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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리 ‘지미둥이’ 순경부터 신흥리 ‘몰라’ 구장까지”
“신촌리 ‘지미둥이’ 순경부터 신흥리 ‘몰라’ 구장까지”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5.04.1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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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가회의, 4.3 집단학살 광풍에 맞선 제주판 ‘쉰들러’를 찾아나서다
신흥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난 후 4.3문학기행 참가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 4.3의 집단학살 광풍부터 예비검속 때까지 조천읍 신촌리, 남원읍 신흥리 등에서 대량 학살 명령을 거부한 이들에 대한 얘기를 전하는 후손들에게도 4.3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8일 제주작가회의(회장 김수열) 주관으로 ‘광풍(狂風)에 맞선 시대의 의인(義人)을 찾아서’를 주제로 떠난 4.3 문학기행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막기 위해 힘썼던 독일인 쉰들러처럼 많은 도민 희생자들을 지켜낸 9연대장 김익렬, 성산포경찰서장 문형순의 흔적을 찾아나선 뜻깊은 기행이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신촌초등학교. 49년 11월, 당시 신촌국민학교 운동장에 주민들을 집합시켜 놓고 기관총을 난사하려던 현장에서 기관총을 막아선 김순철 순경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4.3 당시 신촌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마을 주민들을 겨냥한 기관총을 막아섰던 김순철 순경의 얘기와 아버지등 가족들의 사연을 전하고 있는 김낭규씨.

증언에 나선 이는 사람은 신촌교 설립자이자 무장대 부사령관이었던 김대진 선생의 유족이었다.

김대진 선생의 딸 김낭규씨(76)는 “사복형사가 와서 ‘아버지를 찾아내라’고 하던 것을 피해 일본으로 도피하려다 배를 타지 못하고 결국 외삼촌과 함께 더는 숨을 곳이 없어서 산으로 가게 된 거였다”라고 증언했다.

“어머니는 조천지서 앞에서 한 번에 총을 맞고 죽은 것도 아니고 잔인하게 죽였다더라”는 얘기, 아버지를 따라 제주북교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김씨는 조천중을 설립한 할아버지와 신촌교를 세운 아버지에 대해 “3.1절 기념행사에 태극기를 직접 만들어 참석해 나라를 일으켜세우려 했고, 마을에 학교를 세운 애국자이자 교육자였다”면서 아버지가 무장대 부사령관이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4.3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아픔을 토로했다.

4.3평화기념관 상설전시장의 한 구석에 있는 ‘집단학살 속의 의로운 바람’ 전시를 관람한 후 문학기행 참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 곳은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

남원읍 신흥리에서 4.3 당시 '몰라 구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김성홍 신흥리장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 유족 김복순씨.

신흥리에서는 ‘몰라 구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당시 김성홍 구장(區長, 현재 이장)의 얘기를 들었다.

토벌대가 마을 주민들의 성향을 묻는 데 대해 자신의 답변이 자칫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해 무조건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해 얻게 된 ‘몰라 구장’이라는 김성홍 구장의 별명이 지금도 마을에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김성홍 구장의 7남매 중 여섯째라고 자신을 소개한 딸 김복순씨(82)는 “당시 열다섯살이었는데 거의 매일 토벌대와 경찰을 위해 밥만 했던 기억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닭을 잡으라고 해서 어미 닭을 잡았는데 어미 닭을 잃은 병아리 열다섯마리가 시름시름 앓다가 사흘만에 다 죽었다는 기억을 되짚어내기도 했다.

당시 신흥리 파견소장으로 부임해온 장성순 경사가 ‘과거의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누가 어떻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선언, 김 구장과 함께 신흥리 마을 주민들의 희생을 막아냈다는 미담도 장 경사 덕분에 목숨을 건진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신흥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한 유족이 남원읍 신흥리에서 정방폭포까지 끌려가 희생된 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부친을 포함한 3형제가 한꺼번에 끌려갔다가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아버지를 소개한 다른 유족의 안타까운 사연은 기행 참가자들에게 4.3의 가족사가 여전히 유족들에게 아픔에 남아 있다는 현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행사를 주관한 제주작가회의 김수열 회장은 평화전시관 내 ‘의로운 바람’ 전시물 앞에서 “선정된 이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전할 수 있어야 이 공간이 전시공간으로 가치가 있다”면서 “4.3 당시 많은 희생을 막아낸 사람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올해부터 이들의 흔적을 찾아나서고자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어 “‘의로운 바람’ 전시공간이 전시관 개관 때부터 다른 사람을 찾아서 전시하기 위해 공간을 비워놓았는데 지금까지 변한 게 전혀 없다”면서 “4.3 관련 부서 등이 여지껏 직무유기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제주민예총의 박경훈 이사장은 “‘의인(義人)’이라고 하면 뜻을 세워 실천한 사람을 뜻한다”면서 “‘의인의 바람…’ 코너에 전시된 사람들을 ‘의인(義人)’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신중한 용어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3문학기행의 마지막 코스로 양용찬 열사의 묘소를 찾은 참가자들이 빗 속에서 참배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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