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이 쇳덩이를 48년 동안 가슴에 안앙 살아오젠 허난…”
“이 쇳덩이를 48년 동안 가슴에 안앙 살아오젠 허난…”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5.03.31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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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증언본풀이 마당 열네번째 … 양치부·김순혜씨 부부의 기구한 사연
31일 4.3증언본풀이 열네번째 마당에서 증언을 하고 있는 양치부, 김순혜씨 부부.

“군인들이 뜀박질하던 사람들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는데, 하필이면 그 로켓포가 내가 서있는 길가의 큰 돌에 맞았습니다. ‘쾅’ 하는 굉음을 듣고 바로 기절했는데 깨어보니 주위가 깜깜했습니다. 입고 있는 몸빼는 피로 가득 찼고 등어리가 선뜩선뜩해서 만져보니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등과 오른쪽 허벅지에 포탄 파편이 박힌 겁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제가 포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오빠는 자기도 죽여버릴까봐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질 못했습니다. 밤이 돼서야 저를 찾으러 온 오빠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4.3 당시 12살 소녀였던 김순혜씨(78)는 자신이 몸이 로켓포탄의 파편에 찢기던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31일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4.3 증언본풀이 열네번째 마당에서 증언에 나선 김씨는 당시 도립병원에서 포탄 파편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다 낳은 뒤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에 시달려야 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친정 어머니께 ‘나 아파서 죽겠다’고 하니 어머니가 ‘나 죽은 다음에 죽으라’고 해서 어머니 죽기 전에는 절대 죽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몸은 아픈데 병명을 모르니 점쟁이도 찾아가고 귀신이 붙었다고 해서 치병 굿도 여러차례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4년 병원에서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 속에서 폐에 박혀있는 파편 조각을 발견하게 됐다. 무려 48년 동안이나 포탄 파편이 박힌 채로 살아왔던 것이었다.

당시 오라리에 살았던 김씨는 5남매 중 큰오빠는 연동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고, 막내동생은 피신하던 중 소에 깔려 5개월 정도 고생하다 죽었는데 아직 희생자 신고도 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3대 독자인 남편 양치부씨(76세)의 기구한 사연도 이어졌다.

연동리에 살았던 양씨는 4.3 사건 이전에 생모가 죽고 이호리 출신 작은어머니가 계셨는데, 아버지는 4.3 당시 오라3동으로 소개된 후 목포형무소로 끌려가게 됐다. 그 아버지가 수감생활을 몇 달 남겨두고 6.25가 터지면서 행방불명이 돼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 시체도 못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는 청각장애가 있어 피난을 가던 중 경찰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해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양씨는 “두 분이 혼인신고가 안돼 있어서 위패 봉안소에 본적지별로 위패가 진설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진설돼 있다”면서 “지난번 위령제 때 가보니 여전히 어머니와 아버지 위패가 따로 진설돼 있던데 위패만이라도 나란히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양용해 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장이 예비검속 때 부친이 끌려가 시신도 찾지 못하고 연좌제 사슬에 묶여 살아온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세 번째 증언자로 나선 양용해씨(82)는 예비검속으로 아버지가 희생된 뒤로 연좌제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소개했다.

양씨는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유족회를 결성, 13년째 유족회를 이끌어오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 지난해 12월 최종적으로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양씨는 “지난 날의 어려웠던 고통의 역사를 똑바로 전해주고 다시는 이 땅에 그런 불행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과 제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최근 일부 보수단체들이 4.3 전시물과 불량위패를 거론하면서 4.3 흔들기를 시도하는 데 대해서도 그는 “오랜 반목 끝에 경우회와 유족회가 손을 잡지 않았느냐. 의미심장한 일이다. 쉽게 말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하나가 됐다는 거다”라며 “이제 4.3은 화해와 상생을 넘어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강조했다.

특히 양씨는 “이제 우리만의 4.3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4.3, 세계의 4.3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굳이 4.3 추념일에 대통령이 오고 안오는 것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8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4.3의 미래를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증언본풀이가 아니라 마치 선거 유세에 나선 후보자의 유세를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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