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느린 아이 첫 번째 이야기
걸음이 느린 아이 첫 번째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5.06.17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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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86>

나는 언제부터 느리게 걸었을까? 심지어 버스가 수 십 미터 앞에 오는 걸 보고도 뛰지 않는다. 다음 것을 타면 되지 뭐. 느리게 걷는다.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걸어왔다.

 아이가 수학 시험에서 빵점을 맞았다. 지난 시험에 30점을 맞았으니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실력과 더불어 운까지 없었을 뿐. 이 녀석도 여간 느린 게 아니다.
 아내는 자신은 공부에 관해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나에게 아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건지 묻는다. 그 말인 즉슨, 나는 공부를 못했던 ‘경험’이 있으니 이 사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최악의 수학점수는 12점이었다. 아이는 빵점.
 도토리 키 재기라도 큰 도토리 작은 도토리가 분명 있는 법이다. 물론 오십보백보 그 나물에 그 밥이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건 안다. 게다가 나에겐 변명도 있다. 오천만 부모가 익히 하는 변명.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매우 긍정적이다. 나도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했다. 요즘 들어 점점 아이가 나를 닮아가고 있다. 얼굴도 아기였을 때는 엄마 쪽이냐 아빠 쪽이냐 갑론을박을 했는데, 지금은 이론의 여지없이 아빠를 닮았다 한다. 그래서 변명을 또 해본다.

 ‘우리 애가 공부만 하면 전교 1등이 뭐야, 전국 1등도 할 텐데….’

 아이가 어렸을 때 간절히 바랐던 말.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지금은 살짝 수정한다.

 ‘건강하게 자람과 동시에 공부도 조금 잘할 것이며, 부모님 말을 황금과 같이 여기며 숙제·학원은 빵꾸를 내지 않음과 더불어, 게임 및 TV는 백해무익임을 가슴 깊이 인지하여 최소시간을 투입하고, 혹여나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독서삼매경에 빠져다오.’

 나는 느렸다. 아이도 느렸다.

 교토대학에서 30년 넘게 진행하는 실험이 있다. 침팬지를 공부시키는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차이는 겨우 1.7%. 말과 얼룩말의 DNA보다 차이가 적다. 실험의 주인공 침팬지 ‘아이’는 놀랍게도 인간과 학습능력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순간 기억력은 인간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엄마 침팬지 ‘아이’가 아들 ‘아유무’를 낳은 후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자신이 배운 것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아유무’도 가끔 엄마를 따라 하긴 했지만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결론이 났다. 인간이 영장류인 이유가 이것이다.
 가르침과 배움. 이 연결고리가 끊긴 침팬지는 그저 인간과 비스무레하다는 뜻의 ‘유인원(類人猿)’이 되었다. 인간은 연결고리를 진화와 문화라는 속성을 통해 연결해나갔다. 그래서 어느 동물들과 비교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인류(人類)’가 되었다.

 나는 가르친다. 아이는 배울 의지가 거의 없다. 공부에 있어 내 의지와 아이의 의지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나보다.
 나는 가르친다. 아이는 배우기 싫다고 한다. 가르침에 있어 지금 내 마음과 아이의 마음에는 시간차가 있나보다.
 빵점. 솔직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답이 안 나오는 걸 답답하다고 한다.
 
 회사를 하루 쉬고 종일 고민했다. 마침표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관계없다. 모든 일에 시원하게 마침표를 찍는 능력자는 없다.

 다만 오늘은 그저 쉼표 하나를 찍어 본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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