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또 다른 세상, 해안절경의 신비 속으로
제주의 또 다른 세상, 해안절경의 신비 속으로
  • 고희범
  • 승인 2015.06.19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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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52회 제주탐방 후기

바닷가에는 하루 두 차례 밀물 때면 사라졌다가 썰물 때면 바닷물이 남은 채 드러나는 웅덩이들이 있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조간대의 이 웅덩이를 '조수웅덩이'(tide pool)라고 부른다. 바다의 생명력은 바다 속에서 형성되는 플랑크톤 외에 육지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유기물과 무기질에서 생겨난다. 육지와 바다의 중간지점에 있는 조수웅덩이는 바다의 생명력이 시작되는 지점이고, 해양 생태계의 축소판이다. 좁은 공간임에도 여러 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바닷가까지 용암이 덮여 있는 화산섬 제주에는 해안이 대체로 다공질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수웅덩이가 잘 발달돼 있다. 특히 제주의 조수웅덩이는 오염물질의 유입도 적고 해류의 길목에 위치해 있어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생태환경을 갖추고 있다. (임형묵 '깅이와 바당' 대표)  
 
대정읍 신도2리 해안의 조수웅덩이는 돗도구리(돌로 만든 돼지 먹이통)를 닮았다고 해서 '도구리알'이라 불린다. 해안 절벽 위로 해안을 따라 길게 펼쳐진 용암이 크고 작은 조수웅덩이 세 개를 나란히 만들어놓았다. 절벽 위에 있는 탓에 조수간만에 의해 물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절벽을 넘는 큰 파도에 의해 웅덩이에 물이 고이고, 파도와 함께 바다생물들도 들어오게 된다.

두번째 웅덩이. 오른쪽에 작은 웅덩이가 보인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곳에도 다양한 바다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수웅덩이가 그렇지만 특히 큰 파도가 칠 때가 아니면 바다와 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이 도구리알은 비가 내리면 염분의 비율이 낮아지고 여름에는 수온이 뜨거워져 생물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작은 도구리알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버티는 생물이 있다. 댕가리 고둥과 점망둑 등이다. 망둑어류는 급격한 수질변화에도 잘 견디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큰 도구리알은 훨씬 많은 생물이 산다. 몇 종의 고둥은 물론이고, 군소와 다양한 물고기가 관찰된다.

사람들이 나타나자 물고기들이 바위 밑으로 숨어 버렸다. 한참을 가만히 있으면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수웅덩이 탐방을 안내한 이는 제주의 조수웅덩이 생태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의 '그린 다큐멘터리' 공모에 선정됐던 임형묵 대표다. 임 대표는 이 웅덩이에서 50cm쯤 되는 점다랑어 새끼 세 마리가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먹이인 작은 물고기를 찾아 연안 가까이 왔다가 파도가 치는 바람에 이곳으로 밀려 올라온 것이다. 다랑어는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먹이활동을 할 수 없다. 결국 이 웅덩이에 살고 있던 작은 물고기들의 밥이 됐을 것이다.
 
임 대표는 어랭이 코생이 등 놀래기류는 자유자재로 성 전환을 한다고 소개한다. 암컷이 많고 숫컷이 모자라면 숫컷이 되기도 한다. 종족보전을 위한 자연의 배려다. 베도라치류는 숫컷이 산란하기 좋은 자리를 잡아놓고 있다가 암컷들이 산란을 하면 수정을 한 뒤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종족번식을 활발하게 하기 위한 지혜다.

조수웅덩이는 모래나 갯벌 등 모든 조간대에 생기는 웅덩이를 말한다. 제주도의 경우 대체로 화산 폭발 때 흘러내린 용암이 바닷물과 만나면서 생겼거나, 이후 오랜 세월을 두고 표면의 주상절리나 돌 부스러기들이 파도에 깎이면서 단단한 용암이 남아 생성된 것이다. 점도가 높은 마그마가 흘러 표면이 부드럽고 편평한 '파호이호이' 용암이든, 점도가 낮은 용암으로 이루어져 거칠고 울퉁불퉁한 '아아' 용암이든 관계없이 조수웅덩이는 만들어진다.(안웅산 한라산연구소 연구원, 지질학 박사)

서귀포시 보목동 해안에는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는 '소천지'가 있다. 높은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 만조 때도 완전히 잠기지 않는 특이한 모습의 웅덩이다. 조수 간만에 의해 물이 드나들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아 바닷물이 언제나 소통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물도 맑고 서식하는 바다생물도 다양하다. 하지만 일부 바위 틈으로만 바닷물이 들고 나는 바람에 한번 들어온 물고기는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수면이 넓고 수심이 깊어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잔잔한 곳을 좋아하는 큰뱀고둥과 굴이 많고 숭어, 꼬마청황, 벵어돔 외에 놀래기류와 베도라치류, 망둑어류 등이 많이 살고 있다. 바위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큰뱀고둥은 부유물질을 먹고 산다. 물이 움직이면서 부유물질이 떠오르면 더듬이에서 거미줄 처럼 나온 점액질에 붙은 것들을 먹는다.

소천지는 주변의 경관에 눈을 팔게 되는 바람에 이곳 바다생물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어렵다. 소천지 입구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소천지 뒤로 한라산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어 잔물결이 일지 않으면 소천지에 비친 한라산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날은 한라산이 구름에 쌓인 채 모습을 드러냈지만 잔 물결과 흐린 날씨로 물에 비친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달과 태양의 인력, 그리고 지구의 원심력 등의 작용 때문이다. 지구와 가까운 달의 영향이 가장 크고 태양의 인력은 달의 절반 정도 미친다. 달과 태양이 일직선 상에 있을 때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커지며, 이 때를 사리, 또는 대조기라고 한다. 또한 달과 해가 직각에 가까울 때는 조수 간만의 차가 줄어드는데 이 때를 조금, 또는 소조기라고 한다.
 
서귀포시 예래동 조간대는 파호이호이 용암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어 조간대 상부에서 하부까지 조수웅덩이가 곳곳에 퍼져 있다. 가장 넓은 웅덩이는 농구장 만한 크기이고 깊은 곳은 수심이 3m나 된다. 육지와 가깝거나 바다에 가까운 웅덩이의 위치에 따라 생물의 분포가 조금씩 달라진다. 바다에 가까운 조간대 하부에는 범돔 같은 물고기 외에 담치, 거북손, 군소, 흰갯민달팽이도 있다. 조간대 중간부에는 밤고둥, 무늬발게, 베도라치류, 그리고 육지에 가까운 상부에는 갈고둥, 총알고둥, 갯강구 등이 산다.

바다생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것은 수렵채취시대를 살던 조상들의 유전자가 작동하기 때문일까. 다양한 생명에 대한 관심보다 주변의 경관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된 조간대는 바다 생태계의 시작이자 종 다양성이 풍부한 생명의 터전일 뿐 아니라 태풍과 해일로부터 육지를 보호해주는 방패막이 역할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바위로 덮여 있어 유독 조수웅덩이가 많고 그래서 더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제주의 조간대는 해안에 도로와 각종 건물이 늘어가면서 급격하게 훼손되고 있다. 콘크리트 벽이 만들어져 조간대가 파괴된 곳에서는 육지와 바다의 생물학적 소통이 끊겨 바다 생태계가 왜곡되고 있다. 탑동에서 드러나듯이 조간대가 사라진 곳에서는 매년 월파 피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진해일이나 수퍼태풍이 제주도를 덮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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