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미래비전계획인 콘셉트 플랜
싱가포르 미래비전계획인 콘셉트 플랜
  • 이정민
  • 승인 2015.03.02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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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싱가포르 도시계획 이야기] <6> 싱가포르의 도시계획 역사 ②

1. 콘셉프 플랜 수립 배경

1819년 영국인 래플즈 경이 싱가포르를 발견하였을 당시 싱가포르는 어부 200명이 사는 작은 섬에 불과했다. 리콴유 전 총리가 1955년 32살의 나이로 싱가포르 총선에서 국민행동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그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은 세계 일류국가의 싱가포르의 건설이었다. 영국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자, 리콴유를 비롯한 싱가포르 정치인들이 자치와 독립을 요청하였다. 1959년 총선 결과 그가 이끄는 국민행동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자치권을 확보하였다. 그는 36살이라는 나이에 총리직을 맡았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면서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했다. 하지만 1964년 발생한 인종폭동과 싱가포르 자치정부와 연방과의 정책적인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1965년 8월에 갑작스럽게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탈퇴를 강요당하고 독립국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사회・경제・정칙적 변화 때문에 영국의 「도시 및 농촌계획법(1947)」에 근거하여 수립한 최초의 도시계획인 마스터 플랜 1958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물론 이 계획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싱가포르 「계획법」을 보더라도 마스터 를랜의 초안은 마스터 플랜 1958이라 명시되어 있다. 즉, 계획허가제의 도입이나 개발계획과 규제계획을 통한 도시계획의 실현이라는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혼란한 사회상황에서도 1965년과 1970년 두 차례 마스터 플랜에 대한 재정비가 이루어진다.

리콴유 전 총리는 1960년 마스터 플랜 1958의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연합 개발계획 자문단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당시 전 국민의 4분의 1이 중심지역(central area)의 열악한 상가주택이나 불량주거지에 거주하였다. 상가주택 1채에 100여 명이 거주하기도 했다. 상가주택 인근의 도로는 한 마디로 침실, 부엌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허다 했다. 한 마디로 싱가포르 중심지역의 가로 환경은 지저분함 그 자체였다. 또한 당시 실업률은 14 퍼센트에 달했다.

그림 1. 중심지역(central area) 위치도

설상가상으로 1966년부터 영국 정부는 영국 주둔군의 경비를 절약하려고 싱가포르에서 철수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약 영국의 철수가 이루어진다면 실업률은 23 퍼센트까지 치솟을 형편이었다. 한 마디로 싱가포르가 국가로서의 존립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협상 결과 영국군은 1971년까지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군사시설 용지는 싱가포르 국토면적의 11 퍼센트에 달하였다. 마스터 플랜 1958을 수립이전인 1950년 100만이던 인구가 1970년 200만 명을 넘어서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이루어졌다. 급격한 인구증가는 실업률을 더 높아졌고, 기반시설은 더욱더 부족해졌다.

그림 2. 싱가포르 인구추이(1950-2014)

이러한 사회 혼란 속에서도 싱가포르 자치정부는 영국의 농촌 및 도시계획법을 벤치마킹하여 싱가포르 계획조례를 제정했다. 그동안 실적이 지지부진했던 싱가포르 발전신탁(SIT)를 폐지하여 총리실 산하 계획국(Planning Department)를 설치하면서 리콴유 총리가 직접 도시계획을 챙기기 시작했다.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퇴출되면서 마스터 플랜 1958에 포함되어 있던 말레이시아 대학교 계획은 의미를 잃었다. 영국군 주둔지 또한 다른 용도로 활용해야 했다. 불량주택을 허용하던 계획 또한 변경이 불가피했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국제연합 개발계획 자문단은 독립된 싱가포르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국민들에게 적절한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실업률을 낮출 수 있도록 새로운 고용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제시하였다. 싱가포르의 사회・경제・정치적 환경이 열악하고 급격히 변화되었기 때문에, 자문단은 장기발전구상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하여 추진된 것이 콘셉트 플랜이다. 최초의 콘셉트 플랜은 국제연합 개발계획 자문단의 도움을 받아 1967년에 1971년에 수립되었다. 이 이후 1991, 2001, 2013년 세 번의 콘셉트 플랜이 수립되었다.

싱가포르 미래비전계획인 콘셉트 플랜은 계획법에 근거하지 않은 비법정 계획이다. 콘셉트 플랜은 법률적인 효력은 없지만, 싱가포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관련 부처 및 관련 기관과의 협조,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 Concept Plan 1971 

1967년 국제연합 개발계획의 자문을 얻어 도시계획국이 주체가 되어 계획에 착수하였다. 이 계획과는 별도로 중심지역(central area)의 도시개발과 재개발사업은 긴급하게 추진되었다. 4년 동안 콘셉트 플랜과 중심지역 계획에 약 1500만 달러가 지출될 예정이었다. 이 가운데 5백만 달러는 국제연합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림 3. Ring Plan 개념도. 자료: The Strait Times(1978.03.28.)

당시 언론보도(The Straits Times. 1967.04.14.)에 따르면, 자문단의 기술자문 비용, 콘셉트 플랜과 재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현황조사 및 자료 구축비용, 시범적인 도심재개발, 산업단지 개발, 교통망 구축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1967년부터 도시계획국과 자문단은 상당한 시간을 싱가포르 전역에 있는 토지, 건물, 인구, 교통시설 등을 위한 현황조사와 분석에 사용하면서 콘셉트 플랜의 기본 자료로 활용하였다. 이 계획은 일류국가 싱가포르 건설을 비전으로 설정하고, 1992년까지 인구 400만 명을 수용하는 목표로 하였다. 국제연합 자문단의 제안에 따라 “링-플랜(Ring-Plan)” 형태로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개념은 싱가포르 중앙에 있는 중앙저수지를 중심으로 Jurong, Woodlands, Sembawang, Bukit Timah, Thomson, Seletar, Changi 지역을 고밀주거단지나 새로운 산업단지나 국제공항으로 개발하여 링(Ring)행태로 교통망을 연결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림 4. 도시장기발전구상 1971. 자료 : URA

최종안이 도출될 때까지 국제연합 개발계획 자문단의 자문을 여러 번 거쳤다. 자문단은 고속대중교통시스템 구축, 고속도로 건설, 국제공항 개발과 같은 기반시설의 확충과 중심지역 재개발,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주거단지 개발, 실업률 감소를 위한 새로운 산업단지 개발 전략을 제시하였다.

먼저, 기반시설 설치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자. 육상교통의 경우에는 급격한 인구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철도기반의 고속대중교통시스템(Mass Rapid Transit systme)을 구축하고, 각 지역으로 환상형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건설을 제안하였다. 이들 노선 대안의 분석은 교통4단계 모형에 근거하여 평가가 이루어진 후 최종 대안이 설정되었다. 항공교통인 경우에는 기존 마스터 플랜은 Paya Lebar에 있는 활주로를 공항으로 활용하는 것을 계획했지만, 이 계획에서는 향후 확장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Changi 지역에 있는 활주로를 이용하여 국제공항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The Strait Times(1970.03.28.) 보도내용은 기존 계획에서 정한 공항을 이전하는데 이에 대한 공론화과정이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하면서도 향후 확장가능성과 항공기 소음 등을 감안할 때 Changi로 공항을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두 번째, 중심지역 개발 및 재개발사업은 콘셉트 플랜과는 별도로 진행되었지만, 용역기간이 중첩되었다. 당시 리콴유 총리는 지인인 빈세미어스 박사의 도움으로 1968녀 싱가포르 중심지역을 동남 아시아권 국제금융센터로 개발하고자 구상했다. 당시 금융계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서 프랑크푸르트, 런던, 뉴욕,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는데, 샌프란시스코 은행이 문을 닫으면, 스위스 시간으로 오전 9시가 될 때까지는 금융거래가 불가능했지만, 싱가포르에 국제금융센터가 생기면 전 세계 금융이 24시간 운영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지적인 잠재력과 싱가포르 정부의 과감한 금융부문 규제 철폐로 국제금융센터가 가능했다.

하지만 국제금융센터로 중심지역을 재개발하려고 해도 기존 임대료 통제법 때문에 신속한 추진이 불가능했다. 국제연합 개발계획 자문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료 통제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정부는 개발사업이 관보에 고시된 지역에서는 1년 이내에 기존 건축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개발계획의 내용대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토지와 모든 권리를 사업시행 주체인 법정 기관에 양도하도록 제도가 개선됨으로써 중심지역 재개발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세 번째, 주택개발과 관련해서는 매년 27,000호의 주택건설이 필요하다고 제시했고, 새롭게 건설되는 주택 대부분은 주택재개발청이 공급을 담당하도록 했다. 1992년까지 전 국민의 70 퍼센트가 HDB가 공급한 아파트에 거주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네 번째, 산업단지의 개발과 관련된 것이다. 계획을 수립할 당시 싱가포르에는 이륜차를 포함하여 약 15만 대의 차량이 있었다. 1992년에는 이 수치가 무려 70만 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로 인한 도로 혼잡과 같은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개발하는 산업단지 주변에 고밀도 주거단지를 조성하여 직주근접을 유도하였다. 주택개발청은 1971년부터 5년 동안 10만 가구의 공동주택단지와 중심지역과 연결하는 교통수단을 건설하기 위해 5억 싱가포르 달러를 투입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마지막으로, 산업단지의 개발이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산업단지인 주롱단지는 최초 마스터 플랜에 의해서 추진되었고, 이 계획에서는 영국군 주둔지로 이용되었던 Sembawang 군사시설을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자문단은 단순히 제조업 시설이 집적된 공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주거단지, 보건소, 민간병원, 어린이집, 식당, 은행 등을 위한 부지도 마련하도록 제안하였다. 중심지역과 주롱산업단지까지 구간은 새로운 산업을 위한 코리더(corridor)로 계획을 했고, 싱가포르 국립대학교도 이곳으로 캠퍼스를 이전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3. 마치면서

이 계획이 수립될 당시 싱가포르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당시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매우 심각했고, 노조의 불법파업이 만연했다.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다 보니 크고 작은 인종 폭동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싱가포르가 국가로서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당시 총리였던 리콴유만이 싱가포르를 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시계획을 선택했다.

비전전과 콘셉트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 금융과 관련된 규제를 철폐했고, 도심재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를 개선했다. 국민들이 단합될 수 있도록 주택재개발청을 통해 국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였다. 창이국제공항 또한 이 당시 계획에서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그 입지가 결정하면서, 이에 맞춰 싱가포르 국토 전체에 대한 공간적인 틀을 새롭게 설정했다. 심지어 도시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깨끗한 싱가포르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추진하면서 총리가 직접 청소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일소했고 노조대표와 지속적으로 협의하면서, 불법파업을 근절했다. 모든 기준을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게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콘셉트 플랜 1971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도시경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계획 수립과정에서도 기존 마스터 플랜에 대한 재정비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수립되면서 1965년과 1970년 마스터 플랜은 콘셉트 플랜과는 부합하지 않은 계획이 되었다. 1975년에 재정비가 이루어진 마스터 플랜은 콘셉트 플랜의 내용이 반영되었다. 생존을 위한 절실함과 이를 극복하고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도자는 자신의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싱가포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구상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콘셉트 플랜과 유사한 제주미래비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최초 콘셉트 플랜을 수립할 때 싱가포르 상황보다 훨씬 나은 편이다. 미래비전계획은 말 그대로 도지사가 추구해야할 미래비전과 도민들이 따르고 협력할 수 있는 실행의 틀을 만드는 계획이다.

지금 이 계획이 법정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는 피상적인 비판일 뿐이다. 미래비전계획은 그동안 도지사가 도시관리계획 입안권을 오・남용함으로써 발생한 문제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어느 누가 도지사가 되더라도 미래비전계획이 정한 비전과 가치를 쉽게 변경할 수 없도록 하고, 그동안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계획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도지사, 공무원, 도민, 투자자들이 각자 가져야할 덕목과 약속을 정하는 일이다. 제주도 발전에 대한 절실함과 도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제대로 된 계획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난 3일 이루어진 제주미래비전 착수보고 내용은 도민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용역진을 수행하는 사람은 도지사를 대신하는 사람이다.

공항 인프라 확충과 관련하여 “계획 중인 공항 관련계획 수용 및 배후단지 조성”이라고 했을 뿐, 어디가 입지가 적지인지 나열하지 않고 있다. 공항은 제주도 전체적인 공간구조의 틀을 변경시킬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입지를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이 계획이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이 계획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고 용역진이 제안하는 것은 계획에 대한 비전고, 고민도, 도민에 대한 애정도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용역진, 공무원, 시민단체들이 최선을 다해 제대로 된 계획이 제시되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프로필>
1989. 홍익대학교 도시공학과 입학
2002. 홍익대학교 대학원 도시계획과(공학박사)
1995. 국토연구원 연구원
2003.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원
2004∼2006. 2011. 제주대학교 시간강사
2006∼2014.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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