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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은 건축물 하나만 달랑 남기는 것이 아니다”
“도시재생은 건축물 하나만 달랑 남기는 것이 아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2.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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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공공건축물로 바뀐 고씨주택과 그 주변에 거는 기대
“고씨주택 보존과 함께 목욕탕 굴뚝의 가치도 새로 들여다봐야”
산지천 일대에 있는 고씨가옥. 지어진지 80년을 넘긴 '한일절충식' 주택이다.

지난해 건축문화계에 이슈를 던진 건축물이 2개 있다.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와 고씨주택이다. 이들 건축물은 제주시 원도심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한 축을 맡고 있다.

둘 다 근대건축에 속하지만 고씨주택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그야말로 ‘적산(敵産)가옥’ 형태이며,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는 1970년대 제주 건축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다.

이 가운데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는 버티지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철거냐 보존이냐를 두고 논란을 벌였지만 행정은 철거를 주장하는 편에 섰다.

제주지원 청사가 철거라는 철퇴 통보를 받을 즈음 전면에 등장한 건축물이 고씨주택이다. 이 때가 지난해 6월이다. 고씨주택은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으로 인해 철거를 통보받은 때였다.

그러나 고씨주택은 80년 가까이 된 건축물로, 일식과 제주식이 혼합된 ‘한일절충형’이라는 특징을 지닌 건축물이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갈 제주인이 자신의 생활특성에 맞게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오래된 주택이면서 제주인의 생활양식을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에 대한 무게를 충분히 실을 수 있었다.

<미디어제주>가 언론 보도를 통해 이 문제를 최초로 지적했고,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등도 행정을 행해 보존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철거를 강행하려던 제주도정은 방향을 선회했다. ‘철거’를 내려놓고, 고씨주택을 ‘보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산지천 주변은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느라 여전히 바쁘다. 건축물이 하나 둘 철거되고 있다. 그렇다면 고씨주택은 어떤 운명일까. 기자는 수개월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했다. 혹시 고씨주택이 철거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한몫했다.

제주도는 고씨주택과 관련,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문화재청에 의뢰를 한 상태이다. 아직까지 문화재청의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제주도가 고씨주택을 매입함으로써 현재는 공공건축물로 바뀐 상태이다.

만일 문화재청의 답변이 ‘가치가 없다’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적산가옥이야 전국에 흔하지만, 제주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건축물이다. 제주시 원도심에서 이런 건축물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제주도의 답이 궁금해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답은 아직 없다. 문화재청이 유산이라고 평가를 하지 않더라도 고씨주택을 보존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도 관계자의 답변은 문화재청의 결과에 관계없이 고씨주택을 보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현재 고씨주택은 제주도가 매입한 상태이다. 이젠 공공건축물이다.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는 공공건축물임에도 지켜내지 못했다. 공공건축물을 바라보는 이들은 어떤 심경일까. 고씨주택에서 50년을 살아온 고한봉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집은 100년 가까이 됐어요. 탐라문화광장이라고 새로운 걸 조성하더라도 옛날 상징물은 있어야죠. 현재가 중요한 건 아니죠. 그 지역의 과거를 알 수 있어야 해요.”

이제 고한봉씨는 주인이 아니다. 그는 50년간 지켜온 이 곳을 조만간 떠나야 한다. 그려면서 덧붙인 말이 있다. ‘될 수 있으면 원형을 보존해달라’고 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살아온 기억을 없애지 말고 간직해달라는 애원이다.

어쨌든 제주도는 공공주택이 된 고씨주택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보존한다고 약속했다. 고한봉씨의 말마따나 이왕이면 원형을 보존하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입히는 구상을 했으면 한다. 보존을 외치면서 뜯어고치는 건 철거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지천 동쪽에서 찍은 금호탕 굴뚝 모습. 20세기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기념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제주도의 입장대로라면 고씨주택은 ‘나홀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 고씨주택만 남겨두고 모조리 철거를 계획하고 있어서다. 걱정이 되는 건 기억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의 건축물이 제대로 된 기억물로 가치를 지니려면 주변도 함께 남겨져야 한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골목의 추억을 살려보자. 고씨주택과 이웃한 곳에는 목욕탕이 있고, 그 목욕탕을 상징하는 굴뚝이 우뚝 솟아있다. 현재 금호탕 굴뚝이 남아 있다. 굴뚝은 예전엔 널렸지만 이젠 흔한 산물이 아니다. 몇십년 후에는 상당히 귀중한 건축유산, 다시 말하면 제주사람들의 20세기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념물로서 가치가 있다. 도내 건축인들은 이왕이면 고씨주택과 함께 그 주변에 있는 굴뚝 등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기억의 보존이 가능하다. 바로 그게 도시재생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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