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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전 아픔의 현장, “백발노인이 돼서 다시 왔네 친구”
67년 전 아픔의 현장, “백발노인이 돼서 다시 왔네 친구”
  • 오수진 기자
  • 승인 2015.05.31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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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4.3수형인 명예회복 위한 전국순례, 인천형무소 터 방문

67년 전 제대로 된 군사재판도 없이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갔던 어린 소년 소녀들이 다시 그 아픔의 현장을 찾았다.

울분의 한을 삼키며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아 완전한 해결을 소망하던 당시의 소년 소녀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돼 먼저 간 영령들을 위로하러 지팡이를 짚고 돌아왔다.

11명의 노인들은 성한 곳 하나 없는 몸에도 한 걸음 한걸음 내딛는 ‘정성’을 보이며 그들보다 조금 더 살았다는 죄책감을 씩씩한 웃음과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행동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30일 오전 7시 수형인 생존자 및 가족 14명(생존자 할아버지 7명‧할머니 4명, 가족 3명)은 제주국제공항에 모여 완전한 4.3해결과 4.3수형희생자 법적 명예회복을 위한 4.3전국순례를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방문한 순례 장소는 지금은 인천지방검찰청과 인천지방법원 건물이 들어서 버린 옛 인천소년형무소 터다.

조사에 따르면 인천소년형무소에는 제주 주민 408명이 수용됐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현재까지 12명만이 생존해 있다. 이날 순례에 동행한 현창용(83) 할아버지 외 8명도 인천소년형무소 수감자였다.

향로에 뿌연 향의 연기가 피어오르자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던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제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양용해 전 전국민간인학살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추도사에서 “67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며 “지난 반세기 동안 참으로 원통한 삶을 살면서 4.3특별법 제정, 대통령 사과, 위령제 참석, 진상보고서 발간 등 어둠속에서도 이제야 비로써 4.3이 밝은 빛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은 “아직도 역사적 과제는 많다”며 “생존자들이 도민 더 나아가 국민과 함께 4.3 진상규명을 위해 영령들의 원통한 한을 반드시 풀어 드리자”고 약속했다.

이어 발표한 허상수 재경제주4.3희생자 및 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는 추도사에서 “통일된 민주 자주 국가를 세워보려는 영령들의 숭고한 정신과 활동은 결코 부정되거나 망각되어선 안 될 중요한 민중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허 공동대표는 “영령들은 헌법상 보장된 모든 권리를 철저히 부정당한 상태에서 너무나 아까운 희생을 당했다”며 “모든 권리를 유린당했고 죄형법정주의는 지켜지지 않았다”고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불법적으로 희생당한 소년수 영령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이후 다시 만난 수형인들은 한 가족이 됐다. 지난 2014년 전주형무소 순례 이후 수형인 생존자와 가족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서로 안부를 나누고 있다.

양근방(82) 할아버지(할아버지‧할머니 수형인 생존자 및 가족 모임 회장)는 “한 달에 한번이라도 모여 애들한테 용돈 달라고 하지 말고 밥 한 끼 먹으면서 얼굴도 익히고 사는 얘기도 하면 좋지 않느냐”며 “이제부터라도 남은 여생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정부의 4.3 진상조사 당시 수형자들은 희생자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2006년이 돼서야 15년 미만의 수형자들이 희생자로 결정될 수 있었다.

제주4.3과 관련해 1948년 12월 3일부터 1949년 7월 7일까지 군사재판을 받아 수형인이 된 민간인은 2530여명으로 수형인 명부에 수형인으로 기록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 수형인 명부를 근거로 일부 보수 단체들은 4.3희생자 재심사를 주장하며 희생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순례를 떠난 수형희생자 가족들은 오는 31일 서대문형무소와 임진각을 둘러보고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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