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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전혀 없고 설문조사만 발표하는 게 용역인가”
“답은 전혀 없고 설문조사만 발표하는 게 용역인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6.03 23: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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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고교체제 개편에 대한 인지를 하지 못한 중간 보고회
뻔한 설문조사에다 현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 대한 조사는 전무
3일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열린 고교체제 개편 중간 보고회.

제주도내 중학생만큼 불행한 학생들이 있다면 어디 나와 보라고 묻고 싶다. 왜 그럴까. 치열한 고입경쟁에다, 자기가 원하는 고교에 들어가기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내 중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전국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한다. 사실 중학교 졸업자들 대부분은 일반고를 들어가길 원하지만 뜻대로 되는 학생들은 60% 수준이다. 나머지는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 특히 제주시 동지역 학생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동지역이 아닌, 읍면지역으로 통학을 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자고 등장한 게 고교체제 개편이다. 이석문 교육감이 후보시절부터 줄곧 주장해왔고, 교육감 당선 직후부터 고교체제 개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덜기 위해 관련 용역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용역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일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진행된 ‘제주특별차지도 고교체제 개편에 관한 연구 용역 중간 보고회’는 과연 이같은 보고회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부터 든다.

용역에 대한 질타에 앞서 고교체제 개편이 왜 중요한지 짚어보자. 고교체제 개편은 교육정책 가운데 큰 줄기를 바꾸는 일이다. ‘뚝딱’ 처리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십년을 내다보고 판을 짜야한다. 도시개발, 인구증감 현황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책을 결정했다가는 수십년이 틀어진다. 그래서 고교체제 개편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용역은 그런 걸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이날 보고회에서 보여준 건 설문조사 결과 뿐이다. 중간 보고회라면 의견 제시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날 용역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설문조사 설명회’라는 이름이 더 낫겠다.

설문조사도 허점투성이다. 설문조사는 당연한 걸 묻고 있다. 제주시 동지역에 거주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일반고 신설이 좋은가, 특성화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게 좋은가”를 물으면 뻔한 답이 나온다. 그걸 설문에 담았다. 당연히 교육 수요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걸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설문결과 일반고를 신설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설문조사 결과대로 일반고를 신설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수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 학교만 신설한다고 답이 되질 않는다. 자칫 학교 신설은 읍면지역 학교의 공동화를 부추길 수도 있다.

용역을 제대로 진행했다면 일반고 신설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어야 한다. 특성화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나와야 한다. 그런 건 전혀 없다. 앞으로 인구추이는 어떻게 되고, 도시개발 등의 변화에 따라 어떤 고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한 예측도 있어야 했다.

특히 고교체제 개편은 학교를 신설하는데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다. 고교체제 개편은 현재 모든 학교의 경쟁력을 강화시키자는데 있다. 동지역 학교는 동지역 학교대로, 읍면지역 학교는 읍면 지역 학교대로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각각의 학교가 경쟁력을 가질 경우 ‘원하지 않는 선택’이 아니라, 동지역에 사는 학생들도 ‘원하는 선택’으로 읍면지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자는 것이다.

이날 ‘설문조사 발표회’는 설문조사도 문제였다. 설문대상은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및 중학교 3학년 학생의 학부모, 초·중·고교 교사 등이 대상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뻔한 질문을 했으니, 뻔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고교체제를 개편하려면 각급 학교가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우선 분석해야 한다. 동지역 학교는 워낙 선호대상이니 예외로 해두고, 읍면 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을 했어야 했다. 설문대상도 현재 읍면지역 학교를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에 초점을 둬야 한다. 그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더라면 아주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었을 게다. 왜냐하면 그 학생과 학부모들은 문제점과 좋은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불만이라면 통학문제인지, 아니면 프로그램 문제인지, 아니면 단순히 특성화고교여서인지 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 걸 놔둔 채 당장 고교를 들어가는 계층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으니 일반고 선호만 나오는 뻔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용역에 투입된 시간이 많았으면 좋지만 남은 시간도 없다. 계획대로라면 6월말 도민 공청회, 7월초 최종 보고회를 가지게 돼 있다. 최종보고서 제출은 7월말이다.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시간은 촉박한데다, 설문조사만 나열한 보고회. 거기에다 설문도 엉성했으니 남은 기간에 뭘 가지고 용역을 진행할지 깜깜하기만 하다.

기자는 읍면 지역 학교를 자주 오가면서 취재를 하는 편이다. 학부모들을 만나면 “행복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문제점을 꺼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왜 행복한지, 왜 불만인지를 물어보라는 게다. 그러면 고교체제 개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실마리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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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겸 2015-06-04 09:22:57
기사 잘 읽었습니다. 설문지 설명회열라고 세금들인것 아닌데말이죠. 부실한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아졌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