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5:01 (화)
걸음이 느린 아이 마지막 이야기
걸음이 느린 아이 마지막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5.07.02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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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89>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말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다. 잘 읽히지 않는다. 책에는 아내가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산책하며 아이와 주은 단풍잎들이 8개 꽂혀있다. 갈색 잎으로 인해, 책은 갈색으로 변한다.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명저다. 아내가 요즘 유난히 조급해진 나에게 소설을 읽으라고 충고하여 책장에서 꺼내 보았다.

 책을 읽다 잠시 멈춘다. 소설 속, 술집에 모인 사람들의 두서없이 흩어지는 대화가 내 눈앞이 ‘쿵’하고 떨어진다.

 “산다는 게 감옥살이지.”
 “암, 그것도 종신형이고말고, 빌어먹을.”

 세상은 감옥이다. 세상은 감옥이 아니다. 세상은 감옥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세상은 감옥일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어쨌든 어떻든 아무튼 하여튼, 세상이 감옥이든 아니든 우리는 그 안에 산다. 삶이라 한다. 종신형이 맞다. 죽을 때까지 죄수와 마찬가지로 먹고 자고 싸고 가끔은 사랑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죄수(罪囚)의 삶은 대부분 간수(看守)가 결정하지만, 보통 사람의 삶은 대부분 본인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가끔 걸음이 빨라질 때가 있다. 걸음만이 아니다. 말도 빨라지고, 그에 따라 마음도 빨라진다. 주위의 풍경을 구경할 새도 없이 그렇게 가속도 마저 붙는다.

 소설을 다시 잡는다. 여전히 잘 읽히지 않는다. 밥 먹고 사는 데 소설읽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섣부른 판단 때문이다. 한 단락 안에 담긴 메시지가 답답하고 느리게 전개된다.
 
 다시 책을 읽다 멈춘다. 한 문단 내내 주위의 풍경을 묘사하고, 한 장 내내 인물의 모습과 성격을 묘사한다. 새롭게 등장한 인물과 수줍은 대화를 나누고, 상대의 대화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을 한참이나 해석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말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눈빛이 먹먹하다. 새벽 2시에 잠을 깬 탓이거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무언가에 가려져 흐릿하기 때문일 터이다.
 아내는 나에게 혼자만의 여행을 권한다. 좋은 책 두 권을 가방에 넣고 떠나라고 한다. 길을 걷고 바다를 보라고 한다.

 그래. 풍경을 볼 생각이다. 눈앞의 이끼를 없애려고 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려고 한다. 급정거가 아닌, 연착륙을 시도하려고 한다. 숨고르기를 하고, 심호흡을 비교적 길게 해 보려고 한다.
 
 사람들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 무언가를 잊거나 버리고 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다에 가보면 십중팔구 실연당하거나 누군가를 잃은 외로운 한 사람이 해변에 점처럼 점점이 있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무언가를 버리고 올 것 같지만, 반드시 어떤 것을 얻고 온다는 것을.

 혼자 떠나는 여행이 전에 언제였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바로 지금이 떠날 때다.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다시금 바꿔야할 그 때다.

 아이는 걸음이 느리다.
 나도 걸음이 느렸지만 다시금 빨라졌다.
 나는 한참 앞서나가며 어서 오라 소리쳤다.
 아이는 쫓아오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아이의 땀을 닦아주기는 여간 수줍은 일이 아니다.
 차라리,
 아이의 보폭에 맞추려 한다.

 노래를 부른지 오래 되었다. 노래를 부른다.


 『박수소리』
                                  2015. 7. 2.
 
 한 손에는 차가운 물
 한 손에는 뜨거운 물
 차가워서 내려놓고, 뜨거워서 내려놓고

 차고 뜨신 물을 섞으면
 박수소리 짝짝짝
 박수소리 짝짝짝

 너는 왼발, 나는 오른발
 나는 오른발, 너는 왼발
 엇박자라 엇갈리고, 옆눈보다 엎어지고

 하나둘 셋넷, 왼발 오른발
 박수소리 짝짝짝
 박수소리 짝짝짝

 마음이 맞아야 박수소리
 구령이 맞아야 박수소리
 손발이 맞아야 박수소리
 
 함께 웃으며 박수치고
 함께 울면서 박수치며
 함께 걸으며 박수치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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