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각 다투는 장기이식 환자를 위해 항공 좌석을”
“촌각 다투는 장기이식 환자를 위해 항공 좌석을”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4.1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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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30년 맞은 제주한라병원 인공신장실 지킴이 채경숙 수간호사

콩팥병(신부전)을 앓는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자신에게 맞는 콩팥을 기증받는 일이다. 콩팥병을 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콩팥을 기증받는데 이는 운이 좋은 경우이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콩팥을 기증받기까지 십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콩팥병을 앓는 이들은 ‘혈액투석’을 해야만 한다. 혈액투석을 통해 자신의 피에 있는 노폐물을 걸러내지 않는다면 죽음을 맞아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콩팥병 환자들을 위한 시설이 있다. 제주한라병원은 이 시설을 갖춘지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30년 전인 1985년, 제주한라병원 김성수 병원장의 의지로 이 병원에 인공신장실이 만들어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주도내 콩팥병 환자들은 육지부로 혈액투석을 가지 않으면 안됐다.

“콩팥병 환자들은 1주일에 3차례는 혈액투석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 유지를 하지 못하게 되죠. 환자들은 콩팥 기능이 안되기 때문이에요. 콩팥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몸에 쌓인 노폐물을 걸러내지 못한답니다.”

26년째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제주한라병원 인공신장실의 채경숙 수간호사.

인공신장실의 채경숙 수간호사는 콩팥 기능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러고보니 그는 26년째 인공신장실을 지키고 있다. 1989년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인공신장실에 들어왔고, 2015년 현재까지도 다른 부서로 옮기지 않고 환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26년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다. 콩팥병을 진단받고 목숨을 스스로 끊기도, 투석중에 위암진단을 받아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일들을 지켜봐야 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간호사로서 ‘왜 그래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림은 기쁨을 주곤 한다. 그는 15년의 기다림 끝에 콩팥을 이식받은 환자를 기억한다.

“밤 12시에 전화를 받는 일이 허다했죠. 환자들에 맞는 기증자가 나타나곤 하거든요. 그래서 밤 시간에도 전화가 와요. 15년을 기다린 환자가 있었는데 (적출된 신장을 가져오기 위해) 제가 토요일 첫 비행기로 올라갔어요. 하지만 적출이 늦어지면서 비상사태가 오고야 말았어요.”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전화를 100통화는 넘게 했다고 한다. 그만큼 급했기 때문이다. 자칫 15년을 기다린 환자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였다.

“그 분은 일생을 너무 착하게 살던 사람이었어요. 투석실에만 오면 행복하다고 한 분이었죠. 환자이면서도 이발봉사를 했던 분이랍니다. 그 분을 위해서 반드시 신장이식을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결정을 하기로 했어요. 제주에 있는 환자를 급히 서울로 올려보내기로 말이죠.”

당시 콩팥을 이식받은 환자는 갓난아기 사내아이를 두고 있었다. 그 애는 군대를 가고, 콩팥을 이식한 뒤 예쁜 딸도 얻게 된다. 다들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제주도내 혈액투석을 하는 이들은 900명 가량이며, 콩팥을 이식받은 이들은 100명 가량 된다. 제주한라병원이 30년전 인공신장실을 개척하면서, 이젠 도내에서 투석을 할 수 있는 곳도 12곳이 된다. 하지만 신장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은 제주한라병원 뿐이다. 제주한라병원은 뇌사자로 판정받은 이의 장기를 적출할 수 있다.

제주한라병원 인공신장실.

“기증자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제주에서 기증자가 생길 장기이식을 바라는 다른 지역의 환자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증자의 혈액을 올려보내야 하죠. 그러나 비행기표가 없다고 올려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때는 항공사의 도움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요? 높은 사람만을 위해 항공 좌석을 마련해둘 게 아니라, 제주도민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줬으면 해요. 만일 그 사이에 환자가 사망하면 어떡하나요.”

그는 환자에게서 많이 배운다. 환자들은 인공신장실에 오면 반나절을 보내야 한다. 환자도 어렵고, 가족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60대 환자도 있고, 20대의 젊은 환자도 있다.

“제가 힘들 때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어요. 인공신장실을 찾는 환자들이죠. 그들을 보며 제가 힘든 걸 이겨내요. 제가 젊었을 때는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환자들이 밤중에 전화를 와서 상담을 하기도 했어요. 저는 특수업무를 하고 있어요. 하늘이 제게 ‘사명’을 뛰어넘는 ‘소명’을 준 모양이네요. 간호사를 택하려 한 건 아니지만 환자와 인연을 맺으라고 여기에 온 것 같아요.”

인공신장실을 지키는 이유를 ‘사명’이 아닌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그다. 아픈 이들의 곁에서 간호할 수 있다는 고마움을 느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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