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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칼로 찌른 남편 ‘국민참여재판’, “살해의도 없다”
아내를 칼로 찌른 남편 ‘국민참여재판’, “살해의도 없다”
  • 오수진 기자
  • 승인 2015.05.12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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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살인미수 6:3의견으로 무죄·만장일치로 상해죄 평결
국참, 저조한 참여율과 검찰·변호인단의 진행과정 문제점 지적

전처 자식들에게 모진 말을 하는 아내를 칼로 찌른 남편에게 살해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허일승 부장판사)는 11일 오전 201호 법정에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조모씨(56)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의 쟁점은 피고의 피해자 살해 고의 여부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해죄가 성립되는지 여부였다.

사건은 2015년 2월 4일 오후 10시쯤 제주시 노형동의 한 주택에서 피고가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다 격분해 싱크대에 있던 식칼(총길이 32cm, 칼날길이 20cm)을 들고 찔러 버리겠다고 말을 하면서 피해자 A씨(58·여)의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둘러 좌측 안면부 열상 약 7cm를 가한 일이다.

 

조씨는 공판 내내 A씨의 머리채를 잡고 넘어뜨린 사실과 칼을 휘두른 것은 맞지만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극구 부인해 왔다.

검사 측은 피해자 A씨가 남편에게 상해를 입어 병원을 방문한 기록과 범행도구인 식칼을 증거 물품으로 내세우며 칼에 찔린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아내 A씨의 얼굴 상처는 몸싸움을 하다 부엌에 있던 앉은뱅이 식탁의 날카로운 부분에 긁혔을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검사 측은 국과수 감정의뢰 결과 범행도구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식칼 옆면과 밑면에서 A씨의 DNA가 나왔고, 조씨가 주장하는 앉은뱅이 탁자에는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검사 측은 “조씨가 81·91·99년도 등 폭력 및 마약으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2014년에는 가정보호 사건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다”며 “조씨의 반복적인 폭력성은 이미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피해자 A씨가 사건 당시를 녹음한 내용과 조사 과정에서 돌연 5000만원의 합의금을 받았던 사실, 사건이 안방에서 이뤄졌는지 여부를 두고 공방이 오갔다.

검사 측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 A씨에게 변호인 측은 “녹음파일 내용이 경찰서에서 진술한 내용들과 일부 다르다”며 “증인도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한 채 진술한 것 아닌가”라며 물었다.

이에 A씨는 “평소 남편이 말을 자꾸 바꿔서 습관적으로 녹음을 한 것”이라며 “진술을 번복한 이유는 같이 살아온 시간도 있고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해주려고 했다. 날 죽이려고 했던 것은 맞다”고 반박했다.

A씨는 “내가 안방에서 기도를 하려는데 섬뜩한 느낌이 들어 뒤돌았을 때 칼에 찔린 것”이라며 “평상시에도 죽이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사건 당시를 설명했다.

피고인 심문에서 조씨는 아들에게 새어머니와 만나 어떤 방식으로라도 합의해 석방만 되면 된다고 합의를 종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사건 발생 당시 행적이 불분명 했던 것에 대해 조씨는 “그때 당시에는 그게 이렇게 큰 죄가 될 줄은 몰랐다”며 “아내가 내 자식들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해서 화가나서 그랬다. 코피가 나는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검사 측은 최후변론에서 “칼을 가지고 죽여버리겠다고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며 “A씨는 이미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죽을 고비에 여러 차례 놓였던 것”이라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변호인 측은 최후변론에서 “검사 측의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며 “녹음 내용과 녹음시기 등을 봤을 때 증거로 채택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집행유예를 요청했다.

이어 “만약 살해의도가 있었다면 피해자가 뒤돌아 있었기 때문에 가장 죽이기 쉬웠을 것”이라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죽어도 좋다는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욱하는 마음에 그랬을 것”이라며 배심원단에 선처를 호소했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그림자배심원단은 피고인의 폭행 전과와 수사기관에 합의를 종용하게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무겁고, 피해자에게도 일부 범행 발생 요인이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으나 양형에 대해서는 온도 차이를 보였다.

그림자배심원단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술을 마시기만 하면 폭언을 일삼는 점을 미뤄 재범의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일정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2~5년의 실형을 선고하자는 의견을 보였다.

또 실형도 중요하지만 피고에게는 치료와 사회복귀 프로그램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림자 배심원도 있었다.

배심원단 역시 살인미수에 대해서는 6대 3의 의견으로 무죄 평결을, 상해죄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 등이 나빠 피해자가 자칫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합의를 종용해 수사기관에 허위진술을 하게 한 점은 죄질이 무겁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가 1회 공격 후 재차 공격하지는 않았던 점과 사건 발생 후 ‘여보 큰일났다’라며 병원으로 데려간 점 등으로 봤을 때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사회봉사 80시간, 알콜 중독 치료 40시간 수강할 것”을 선고했다.

# 제주지역 국민참여재판제도 한계

11일 제주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제조가 도입된 지 7년이 지났음에도 국민들의 저조한 참여도와 검찰 및 변호인 측의 매끄럽지 못한 진행과정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림자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A씨는 “검사와 변호인들이 반복된 질문들을 수차례 하면서 오랜 시간 재판을 진행하다보니 배심원들의 판단을 오히려 흐리게 했다”며 “배심원들의 판단을 이끌어 내려한다기보다는 피고와 증인들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 같았다”고 일침했다.

또 B씨는 “국민참여재판인데 ‘국민’이 너무 없었다”며 “국민의 참여도를 높이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법원의 홍보 부족에 아쉬워했다.

국민참여재판제도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 2008년 1월 1일부터 국민이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형사재판 제도다.

해당 지방법원 관할구역 내 만 19세 이상의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배심원 선정절차를 거쳐 재판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제주지역의 국민재판은 2012년 10건 접수·6건 선고, 2013년 15건 접수·1건 선고, 2014년 11건 접수·2건, 2015년 1건(오늘사건 비포함)이 진행됐다.

국민재판은 피고인 입장에서 죄의 유무나 양형 선고에 도움을 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애초 예상과는 달리 제주에서는 국민재판을 신청하는 사례가 드물다. 국민재판의 무죄율이 5.7%로 2%도 되지 않는 일반 형사재판 무죄율의 3배인 점을 봤을 때 의외의 결과다.

제주법원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국참 신청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는 혈연·지연으로 얽힌 제주지역의 특성상 국민재판으로 공개되길 꺼려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날 열린 재판과정은 제주지역 국민참여재판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기회였다.

검찰이 사건 당시의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많은 증거들로 배심원단에게 본 사건이 살인미수라 주장했지만 배심원단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재판부의 의견과 동일한 상해죄만을 평결했다.

대법원의 2008년~2012년 국민참여재판 성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배심원의 평결은 재판부 판결의 일치율과 92.2%에 달했다. 또 양형의견과 선고 형량의 유사성도 87%다.

일각에서는 배심원들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역할을 지니기 때문에 재판부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이다.

배심원 수준에 대한 우려보다 어려운 재판용어를 쉽게 바꿔 다양한 생각을 가진 배심원들의 이해도와 참여도를 높여 줄 필요가 있다.

고정돼 있는 법 보다는 국민들에게서 나오는 상식에 따라 법관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제주지역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의 참여도를 이끌어내고 그에 합당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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