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다. 정확히 말하면 4월 1일이다. 4.3주간이라서 바쁜 와중이었다. 그날 아라리오뮤지엄을 이끌고 있는 김창일 회장이 제주도내 기자들을 초청, 기자회견을 가졌다. 아라리오뮤지엄의 5번째 전시공간인 ‘동문모텔Ⅱ’ 개관과 관련된 자리였다. 기자는 다른 일정으로 그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김창일 회장이 산지천 인근에 있는 고씨가옥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김창일 회장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에 고씨가옥 얘기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서야 알았다.
고씨가옥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소유로 돼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김창일 회장이 고씨가옥을 활용,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줄거리다.
기자가 문제제기를 하고자 하는 건 고씨가옥은 사유가 아닌, 공공의 재산이라는 점이다. 김창일 회장은 제주시 건입동과 일도1동 등 4곳에 미술관을 가동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무척 반가운 건 사실이다. 폐허가 된 건축물을 사들여 다시 살리고 있기에 왜 반갑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꾸 얘기하지만 고씨가옥은 얘기가 달라진다. 고씨가옥은 기자와도 인연이 많은 곳이다. 탐라문화광장 조성으로 옛 건물이 파괴되는 시점에 도내 언론 가운데 고씨가옥 보존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게 기자였다. 그래서 애착이 간다. 그러나 그 애착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고씨가옥은 이후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등 도내 시민단체의 역할이 보태지며 제주도로부터 “보존하겠다”는 확답을 얻었다. 제주도는 근대건축 등 등록문화재 판단을 받지 않더라도 고씨가옥을 보존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제주도는 그런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고씨가옥을 매입했다.
고씨가옥은 ‘원도심 재생’이라는 키워드와도 맞물리는 사안이다. 제주도가 원도심을 보존하려는 의지로 죽지 않고 살아난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걸 김창일 회장 개인의 미술관으로 둔갑시켜서는 안된다. 김창일 회장은 고씨가옥 뿐아니라 고씨가옥과 바로 붙어 있는 금성장 등에 문화공간을 만든다고 언론보도에서 밝혔다.
고씨가옥은 철저하게 파괴될 공간을 시민운동을 통해 되살려낸 의미 있는 장소이다. 그 장소를 미술관을 경영하는 개인이 가진다는 것을 말이 안된다. 그런 발상은 원도심 일대를 김창일 개인의 ‘아라리오뮤지엄 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화는 다양성을 지닌다. 값비쌀 수도 있고, 싼 값의 문화도 얼마든지 있다. 아라리오뮤지엄처럼 차원이 다른 문화를 보여주는 곳도 있고, 대학생 예술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도 있을 수 있다. 아라리오뮤지엄을 경영하는 김창일 회장이 고씨가옥에 눈독을 들이는 건 제주시 원도심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것으로 밖에 비치질 않는다.
더욱이 김창일 회장의 언론보도 내용으로는 제주도와 협의를 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더 큰일이다. 공공의 공간이 돼야 할 곳을, 개인의 뮤지엄 공간으로 만든다는 건 상식과는 멀기 때문이다.
한마디만 하겠다. 고씨가옥은 공공의 영역이기에 그 공간은 개인의 것이 아닌 제주시민, 아니 더 나아가 제주도민의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두길 바란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