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7:52 (금)
유령을 찾아서
유령을 찾아서
  • 홍기확
  • 승인 2015.06.04 11:3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84>

우리 부모세대, 즉 산업격변기의 베이비부머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았다. 고금리와 급격한 성장에 미래는 장밋빛 일색이었다. 최근 주춤하지만 중국이 가장 잘 나가던 2000년~2010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10%였다. 한국의 1970~1980 평균 경제성장률은 10.5%였다.
 앞만 보고 달리면 그뿐이었다. 한국의 고속성장의 정점에 내가 태어났다. 이른바 2차 베이비부머, 둘만 나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세대다.

 내 부모세대는 직장이 널렸었다. 아무데나 들어가 일만 죽어라 하면 됐다.

 반면 내 세대는 졸업하기 전에 스펙을 쌓아야 했다. 외국어, 경제공부를 해야 했다. 심지어 창조경제 정부에서는 ‘창업’을 하라고 했다. 기업은 한 술 더 떠 ‘경력’이 있는 인재를 선발한다고 했다.
 이런. 돈이 있어야 창업을 하는데, 학자금 대출에 빚만 있다. 게다가 스물 몇 살에 창업을 하면 그게 정상적인 젊은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또한 취업이 되어야 경력이고 나발이고를 쌓는데, 기업은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하다니!
 결국 내 동기들은 돈이 없어 창업을 못하니 가상의 창업인 ‘공모전’에 숱하게 도전하고 떨어졌다. 울며 겨자먹기로 휴학을 하거나 방학기간에 인턴을 뛰었다. 기업은 ‘열정페이’라고 하며 우리들의 열정에 교통비 정도를 지급했다. 물론 기업들은 인턴도 ‘경력’있는 인턴을 선호했다. 세상 참, 녹록치 않았다.

 내 부모세대는 배신당한 세대다. 앞만 보고 달리면 노후를 포함한 모든 것이 다 될 줄 알았지만 배신당한 세대다. 소설가 김동인의 『젊은 그대』의 한 구절처럼 보이지 않는 유령을 좇았다. 패기가 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배신당했다.

 ‘유령을 잡으려는 일종의 호기심도 섞인 숙생들은, 젊은 혈기와 자기네들의 무술에 대한 자신으로써 혼백을 잡아 보려고 그 유령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반면 내 세대는 어떤 의미로 과학적이다. 유령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5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2.88%. 그 이후도 별반 다름없다. 현재가 암울하다.
 기준금리는 1.75%. 돈을 넣어도 물가상승률 1.3%를 따지면 저축은 의미가 없다. 미래도 암울하다.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일하라, 돈을 모아라 하는 과거에 써먹던 구호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우리들의 유령은 어디에 있을까?
 젊은이(나도 애매하긴 하나 젊은이 축에 속한다)들의 말을 들어보면 ‘퇴직 후 세계여행’같은 포부가 없다. 차라리 최근의 트렌드는 ‘우선 퇴사 후 세계여행’이다. 젊은이들은 막연한 미래를 위해 확실한 현재를 희생하려는 의지가 없다.
 밝은 미래가 보어야 포부가 있다. 지금 세대는 싸움이나 경쟁보다는 실리를, 먼 곳을 바라보며 꾹 참기보다는 가까운 행복을 추구한다. 그들이 틀린 게 아니다. 그들이 다른 것이다. 그들이 다르게 된 데 사회의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사회가 다른 것뿐이다.
 
 얘기를 하다 보니 겁난다. 28살 차이나는 아이는 지금 어떤 유령을 찾고 있을까?
 오랜만에 자기 전 아이에게 꿈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간 아이의 성숙한 대답과 거리가 한참 떨어졌다.

 ‘아이언맨 같은 힘센 용사나, 해리포터 같은 마법사가 되고 싶어.’

 얼마 전 ‘소프트 파워’이론의 주창자로 유명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는 신문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의 첫째로 미국문화의 강력함을 뽑았다.
 늙지 않는 약을 발명하는 과학자가 되어 부모와 함께 영원히 사는 초등학교 2학년의 꿈을, 아이언맨과 같은 슈퍼영웅과 마법사로 바꾸어 놓다니.
 아이는 그만의 유령을 찾기에 아직, 갈 길이 먼가보다.

 우리의 유령은 어디에 있을까?
 뭔가 될 것 같았던 패기는 어디로 갔을까?
 불나방처럼 데일 줄 알면서도 유령을 좇던 무모함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의 유령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면 아직도 못 찾았을까?

 20대가 기억난다. 매일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도 매일의 술안주는 같았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친구 중 1명은 이제야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친구 중 1명은 아직도 질문에 대해 고민 중이다.
 위 친구와는 지금 만나도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묻는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 이르면 알 수 없고, 알고 나면 너무 늦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이 의미가 있다.
 
 아이에게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금 노력하려 한다. 좀 더 다양한 직업,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지금 노력하려 한다. 슈퍼영웅은 몇 명 없다는 것을, 한국에는 변호사보다 농부의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을 지금부터 자연스레 깨닫게 하려 한다. 아버지로써 아이와 같은 세대의 친구들보다는 조금 일찍 유령을 찾을 수 있게 지금부터 도와주려한다. 이렇게, 아이가 유령을 찾아서 떠나는 길에 미리 지도와 나침반을 챙겨서 보내려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내가 찾은 유령이 ‘그 유령’이 맞는지 확인해 보려 한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홍기확 2015-06-09 23:12:25
오늘도 학교를 다녀와 숙제를 할 시간에 게임만 한 아이를 혼냈습니다.
여느 주부(?)처럼 화를 삭이는라 설겆이를 하고, 지쳐서 어딘가에 기대어 자고,
기적적으로 깨어나 빨래를 개고, 빨래를 널고...
그래도 진정이 안 돼 도서관에 와서 육아책과 잡다한 류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삶이죠. ^^
내일은 회복될 겁니다.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아버지의 저와의 전투 전적은 0승 19만8,631패 정도 될겁니다.

내일 저의 아이와의 전투 전적은 1패를 추가해서,
0승 9만 3,934패가 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질게 뻔한 전투를 하는게 지치긴 합니다.
하지만 저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매번 이길게 뻔한 전투를 했으니! ^^

특별아빠 2015-06-09 11:55:52
아이와 함께 유령을 찾는 모험이 특별아빠로 만들어줄 것 같습니다.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아니라 지금 당신도 알게되도록 깨우침을 주는 글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