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12:24 (목)
이름꽃
이름꽃
  • 홍기확
  • 승인 2015.03.17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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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77>

 옆의 직원이 내 아이의 이름을 듣고는 특이하다며 뜻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바쁜 업무 중에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인 이훤(夷萱)에 담긴 뜻을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동이족 ‘이(夷)’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훤(萱)’을 땄습니다. 동이족(東夷族)은 북아시아를 호령했던 우리 민족입니다. 민족적 특성은 동이족의 기상을 받으라는 것이고, 인물의 특성은 견훤(甄萱, 867~936)을 본받으라는 것이죠.
 동이족 혹은 오랑캐 이(夷)자는 큰(大) 활(弓)을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을 표현한 한자입니다. 웅혼한 기상으로 거침없이 세상을 활보하는 성격을 가지라는 이름으로 지었죠.

 그리고 견훤은 승자가 쓰는 역사로 인해 고려를 세운 왕건 및 자손, 신하들에 의해 편파적으로 평가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경상도 상주의 농사꾼, 아자개의 아들로 태어나 백제를 일으킨(900년) 인물입니다. 신라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고 있을 때 징벌(927년)을 하여 민심을 견훤으로 가게 했죠.
 물론 넷째아들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첫째, 둘째, 셋째아들인 신검, 양검, 용검이 반란을 일으켜(935년 3월)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중죄인에 해당하는 형벌로서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것)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935년 11월)하여 고려가 신라를 병합하자, 고려가 통일을 위해 후백제를 침공하게 됩니다. 자기가 세운 나라를 침공하는데 견훤이 선봉장이 되어 10만 대군을 이끌고 황산전투(936년 8월)에서 아들의 군대를 격파하며 버릇을 고쳐 놉니다. 그리고는 다음달(936년 9월 9일) 견훤은 사망하고, 후백제는 고려에 항복(936년 10월 1일)하여 삼국이 통일됩니다.

 민족적 특성인 ‘이(夷)’는 설명했고 이제 앞의 역사와 인물의 상황을 바탕으로 ‘훤(萱)’을 설명하죠.

 우선 견훤은 자식에게 엄격합니다.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죠. 엄격한 아버지가 되라는 뜻이 첫 번째.
 두 번째로는 자식에게 의존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대기업 CEO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했다던데 저는 마누라와 자식까지도 다 바꿀 용의가 있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우리가 사랑이 식는다면 바로 그 때에 이혼하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제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에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되, 서로 맞지 않는다면 가족은 유지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만한 자신감으로 살아야 하고, 역으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지 말아야 합니다. 그만큼 노력해야 하고 내 아이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는 원래 한자인 원추리, 망우초 훤(萱)자에 담긴 의미입니다.
 원추리는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리는데 원추리의 꽃말은 ‘지성(知性)’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이 두 가지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원추리는 스트레스, 우울증 치료제등으로도 쓰이지만 뿌리, 줄기는 독이 있어 과도하게 먹으면 ‘망우(忘憂)’, 즉 환각상태에 빠지는 독성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울해하지 않으며 근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유를 갖고 과다한 혹사로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대학교 때 이미 내 아들과 딸의 이름을 미리 지어놓았다. 아들을 낳으면 ‘이훤(夷萱)’, 딸을 낳으면 ‘초이(超夷, 동이족을 밟고 뛰어넘는다)’라고 지으려 했다. 자식을 낳아보니 아들이고, 더 이상은 낳지 않았다.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신오대사 왕언장전(新五代史·王彦章传傳)』에 보면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人死留名)’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이름은 꽃이다. 내 아이의 이름은 이런 뜻이고, 꽃이다. 특별한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이름을 누군가에게 진하게 남기길 바란다.

 김춘수의 유명한 시, 『꽃』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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