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커피와의 인연'
'커피와의 인연'
  • 미디어제주
  • 승인 2006.10.21 23:2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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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씨 수필가 등단
한국문인 10.11월호 ...'커피와의 인연' 등 2편 당선

“매일 아침 부드러운 커피 향소에 눈뜨게 해줄께.”
한 남자가 아내에게 커피 잔을 내밀며 그윽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리고 아내는 침대 속에 파묻혀 수줍은 미소로 남편을 바라본다. TV속에 범람하는 광고들 중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이다. 이 커피 광고에 눈과 귀를 곧추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커피 광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커피 얘기만 들어도 마음이 즐거워지기까지 하니 이 무슨 인연일까?

잠시 여유가 나면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아, 커피! 커피를 안 마셨구나.’하며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즐거워진다. 커피 주전자에 물이 또르르 떨어지고 뜨거운 김이 사르르 피어오르면 어느새 부엌에서 거실로, 커피 향은 서서히 내 마음속가지 스며든다. 그러면 하던 일을 뒤로 하고 커피가 다 뽑아지길 지켜보다 앉곤 한다. 그 향만으로 복잡하고 산만한 내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것 같아 큰 숨을 들이켜며 잠시 눈을 감는다.
내가 처음 커피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와 일곱 살 차이인 큰언니는 끼니를 챙기고 나면 어김없이 커피를 마시곤 했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하나. 그 달고 진한 맛을 왜 그리도 좋아했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맛을 안다기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통기타 가수의 애틋한 노래를 들으며, 뜨거운 커피 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좋아 보여 나도 커피 마시는 흉내를 냈던 것이다.

커피와 함께 한 추억들이 하나 둘 스쳐 간다.
고등학교 때 시험 기간만 되면 친구 자취방에서 밤샘하던 일이 생각난다.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밥사발에 가득 커피를 끓여 엄지와 검지로 간신히 잡고 마시던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한 사발의 커피는 허기진 배를 든든히 채워주었을 뿐 잠을 쫓아 주지는 못했다. 눈은 천근만근, 나에겐 오히려 잠을 청하는 수면제가 되었다. 어느새 날은 하얗게 새어버리고 한 사발의 커피는 애꿎게도 나의 원망을 들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커피가 나에게 잊지 못할 인연이 되어줄 줄이야.
내가 결혼하기 전 친구의 웨딩사진 촬영지에 따라 간 적이 있었다. 마침 4월 5일, 모처럼의 보너스 같은 공휴일이었다. 그날은 비까지 내려 중문 관광단지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단짝 친구가 아닌 터라 그랬는지 우두커니 서있으려니 민망스러워 그곳을 당장이라도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부 신랑(신랑 들러리 제주도 표현)이라며 나에게로 다가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우리 커피라도 한 잔 하죠?”
라며 자판기 앞으로 나를 안내하는 게 아닌가? 그 말 한 마디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마음이 참으로 평온해졌다. 주변의 웅성거림도 어느새 고요해지고, 커피 향이 묻어나는 따스한 바람이 내 얼굴을 살며시 스치고 지나간다. 모든 것이 이대로 다 멈추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커피에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어디선가 한 남자의 바리톤 음성이 간간이 들려왔다. 커피에 취해 그만 그 남자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던 거다.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던 그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몇 주 후, 여전히 출퇴근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날도 같은 시간, J여상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낯익은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왜 저 남자가 이 시간에 하필 이곳에 와 있는 걸까?’
순간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나를 금세 미소 짓게 했다. 그 남자의 손에 자판기 커피 두 잔이 들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피 잔을 들고 기다린 남자….

지금 그 남자는 내 남편이 되어 가끔 차를 타고가다 그 장소를 지나 갈 때면, 꼭 차를 세우고는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뽑아들고 온다. 그럴 때면 이심전심의 미소를 보내며 커피 속에 담겨졌던 추억들을 새록새록 되살려 보곤 한다. 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이만하면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커피는 일등공신임에 틀림이 없다.

늦은 저녁 가끔 내가 피곤해 할 때면, 남편은 살짝 방을 빠져나가 달그락거린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나를 부르며 손짓한다.
“야아, 와 봐봐.”
남편은 커피 잔을 살그머니 내밀며,
“피곤할 땐 좀 달게 마셔도 좋아. 마셔봐. 맛있지?”
“음,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자판기 그 맛!”
조금은 과장된 표정으로 나는 답례를 한다. 나를 감동시킨 한 잔의 커피가 TV속의 그 광고에 내 마음을 머물게 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커피 향속에서 눈뜨게 해주진 않아도, 이러 작은 마음 하나로 광고 속의 아내보다 더 행복함을 느낀다.

 

# 재봉틀과 어머니

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지만 너무나 정겹다. 가녀린 바늘 하나로 기교를 부리는 모습이 여간 대견하지가 않다. 홈쇼핑 채널에 가까이 초점을 맞추어 본다. 재봉틀의 그 날렵한 몸놀림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내 마음은 짝사랑하는 소녀처럼 안절부절이다. 심장도 요동을 친다.
“와~ 정말 좋다! 살까 말까?”
고민 고민하다 재봉틀을 마련한 절호의 기회다 싶어 주저 없이 주문을 하고 말았다. 며치을 몇 년처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재봉틀을 받았다. 밤늦게 귀가해 돌아오는 남편을 마중하는 일이 이보다도 더 반가울까. 오자마자 설명서를 펼쳐놓고 순서 따라 여기 저기 실을 걸고 시험바느질을 시작한다. 어! 정말 바늘이 움직이네! 신기하기만 했다. 재봉질 한 번 해본 경험도 없었는데 한 땀 한 땀 수를 놓을 수가 있었다. 꼿꼿한 바늘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발로 밟으면 돌아가는 발틀이 있었다. 어머니의 혼수 목록 제1호로 준비해 오신 귀중품이라 했다. 어머니는 맏이인 큰언니 옷을 손수 만들어 입히곤 하셨단다. 배내저고리며 끈 달린 주름치마와 봉긋한 퍼프소매 블라우스까지 참 다양했다. 그 흔적을 증명해 주는 듯 어린 꼬마는 빛바랜 사진 속에서 예쁘게 미소 짓고 있다. 그 옷들은 지금의 기성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제대로 만들어 놓은 듯 싶었다. 어머니의 솜씨에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재봉틀의 묘한 매력에 사로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친정집 작은 방 한 귀퉁이에 주인을 잃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 모양새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질 않으니 그럴 수밖에…

재봉질 하던 어머니 모습은 내 기억 속엔 없다. 잠재의식 속에 살아있는 막연한 영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재봉틀 앞에 앉아 있을라치면 재봉질하시는 어머니 정겨운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등을 구부리시고 부지런한 발놀림으로 발판을 움직이는 어머니, 그 뒷모습이 나를 붙잡아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왜 이토록 재봉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일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를 품은 어미가 되면서 어머님은 더욱 그리게 된다는 사실, 이는 ‘자식을 키우고서야 어버이의 은혜를 안다.’는 선인의 말씀을 되새기고 있음이 아니랴 싶다.

우리 어머니가 그러했듯, 나도 딸아이를 위해 치마 하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고무허리에 삼단으로 주름을 잡은 캉캉스커트로 우선 천에 본을 그리고 재단을 했다. 다음은 올 풀림 방지를 위해 오버 록으로 처리하고, 치마 단 한단 한단을 전부 주름을 잡아 풍성하게 만들어 위 아래로 이어 박고, 허리는 그냥 넓은 고무 밴드를 천과 함께 박음질 했다. 사실 왕초보라 기교도 못 부리고 허리에 지퍼를 단다는 건 너무도 힘든 작업이기 때문에 쉽게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딸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엄마! 정말 이거 엄마가 만들었어? 정말 예뻐. 엄마는 진짜 바느질 대장이다!”
일곱 살 딸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임에 틀림없었다. 그 말에 힘입어 덤으로 민소매 프릴 셔츠도 만들어주었다. 지난여름 딸아이는 빨고 마르기가 바쁘게 입어주었다. 아마 우리 어머니도 나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에 신이 나서 열심히 정성을 들여 만들어 주었던 것이리라.

먼 훗날 아이도 나처럼 재봉틀을 볼 때면 어머니인 나를 떠올리며 재봉틀에 대한 야릇한 감정을 가져줄까? 어머니와 나를 이어준 것처럼 우리 딸도 그렇게 이어줄까?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한다.

재봉틀을 가만히 어루만져 본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우리 딸 삼대를 이어주는 그 어떤 끈끈함이 느껴진다. 그래! 오늘은 우리 아이에게 미처 못해준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에 대해 이야기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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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제주출생, 신세계 문화센터 수필창작 수료. 제1회 제주여성백일장 수필 부문 가작 수상.
제주YWCA 영어동화, 독서 논술 지도자과정 수료. 제주글왓문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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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지혜 2009-01-19 15:16:44
실내 온도를 빨리 올리고 싶다면 가습기를 튼다


외출 후 돌아와서 집이 추울 때 보일러 온도를 무작정 높이지 말고 적당한 온도로 맞춘다.

대신 가습기를 틀어 집에 습기를 더한다.

보일러를 작동시키면 바닥이 덥혀지면서 집이 따뜻해지는데,

습도가 높으면 공기 순환이 빨라져 집이 빨리 데워지는 효과가 있다.

출처:다음카페 생활의지혜!

질시 2006-10-22 13:24:56
낚시하러 가면 바다에 있는 물고기 모두 낚아올려야 하나

참 나원 2006-10-21 23:45:06
등단하는 수필가 참 많은데 그때마다 한번 다루지 않다가 오늘 이렇게 크게 한 이유는?
미디어 제주와 친해야 영 허능거. 아니민 미디어 기자 각시? 애인? 친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