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위한 진혼곡(鎭魂曲)
모기를 위한 진혼곡(鎭魂曲)
  • 홍기확
  • 승인 2015.06.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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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85>

누구나 그렇겠지만 직장의 일을 마치고 일찍 집에 오면 할 일이 많다. 몸을 부산히 움직이며 집안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시간의 상대성을 강렬하게 느낀다.
집 안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거나 널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각종 쓰레기를 버리며, 설거지를 하고 아침에 못 읽은 신문이며 잡지를 본다. 기분이 내키면 외국어 공부를 몇 십분 중얼거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꼼지락대며 읽는다. ​

집안일 중 오롯이 내가 전담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모기를 잡는 일이다. 나는 의외로 순발력이 뛰어나다. 잠을 자기 전 온 방을 돌아다니며 모기를 잡는다. 아내는 모기 한 마리라도 윙윙거리면 그 날 잠을 망친다.

모기가 피를 빠는 건 알을 낳기 위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흡혈하는 모기는 모두 암컷이다. 수컷은 흡혈을 하지 않는다. 모기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임은 알고 있다. 내가 암컷 모기 한 마리를 잡으면 150여명의 자식들이 엄마를 잃게 되는 상황을 초래함도 알고 있다.(암컷 모기는 보통 한번에 150여개의 알을 낳고 1~2개월을 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가족의 건강과 행복한 수면을 위하여, 또한 ‘배려’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우울한 숙명을 타고 났음에!
이렇게 나는 가족을 위해 대량살상을 매일매일 자행한다. 악역은 아버지가 맡는 게 낫다. 아내와 아이에게 이런 무거운 업보를 남겨줄 생각이 없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편의와 안락은 사실 이렇듯 다른 생명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기적 동기에 의한 배려라는 명목으로 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간다.
따라서 삶을 겸손하게,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 있음에 감동하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죽어간 모기들. 영혼을 위로하며 2011년 쓴 시를 진혼곡으로 바친다.

 

사신(死臣)에게   

                             홍기확

어서 가게.

뭐 그리 급할 것 있는가?
쉬엄쉬엄 가재
어차피 갈 길잉게
뭐 아쉬운 것 있는가?

없제.
가지고 온 것도 없고
가지고 갈 것도 없제

인사허게

내 새끼들.
어려서 못 먹였는데
지금도 배고프니

내 새끼들.
잘살그라
내 몸이 삭게 일했어도
가르치고 물려준 게 가난이니

안되겄네, 저승사자 양반
어서 앞장서게.
잰걸음으로 갈끼라.

그럼. 그라지.

 

일상이란 이렇게 뜨겁고 감동적이며, 살아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 기쁘고 탄력적이다.
내친 김에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현실에 충실하라. 일상에 감사하며 살라.’는 알맹이 없는 구호보다 나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모기를 잡는다. 남들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이다. 일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 자기계발서보다 낫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야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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