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제발! 잘 할 수 있는 걸 하도록 해주세요
제발! 잘 할 수 있는 걸 하도록 해주세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6.03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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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4> 앤 파인의 「삐뚤빼뚤 쓰는 법」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란 쉽지 않죠. 학교란 더욱 그렇죠. 한 공간에서, 한 선생님이, 한 가지의 과제를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과제를 잘 해결하는 애들이야 문제가 될 게 없지만, 그렇지 않는 애들에겐 그 시간이 엄청난 고통이죠. 어쨌거나 과제를 잘 해결하는 애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 사이엔 분명 다름이 있습니다. 그 다름이 학교라는 울타리에서는 평가로 결정이 나잖아요. 때문에 학교에서 내는 과제에서의 다름은 성적순이라는 차이로 나타납니다.

앤 파인이 쓴 <삐뚤빼뚤 쓰는 법>은 다름도 인정을 하라는 교육적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의 다름은 성적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앤 파인은 첫 딸이 태어난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쓴다는 그의 책엔 재미가 가득합니다. <삐뚤빼뚤 쓰는 법> 역시 앤 파인의 솜씨가 가득 배어 있어요.

<삐뚤빼뚤 쓰는 법>의 주인공은 둘입니다. 조 가드너와 체스터 하워드입니다. 조 가드너는 뭔가 모자란 듯합니다. 체스터 하워드는 ‘뺀질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아이죠. 이들의 무대는 월버틀 매너 초등학교입니다.

책의 제목은 뭔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걸 암시하죠. 이 책을 읽기 전,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악필의 주인공을 글을 예쁘게 잘 쓰게 만드는 것이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죠. 그런데 읽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쓰지 못하는 글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그걸 인정하자는 것이죠. 그래서 책의 제목이 <삐뚤빼뚤 쓰는 법>이랍니다.

하워드는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닌 학생입니다. 해외 여러 곳에서 학교를 다녔죠. 그건 부모 때문이기는 했지만요. 그래서인지 하워드는 학교에서 제대로 정착을 하지 못하고 떠돕니다. 흔히 부르는 ‘아웃사이더’죠.

또다른 주인공인 가드너. 그는 <삐뚤빼뚤 쓰는 법>이라는 책의 주인공답게 글을 삐뚤빼뚤 씁니다. 왜냐고요? 글을 잘 몰라서이죠. 문장을 제대로 해석을 하지도 못하고, 단어도 잘 모릅니다.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도 제대로 구분을 하지 못하는 초등생입니다. 일종의 부진아인 셈이죠. 가드너 역시 말할 필요없는 ‘아웃사이더’입니다.

두 아웃사이더의 만남은 하워드가 월버틀 매너 초등학교에 전학을 온 첫날부터 시작됩니다. 투덜대는 하워드를 향해 가드너는 너무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하워드는 너무나 긍정적인 가드너의 반응이 싫었으나 점차 가드너에게 끌립니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가드너에게 하나 둘 가르치면서 둘은 없어서는 안 될 사이로 변합니다. 하워드는 가드너가 마냥 못난 아이로 비쳐졌으나 그의 책상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죠. 하워드는 가드너의 책상 서랍에서 나온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마카로니로 쌓아 올린 에펠탑 모형에 놀라게 되죠. 글을 제대로 알지도 쓰지도 못하는 가드너이지만 손재주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하워드가 알게 된 건 가드너가 그저 멍청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죠.

그런데 그들 반에 하나의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나만의 비법’을 만들라는 것이었죠. 하워드는 가드너의 ‘나만의 비법’을 만드는데 일조를 합니다. 가드너가 가장 잘 하는 것을 ‘나만의 비법’에 담는 것이었죠. 가드너는 아무리 글을 잘 쓰려 해도, 아무리 맞춤법을 지키려 해도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창안을 한 게 삐뚤빼뚤 쓰는 법입니다. 그건 가드너만 유일하게 할 수 있거든요. 게다가 가드너는 모형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가지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재주도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건 발견을 하지 못해서이죠. 가드너도 처음엔 하워드에게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걸”이라고 답을 했어요. 가드너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모형 만들기에 아주 탁월한 재주를 지닌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걸 주위에서 발견을 해 준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 부모들은 자신의 곁에 있는 자식들의 재주를 발견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성적에만 관심이 지대합니다. 제가 먼저 그것에 대해 반성을 해야겠네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워드보다 못한 것 같네요. 초등생인 하워드는 가드너에게 “온종일 마음껏 네가 잘하는 것을 하라”고 합니다. 참 부끄럽네요.

글을 쓰다 보니 옛 친구가 떠오릅니다. 초·중을 함께 다닌 친구입니다. 다른 애들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는데 왠지 그 친구는 이름도 또렷하고, 생김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공부를 잘 해서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을 지닌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는 글을 모르는 친구였답니다. <삐뚤빼뚤 쓰는 법>의 주인공인 가드너보다 더 글을 몰랐던 것 같아요. 글을 몰랐기에 공부는 늘 꼴등이었어요. 공부는 못했으나 늘 밝은 친구였습니다. 만약 제가 하워드처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드네요. 곁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그 친구도 잘 될 수 있었을텐데요. 그 친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보고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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