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서 그래
처음이라서 그래
  • 홍기확
  • 승인 2015.01.28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70>

 결혼하고 11년째다. 아내와 어색한 건 거의 없으나 우리는 아직도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자주 느낀다. 나 혼자 변하지 않는다. 아내도 변한다. 새롭다. 그렇다.
 아이 키우기도 그렇다. 할머니들은 그런다. 밭에서 애 낳고 젓 먹이고 바로 강보에 쌓아서 버려두곤 일하러 갔단다. 엄청난 무용담이다. 낳아 놓으면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매해, 매달, 매일이 만만찮다. 아이는 나아지는 것 같은데 나는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하루하루가 두렵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자리를 옮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뜬금없는 업무를 한다. 대학 다닐 때에는 스펙만 쌓으면 된다고 했다. 직장에 들어와서는 자기계발만 하면 되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항상 처음 같고 해야 할 것, 공부할 것이 생긴다.
 드라마 『미생』에는 명예퇴직 후 식당을 차렸다가 망한 선배가, 현직에 있는 직장 후배에게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말한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했지? 밖은 지옥이다.’

 자극적인 발언이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비유법이 잘못된다는 게 아니다. 극단적으로 틀렸다. ‘회사는 드라마다’라고 해야 했다.
 출근을 하는 오늘. 그 곳에서 전날과는 다른 드라마가 펼쳐진다. 전쟁도 하고 지옥처럼 아비규환도 한다. 하지만 감동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웃음도 있다. 바둑을 토대로 한 『미생』과 같은 표현을 써 보면 똑같은 착수(着手)는 없고 당연히 똑같은 대국(對局)은 없다. 하루하루가 새롭다.

 우리는 모두 내일의 초보자다.
 오늘 프로처럼 살았어도 내일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어디에서든 아마추어다. 처음이라서 그렇다. 내일을 잘 살기 위해 전에 미리 아이를 돌봤던 사람, 출근을 해본 사람, 결혼을 해본 사람은 없다. 예측을 하고 계획을 세우며 프로인 척 해도, 다 처음이고 초보다.

 아내는 대학을 갓 졸업한 남편과 결혼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가 나와 못 입게 된 바지를 보며 절규하는 아저씨와 산다. 이런 아저씨와 살아보는 건 처음일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기억으로는 근육질의 멋진 청년이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26살이던 해에 나를 나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 것의 세제곱이 되는 본인의 배에 손을 걸쳐 놓는 게 편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런 할아버지가 내 아버지인 것은 처음이다.

 처음은 두렵다. 처음이라서 그렇다.
 처음은 설렌다. 처음이라서 그렇다.
 매일매일 두렵고도 설렌다. 처음이라서 그렇다.
 하루하루가 따끈따끈한 드라마다.

 세상의 모든 드라마 작가들.
 그들은 각자 매일매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드라마를 찍는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