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7-23 17:43 (화)
잡무 덜어내고 자율성 쥐어주자 ‘배움중심 수업’ 함께 고민
잡무 덜어내고 자율성 쥐어주자 ‘배움중심 수업’ 함께 고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6.09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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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제주매일 공동기획] 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4> 교사들이 말하는 혁신학교
제주형 혁신학교의 한 곳인 수산초 학부모 공개수업 현장.

# 40분짜리 수업이 준 감동

지난달 27일 성산읍에 있는 수산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공개수업 현장. 학생들이 엄마, 아빠의 발을 직접 씻어주는 세족식이 마련됐다. 아이들은 직접 대야에 물을 붓고 부모님의 바지를 걷어올린 뒤 고사리 손으로 엄마·아빠의 발 구석구석을 닦아나갔다.

“아빠 발에서 먼지가 나오니까 재미있어요!” “엄마가 잘 한다고 칭찬해주니까 좋아요.”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엄마 발을 씻겨드리기로 했어요.” “와, 잘했구나!” 이곳저곳에서 선생님을 찾았고 교실은 부산스러웠지만 아이들은 신나고 교실은 활기찼다. 이날 배움의 주제는 ‘감사의 마음 전하기’. 아이들은 따뜻한 물의 온기와 눈물을 글썽이는 부모님의 눈빛으로 ‘감사’의 느낌을 어렴풋이 배우고 있었다.

세족식에 앞서 재난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의 영화 일부를 감상하고, 가족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던 기억과 그런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주민 가족이 대다수인 수산초, 도전과 출발이라는 활기 이면에 그리움과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적지 않기에 ‘가족에 대한 감사함’을 피부로 나눈 이날 수업은 눈물과 감동을 남겼다.

# 공개수업, 교사들이 성장하는 시간

그런데 수산초 학생들의 이 같은 생생한 수업이 부러운 것은, 이러한 수업이 학부모 공개수업을 위해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첫 제주형 혁신학교 중 한 곳으로 지정된 수산초 교사들은 학생들이 그 날의 교육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다양한 교육 활동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교장·교감을 비롯한 교사 전체가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협력하고 토론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수산초 교사들은 자신들의 교육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업과 관련된 교재를 독파하고 있다.

이는 모든 혁신학교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혁신학교는 궁극적으로 교사, 학생이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데 이 가운데 교사들의 행복은 연구활동을 통해 질 높은 수업 모델을 발굴하는 등의 자기 성장을 통해 이뤄진다고 본다.

이날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동영상을 틀어 수업 몰입도를 높이고 세족식을 계획한 것은 담임 고유라 교사의 고민의 결과였다. 세족식에 이어 감사의 편지 쓰기가 마련될 예정이었으나 제한된 시간에 여러 활동을 진행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선배 교사의 의견에 따라 수업은 세족식까지만 이뤄졌다. “다행이에요. 감사의 편지까지 진행했으면 시간이 빠듯할 뻔 했어요. 혼자 수업 진도를 예상했을 때에는 모두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다르네요. 이래서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듣는 작업이 중요해요.”(고유라 교사)

수업 공유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산초 교사들에게는 공개수업의 의미가 남다르다.

“예전의 공개수업은 교사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이었어요. 지금은 이 수업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배움을 주는 가를 살펴보죠.”(임진혜 교장)

수산초는 정기적인 학부모 공개수업 외에 교사들끼리 서로의 수업을 공개하는 자리가 매주 한 차례 열린다. 이들에게 공개수업이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는 것은 앞서 구성원 모두가 아이들에게 진짜 배움을 주는 수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고, 수업 공유가 자기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 학교는 ‘수업친구’라는 게 있어요. 미리 허락을 받고 다른 교사의 수업시간에 들어가보는 것이죠.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자극을 받으면서 내 교수법을 발전시켜나간다는 취지인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돼요. 특히, 경력이 많은 교사들은 수업을 공개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희 학교에서는 모두가 오픈하고 있어요. 이례적인 일이죠.”(김보화 교사)

# 교실에 찾아온 행복

이 같은 교사들의 노력은 행정업무가 줄었기에 가능해졌다. 이석문 교육감은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난 교실 수업의 혁신을 강조하면서 더불어 교원업무 경감을 주요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중복업무를 털어냈고, 행정실에 근무하는 일반직 공무원의 업무와 교사들의 업무를 분리하는 한편 교사들에게 분담된 행정업무는 교장, 교감, 부장교사까지로 한정시켰다. 그러자 교사들이 비로소 수업의 질적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수산초 교사들은 ‘배움의 공동체’ 실현을 위해 ‘교육 혁신의 전도사’로 불리는 손우정 교수의 특강을 30여차례 이상 듣고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교사들은 아직은 낯선 혁신학교의 개념과 교육과정의 모델을 찾기 위해 관련 도서를 찾아 읽고 정기적으로 교사들끼리의 모임을 연다.

“원격 연수를 듣고 우리보다 앞서 혁신학교를 도입한 학교들의 자료를 받아 연습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배우면서 바로바로 적용하니, 교수법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셈이네요.”(김보화 교사)

이러는 사이 교사들의 표정은 부쩍 밝아졌다.

“예전에는 집에 가면 내일 해야 하는 업무만 생각했어요. 업무는 안 하면 혼나고 수업준비는 안 해도 혼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낍니다.”(강원준 교사)

첫 부임지가 혁신학교에서 고맙다고 말하는 수산초 고유라 교사.

“저, 되게 감사해요.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좋은 대학이 아니라 첫 발령지라고 하거든요. 교사로 이 학교에 처음 부임했어요. 혁신학교여서 수업 준비시간은 길어졌지만 다른 업무없이 오직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가 없어요. 특히 신규 교사인데도 자율성을 주니 더 즐겁게 일하게 되네요.”(고유라 교사)

임진혜 교장은 이제 교과서는 참고서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교사들이 스스로 수업에 영감을 얻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에게 수학문제를 풀라 하고 기안서를 작성하던 선생님들이 재미있는 수업, 유용한 가르침을 고민하고 있지요. 이건 관심의 변화거든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웃어주고 수업은 재미있어지고. 학교 전체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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