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행복의 배신
우리가 아는 행복의 배신
  • 홍기확
  • 승인 2015.05.09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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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80>

행복이 대유행이다. 모두들 행복하라고 떠들어댄다.
강요된 행복은 대재앙이다. 깔끔한 논리를 펼쳐본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는 오류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가 맞다.

사냥꾼이 사슴을 잡으면 행복하다.
사슴을 가족들과 나누어 먹는다.
사슴을 잡은 행복과 맛있게 먹는 식구들의 모습.
느끼는 행복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하지만 이 행복은 결코 오래가서는 안 된다.
현실에 만족하면 생존할 수 없다.
행복이 식어야 한다.
사냥꾼은 내일 또 사냥을 나가야 한다.
다시금 행복을 찾아야 한다.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면 행복하다.
주변의 인정과 가족의 인정에 얼마간 행복하다.
하지만 이 행복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오래가서도 안 된다.
부장의 행복은 급속도로 식어야 한다.
상무로 진급한 이후의 행복을 갈구해야 한다.
뛰어야 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게 인류는 길들여져 왔다.
현실에 만족하면 생존의 의지가 없어진다.

이것이 인류의 출현 이후 1만년에 걸쳐 인간의 존재를 지탱해온 논리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는 오류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가 맞다.
바꾸어 말하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다시금 말하면 행복은 결코 어여쁜 감정이 아니다.

행복은 지독한 생존의 욕구다.
행복은 우아한 수사와 화려한 고백이 아니다.
행복은 격렬한 동기와 처절한 노력이 전부다.
우리가 아는 행복의 배신이다.

행복에 배신당하기 싫은 사람도 있을 터.
생존을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논리를 ‘활용’해본다.
인류의 발달과 함께한 DNA와 본능, 뇌를 속인다.
행복의 배신을 다시금 배신할 수 있다.

‘큰 행복’ 한방보다는, ‘작은 행복’ 수십 방을 뇌에 때린다.
생존에 함몰된 행복논리를,
일상과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논리로 바꿀 수 있다.
결국 행복을 인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날이 행복할 수 있다.

물론 ‘작은 행복’ 수십 방도 어느 날에는 몇 방 밖에 못 때릴 수 있다.
그때는 가격·노력대비 성능비가 뛰어난 사소한 행복을 찾는 게 좋다.
즉, 유효기간이 가장 긴 행복을 우선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행복의 유효기간에 대해 살펴본다.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한 시간 동안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낮잠을 자라.
하루 동안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낚시를 하라.
한 달 동안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결혼을 해라.
일년 동안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유산을 받으라.
평생 동안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다른 누군가를 도와라.’

남을 돕는 것은 최장기 유효기간을 갖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봉사하면 행복하다.
남을 돕는 것은 이타적이지만, 나에게는 다분히 이기적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마당 쓸고 돈도 줍고.

아내는 바빴다. 어제 설거지를 내가 했다.
아내는 바쁘다. 오늘 설거지를 내가 한다.
아내는 바쁠 것이다. 계속 설거지를 내가 할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에서 설거지는 아내가 한다.
아무리 가사분담을 해도 아내는 내가 본인의 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거지는 어떤 의미의 봉사다.
아내에게 칭찬받고 나는 행복하고.
설거지가 짜증나는가? 귀찮은가?
가장 유효기간이 긴 행복, 즉 봉사인데?

온난화를 저지하거나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는 없다.
(로보트 태권V나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이 충분히 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성격을 바꿀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바꾸기 힘들다. 노력해서 바꿀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지극히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게 낫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이 노력대비 효과가 가장 좋다!)

다음으로 행복의 유효기간이 길진 않지만,
자주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세상에 대한 관심.

우리는 바쁜 것과 무관심한 것을 자주 혼동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우리는 바빠서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변의 아름다움에 그동안 무관심했을 뿐이다.

나훈아의 노래 중에 『잡초』가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이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생각에 잠기게 되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이름 모를 잡초의 이름을 지금쯤은 알아냈을까?

어떠한 것이든 이름이 있다.
야생화라는 큰 타이틀 안에서, 들풀이라는 범위 안에서도
수많은 풀과 꽃들은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무관심했을 뿐이다.

김춘수의 시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고, 감탄하고, 뜨거운 관심을 갖고.
이러한 것들이 행복의 유효기간은 짧을지 몰라도,
자주, 아주 자주 행복할 수 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는 오류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가 맞다.

우리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
세상은 우리가 불행하다며 행복하라, 행복을 배우라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하다.
다만 그간 우리 주변의 행복에 무관심했을 뿐이다.

노래도 있지 않은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이런 노래를 만든 작사가 양인자의 숨겨진 노래.
김국환의 <타타타>
‘타타타’의 뜻은, 산스크리트어로 ‘그래, 그거야!’

노랫말을 음미해보자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행복을 손에 쥐고 있을 수는 없다.
노래를 하라.
세상의 노래를 들어라.
짧고 굵게 행복하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가끔 길게 행복할 수도 있다. 봉사활동(?)
김국환 노래,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의 노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이 곡을 만든 양인자 작사가는,
국내 최고의 작곡가, 김희갑 작곡가와 30여년된 부부다.

조용필의 앞서 말한 노래, 김국환의 노래,
<립스틱 짙게 바르고>, <향수>, <사랑의 미로>
뮤지컬 <명성황후> 등 300여곡이 넘는 노래를 함께 지었다.

남편인 김희갑 작곡자는 한국전쟁 1·4후퇴 때인 1951년,
25야전병동에서 ‘접시를 닦으며’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했다 한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1991년.
부인인 양인자 작사가는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의 노랫말을 쓴다.
남편인 김희갑 작곡가는 곡을 만든다.

이 둘 부부는 그간 행복했을 듯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듯하다.
행복은 커다란 의미의 봉사활동과 주변에 대한 관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미 실행하고 있다면 행복에 관한 고민은 집어치우라.
이미 일상의 행복을 ‘발견’했다면 행복에 관한 책은 집어던지라.

노랫말 전체를 늘어놓으며 글을 마친다.

‘자 그녀에게 시간을 주자.
저야 놀든 쉬든 잠자든 상관 말고.

거울 볼 시간 시간을 주자.
그녀에게도 시간은 필요하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아항!
그건 바로 내 사랑의 장점
그녀의 일을 나도 하는 것 필수감각 아니겠어.
그거야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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