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둘이 훌쩍 커버리니 예전처럼 동화를 들려줄 일이 없군요. 동화책을 손에 쥐고 애들에게 읽어주던 시절…. 햇수로 따지면 오래지 않은 일인데요, 왜 그리 먼 예전처럼 느껴질까요. 문뜩 예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간을 붙잡고만 싶은 건 물론, 시간을 되돌려 앙증맞은 어린 그 때의 모습을 지닌 애들을 품에 안고 싶어요. 그건 바로 언젠가는 애들이 내 곁을 떠나 버릴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 동화에 나온 이야기들을 들려줄 땐 마주보고 책을 읽어주는 게 아니라, 내 무릎에 애를 앉혔죠. 시선은 동화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 자신이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애나, 똑 같습니다. 그래야 시선이 통일되고, 스킨십을 통한 교감이 이뤄진다고 하죠.
그런데 가장 읽기 어려운 동화책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쩔지 모르겠는데, 그 책만 읽으려면 울먹이곤 했죠. 그렇다고 펑펑 울거나 한 건 아닙니다. 말은 하되, 평상음으로 동화책을 읽어주지 못했다는 뜻이죠. 지금 그 책을 꺼내봅니다. 로버트 먼치가 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담고 있어요. 흥이 나는 것도 아니고, 흥과는 정반대인 우울한 것도 전혀 아니죠. 대신 거기엔 ‘인간의 냄새’가 있어요. 그래서 그 책을 읽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왜? 사랑이 담겨 있으니까요.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속의 주인공은 아기에서 출발해 어느덧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는, 좀 진부한 이야기죠. 이 책은 노랫말로 시작해 노랫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노랫말은 어머니가 이야기 속 주인공을 향해 던지는 사랑의 속삭임입니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자 이 노랫말을 들려줍니다. 품에 꼭 안고 이 노랫말을 들려줍니다. 낮에 실컷 말썽을 피울 때 그 놈의 아기를 ‘동물원에라도 팔아버릴까’라고 생각하지만 잠자는 평안한 얼굴의 아기를 떠올리며 어머니는 다시 이 노랫말을 들려줍니다.
아기는 좀 더 커서 십대 소년이 됩니다.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음악을 듣고 다니곤 합니다. 그래도 소년이 잠들면 다시 어머니는 소년 곁에서 이 노랫말을 들려줍니다.
소년은 결혼을 한 뒤 어머니 곁을 떠납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러 먼 길을 갑니다. 그 아들이 사는 곳에 가서는 잠을 자는 아들을 확인한 뒤 그 노랫말을 다시 들려주죠.
태어나서, 소년이 되고, 결혼을 한 아들을 찾아가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이젠 더 이상 이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그 노랫말을 제대로 들려주지도 못할 정도가 돼버렸어요. 그제야 아들은 어머니를 이해합니다. 이젠 아들이 어머니를 안아주네요. 그러곤 노랫말을 들려줍니다.
사랑해요 어머니 언제까지나
사랑해요 어머니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은 늘 나의 어머니
중학교 3학년이 된 큰 애(미르)는 이젠 내 무릎엔 없어요. 예전엔 둘째(찬이)가 차지한 무릎을 되찾겠다고 나서기도 했지만 이젠 그럴 생각은 아예 없는가 봐요.
이젠 내 무릎은 둘째 세상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틈만 나면 내 품에 들어옵니다. TV를 볼 때, 어딘가 눕고 싶을 때 아빠의 두 다리가 보이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지하죠. 아빠가 서재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도 무릎에 슬쩍 들어오는 애입니다. 그러나 첫째가 아빠의 무릎을 떠났듯이, 둘째도 언젠가는 아빠의 무릎을 떠나겠죠. 그러면 내 무릎은 허전해져 시려가겠죠.
중학생인 애들, 그래도 올해 어린이날을 챙겨준답시고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나가고 외식도 하곤 했지만 어린이가 아니어서 좀 아쉽네요.
3년전이군요. 어린이날에 집안 일이 겹치면서 그 날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때가 있죠. 그래서 약속을 했답니다. “미르야, 넌 영원한 아빠의 어린이야.”
애들을 아빠의 영원한 어린이로 남기고 싶지만 행동은 그렇게 잘 되질 않아서 문제군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의 노랫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미르 찬이, 너희들을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희들을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들은 늘 나의 귀여운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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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요양원의 어르신들께 읽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다시 책장에서 꺼내, 눈물 쏟으며 읽어야 겠습니다.
농촌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하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아니, 찾아가서 한번 안아 드리고 와야 하겠습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