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요일 오전 같은 나날들
정말 일요일 오전 같은 나날들
  • 홍기확
  • 승인 2015.03.23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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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78>

#1 삶은 소소한 과정의 집합

 다들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놀 수 있다고 한다. 들어가 보니 학과 공부에 레포트, 발표. 놀 시간이 없다.
 다들 대학 졸업만 하면 된다고 한다. 취직할 수 있다고 한다. 졸업해 보니 대학에서 뭐 배운 거 있느냐 한다. 스펙을 묻는다. 자격증, 어학연수, 공모전 수상, 인턴십 경력. 취직할 수가 없다.
 취직만 하면 끝이라고 했다. 그때부터는 행복의 시작이라고 한다. 취직해 보니 사내정치는 말도 못하고 달을 보며 출근, 별을 보며 퇴근한다. 쉴 시간이 없다.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 결론은 내려졌다. 삶은 명쾌한 결론이 없는 소소한 과정의 집합이다.


 #2 바쁨과 멈춤

 한자 ‘바쁠 망(忙)’은 마음(心)을 잃는다(亡)는 뜻이다.
 한자 ‘바를 정(正)’은 한번(一)을 멈춘다(止)는 뜻이다.
 바쁘면 마음을 잃는다.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한번 멈춰야 한다.


 #3 시간이 필요하다

 도몬 후유지의 『공부하는 힘, 살아가는 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장 빠른 답이 반드시 가장 적절한 답은 아니다. 특히 ‘배움’은 성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배우다. 자라다. 나아지다. 이런 동사는 속도나 효율로는 환산할 수 없는 종류의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범함을 쌓아올려 비범해지는 존재다.”

 업적을 쌓기보다는 평범함을 쌓아올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 쌓아올린 무언가를 비범함이라 부르고 싶다.


 #4 삶은 맛

 정리하고 포기하는 중이다. 신문 구독은 5개에서 3개로 줄였다. 단체의 사무국장 자리도 이번 달 그만둔다. 2년 정도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 준비도 손을 놓았다. 일이 바빠지니 밴드 연습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고, 몸이 피곤하니 마라톤 등 운동에 소홀해지는 데 대한 특단의 조치다.
 가장 좋아하는 게 공부다. 나는 항상 자기소개서의 취미에 ‘공부’라고 적는다. 하지만 밥벌이를 위한 공부와 내 삶을 위한 공부를 함께 하던 중에 ‘바쁨’이라는 녀석이 개입했다. 그리고 마음을 잃었다. 이제는 한번 멈춰서야 할 때다. 많은 것을 하는 것도 좋지만, 몇 가지를 ‘음미’하는 것이 더 좋다.

 결국 하나가 늘면 하나를 줄이는 원칙을 정립했다.
 삶은 맛이다. 이게 당연한 거다. 근본으로 돌아간다. 음미하지 않는 삶과 행위는 가치가 없다. 천천히 곱씹으며 삶을 음미하고 싶다.


 #5 정말 일요일 오전 같은 나날들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은 일요일 오전에 차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늦잠을 자기 때문이다. 가족 개개인들은 이때만큼은 걱정도 다급함도 없다.
 일요일 오전의 평온함. 부담 없고 걱정 없는 시간. 여유와 멈춤이 있는 순간. 가족과 늦은 아침을 먹더라도, 머리를 감지 않더라도, 부스스한 부부의 모습을 확인하더라도 식구들이 모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아름다운 한 때.
 정말 일요일 오전 같은 나날들, 계속 된다면 어떨까? 세월이 지나 내 인생은 ‘정말 일요일 오전 같은 나날들이었지.’라고 회상할 수 있을까? 도몬 후유지의 말처럼 ‘평범함을 쌓아올려 비범해지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삶은 소소한 과정의 집합이다. 바쁨과 멈춤. 멈춤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삶은 맛이다. 곱씹어야 제 맛이다.
 
 일요일 오전이다. 늦잠 대신 일찍 일어나 평온함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정말 일요일 오전 같은 날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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