 있다.
산지천 복원사업은 2개의 커다란 줄기를 앞세우고 있다. 물이 말라가는 산지천에 물을 채우는 ‘보(洑)’ 작업과 속칭 ‘산짓물’로 불리던 빨래터를 완전 없애버린 사업이다.
우선 보를 보자. 복원사업을 통해 산지천에 등장한 보는 모두 2개이다. 북성교 인근과 산지천 하류에 해당하는 용진교 등에 각각 만들어졌다.
이들 보는 홍수 때 보를 열어주는 ‘가동보’이지만 평상시에는 늘 닫혀 있다. 때문에 물 흐름이 없어 바닥에 각종 쓰레기는 물론, 이물질이 켜켜이 쌓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마치 4대강에서 보를 만들 듯 ‘작은 4대강’ 사업을 보는 기분이다.
예전 산지천엔 북성교에서 북쪽으로 가다보면 물이 흐르는 빨래터가 있었다. 산짓물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나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산짓물은 체험공간을 만들겠다는 도정의 의지로 아예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콘크리트 구조물이 떡 버티고 있다.
주민 A씨는 “4대강처럼 물을 가둔다는 발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물이 흐르면 흐르는대로 두고, 아니면 그냥 자연 상태의 건천이면 어떠냐. 보를 만드는 사업을 하면서 산지천을 찾던 철새들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한다는 취지로 ‘보여주기식 행정’을 하는가라는 우려였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산지천을 그냥 놔두면 건천이 된다. 그래서 보를 만들게 됐다. 보는 홍수 때나 탁도가 높을 때 열어준다”고 말했다. 산짓물을 없앤 이유에 대해서는 “빨래터를 재현하고 체험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