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슬픔과 기쁨
거절의 슬픔과 기쁨
  • 홍기확
  • 승인 2015.01.1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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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67>

 학문에 뜻을 둔다는 나이인 지학(志學), 15세부터의 모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내겠다.’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불타는 삶을 살자.’였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눈 하나 깜빡 안 한다.’였다. 그만큼 내 삶은 극단적이었고 냉정함을 견지했다. 완벽을 추구하고 서릿발이 날리는 차가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2010년. 제주도에 내려오며 ‘이성(理性)에서 감성(感性)으로’란 자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성격을 무던히도 부드럽게 바꾸려는 노력을 하였다. 일단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5년. 올해의 화두(話頭)를 ‘거절(拒絶)’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이어리에 잊지 않도록 기록해 두었다.

 감성적인 성격으로의 변화는 좋았지만, 나는 그저 착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실 아내는 이런 나에게 오래전부터 불만이었다. 할 얘기는 꼭 하고, 거부할 건 확실히 거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까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남의 부탁을 다 들어주고 처리하다보면 지친다. 보통 아내에게 짜증날 때는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 처리해주다가 지쳤을 때였다. 나 역시 이 점이 항상 미안했다.
 되씹어보았다. 2010년 ‘이성에서 감성으로’ 프로젝트의 시작 이후로 이렇게 된 듯하다. 만만해 보이고 들어줄 것 같으니 누구나 나에게 부탁을 한다. 만인의 연인(戀人)이지만, 역으로 만인의 공복(公僕)이기도 하다.

 ‘거절(拒絶)’의 결심을 아내에게 말했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간단히 한 단어로 제시하니 아내가 믿는 눈치다. 드디어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하는 표정이다.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자신의 상사가 제주도에 내려왔는데 맛집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몇 주 전에 펜션, 렌트카, 심지어 관광지까지 싸게 알아봐서 일정을 짜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 친구였다. 나는 당시 중요한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래서 제주도민이라도 특별히 싸게 사는 방법은 없다고, 블로그를 검색하면 된다고 완곡히 거절한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 문자가 오니 전의 일이 미안했던지라, 생각나는 맛집 몇 개를 신중히 골라 문자로 보내 주었다.
 그러자 띠리링 문자가 온다.
‘맛집들 주소는?’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예전에는 이렇게 까지 챙겨줬었나? 내가 이정도로 가벼운 사람이었나? 아무리 친구라도 인터넷 검색을 해서 상사에게 보내주던지 할 수 있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내가 반응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지 대뜸 전화가 온다. 받았다. 친구가 물어본다.

 “이렇게 소재지 동이랑 상호만 해서 보내면 어떻게 해. 주소랑 해서 같이 보내주라.”

 울분을 참고 대답했다.

 “상사한테 인터넷에서 내가 보낸 소재지 동이랑 상호만 넣어서 검색하면 주소 나온다고 해. 휴대폰으로도 검색 다 되잖아.”

 친구는 기분이 상했는지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끊는다.

 “아, 씨, 그럼 결국 내가 검색해서 보내줘야 하잖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이정도로 만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정도 대우밖에 받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남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거절하기 잘했다.
 이 친구는 전화를 끊고 조금 섭섭했겠지만 자기가 직접 맛집의 주소를 검색해 상사한테 보낼 것이다. 그리고 다음부터 나에게 어이없는 부탁을 쉽사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을 한 친구에게 계속 미안한 건 사실이다. 연습이 덜 돼서 그런 듯싶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은 습관을 만들다.

 좌충우돌하고 있긴 하지만 어째 올해는 그럭저럭 여유로운 한 해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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