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16:51 (목)
[기고]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나라
[기고]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나라
  • 미디어제주
  • 승인 2015.04.24 12: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제주대학교 봉사동아리 로타랙트 회장 김대우

봉사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봉사를 단지 몇 글자만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를 하며 느끼는 것 또한 저 몇 글자에 비해 정말 많은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 또한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봉사동아리를 처음 들 무렵엔 고등학교 시절 봉사하던 것과 같이 그저 봉사활동을 간 시설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내가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 수동적인 봉사만 해왔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봉사란 껍데기만 두르고 일만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하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봉사를 원했고, 마침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권익옹호 캠페인 봉사활동이란 기회를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먼저 건네 왔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 해보는 일에 잘할 수는 없는 법. 동아리 인원모집부터 시작해서 복지관에서 원하는 스스로 하는 봉사, 능동적인 봉사를 할 친구들을 모으는 게 중요했다. 하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수업시간이 겹치는 친구들, 능동적인 봉사를 안 해봐서 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친구들에게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인원들을 모을 수 있었다.

캠페인 일주일 전 복지관 직원분들과 미팅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짧지만 심도 있는 설명과 함께 왜 그들의 인권이 무시당하고 왜 우리가 장애인분들의 옹호자가 되어야 하는 지, 이 캠페인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얘기들을 듣고 스스로 마음을 다시금 다잡았다. 진정으로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되는지 자세히 알아보겠노라고 생각했고, 장애인의 날 당일이 되었고,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구성해 장애인 비장애인을 가리지 않고 각자의 생각을 권리, 지지, 시선, 변화라는 네 가지 타이틀로 나눠서 들어보려 했다.

처음엔 봉사에 참가한 우리의 생각을 먼저 적어 붙였었는데, 당사자가 아닌 우리로서는 그분들의 생각이 어떤지 알지 못해 그저 겉핥기식으로 인권을 지켜줘야 한다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인지, 어떤 시선이 두렵고 싫은 건지, 지지하는 방법은 무엇이 좋은지, 변화는 좋지만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유지되어야 하는지조차 몰랐었다. 그러다 행사 시작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장애인분들이 오시고 마인드맵 참여율이 급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극적으로 생각을 표현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고는 하지만 인권이란 게 어떤 권리인지, 아니 그런 권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자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말하기보단 ‘몸 어디가 불편하므로 도와 달라’라는 정도로 그쳤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장애인의 처지를 대변하고 옹호하고는 싶지만, 그들조차 그들의 입장을 피력하지 못하고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그 불편이 덜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기보다는 해보질 못 했기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표현을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더 우울하게 한 것은 어떤 장애인 한 분이 말씀하시길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거 무엇하러 말하느냐”라는 말씀이 정말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그래서 더욱더 캠페인에 내 힘을 보태고 싶어졌고, 한분 한분 생각을 여쭙고 그 생각을 마인드맵에 하나씩 붙여가며 장애인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귀를 기울이며 느낀 것 또한 적어보자면 사람마다 각자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듯이 장애인분들도 같은 장애인이지만 그분들이 권리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양했다. 우선 장애인당사자와 보호자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권리를 인정받고 주장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허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언어적 의사소통이 불편하신 분들은 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에 소극적이었고,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도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한계에 부딪힌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모든 장애인이 이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신체적 장애가 있으신 분도 소극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 장애가 있으신 분들이 더 적극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극적이면 그분들을 돕고, 소극적이면 같이 이끌어가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 만들진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조금 더, 단 1%라도 그들의 삶의 질이 나아진다면 그것도 나름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 중에선 너희가, 또 우리가 왜 장애인들의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힘써야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린 단지 평범하게 태어났을 뿐이고 혹은 그 사고를 안 당했을 뿐인 비장애인, 아니 예비 장애인이라고, 우리 또한 얼마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그러기 전에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돕고 싶은 점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점이 있다. 한 하반신 장애인분이 문득 인권에 대해 여쭤보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넌 고기에 등급이 있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물어오셨고, 난 당연히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장애인에게도 등급이란 게 있는데 장애인과 고기랑은 같은 존재냐고... 난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드렸다. 그리고 이어가신 말씀이 장애인 등급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 일본에만 있고 다른 나라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막말로 병신에도 등급이 있느냐는 직설적인 말씀도 하셨다.

난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었고, 옹호자가 할 일에 대해 뿌리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인 인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해져 부각된 문제지만, 그 속에는 알게 모르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고 다르게 보는 시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장애인 등급제이고, 수백 수천 번 장애인들의 인권문제를 강조한다고 한들 그 시선을 고치지 못하면 결국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어질 것이고, 이와 같은 정책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와도 자신들의 입장을 말하기조차 힘든 장애인분들은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인의 옹호자뿐만 아니라 우리네 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는 그 시선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며 같은 세상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박 겉핥기식의 정책들을 내놓는 것이 아닌 뿌리부터 박혀있는 편견, 시선들부터 고쳐나가 정말 작게는 외출할 때 자신들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일부터 크게는 혼자서 외출을 가능케 할 만큼 장애인복지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우리들이 숙제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