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수필(空想科學隨筆)
공상과학수필(空想科學隨筆)
  • 홍기확
  • 승인 2015.01.15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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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66>

 어렸을 때는 앞으로 10년, 늦어도 20년 후면 도로가 하늘에 개설되고 자동차가 하늘 길을 달릴 거라 믿었다. 당시의 과학은 그만큼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더라도 언제부턴가 ‘공상과학영화(空想科學映畵, Science fiction film)’의 ‘공상(空想)’은 슬그머니 쇠퇴하고 영어로 ‘SF’, 혹은 ‘SF영화’로 대체되었다. 과학이라는 포장지만으로 세련됨을 추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공상이 현실이 되는 것을 수차례 목도했다. 더 이상 사람들은 공상이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공상(空想)이 없는 과학(科學)은 너무나 메마른 느낌이 든다. 정(情)이 없는 차가운 금속 침대를 주며, 누워서 편안히 잠을 자라는 역설적인 친절과도 같다.

 사실 작년에는 과학책에 푹 빠져 지냈다. 분야를 뽑자면 진화생물학, 생명과학 및 뇌과학이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기분이 나쁘다.
 진화생물학을 보면 난감하다. 생명이 자연발생 했다며 오파린 가설을 유력한 근거로 내세운다. 생명은 대충 매탄, 수소, 암모니아, 수증기, 전기방전 에너지 등에 의해 ‘우연히’ 탄생했다는 것이다. 나의 23억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매탄’이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는 없지만 향후 진화생물학은 많은 궁금증들을 설명해야 한다.
 생명과학도 마찬가지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자식을 낳는다는 딱딱한 사실도 기분 나쁜데, 심지어 1997년 복제양 돌리는 체세포로부터 얻은 DNA 복제를 통해 태어났다. 자식은 원래 부부가 사랑을 해서 낳는 것 아닌가?
 또한 순진무구한 내 자식이 3~4억 개의 형제 정자들을 물리치고 1주일간의 긴 여행 끝에 승리하여, 엄마 뱃속에 착상했다는 분석도 유쾌하지 않다. 너 진짜 그런 놈이었냐? 순진한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제 내 혓바닥에 붙어 있는 체세포로 나랑 똑같이 생긴 자식인지 뭔지를 만들 수 있다고? 제발!
 뇌과학은 최악이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버드 의대 출신 디텍 초프라의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2천만부가 팔렸단다. 호주태생 론다 번의 『시크릿』도 마찬가지다.
 둘의 논리는 같다. 의도와 바람이라는 ‘주파수’가,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단위의 점화장치를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노력도 필요 없다. 바라고 생각하고 기다리면 된다. 사람 참 기운 빠지게 만든다. 노력은 왜 해야 하는지.

 하지만 앞서 말한  문제점에도 나는 과학책을 읽는다. 과학책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인간적으로 변해간다. 그런 게 느껴진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과학을 비껴나가거나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한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기분 좋은 변화다.
 가령 아이가 나에게 ‘아빠, 책에서 봤는데, 우리 조상이 원숭이야?’라고 물어봤다고 하자. 이럴 때 내가 공상(空想)을 빼고 과학(科學)만 집어넣어 아래처럼 대답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네 23억대 할아버지는 매탄가스셨어. 적어도 가스중독으로 사망하실 일은 없으셨지. 네 15억대 할아버지는 박테리아셨지. 할아버지 형제분들의 자손은 아직도 요구르트에 살아. 유산균이라고도 해. 1억 2,500대 할아버지는 쥐였는데 밤잠이 없으셔서 야행성이셨지. 그때부터 배에서 자식들을 낳았어. 우리는 조상들이 배 아파 낳은 자손들이야.
 그리고 20만대 할아버지는 원숭이셨어. 나무에서 살다가 땅으로 내려와서 걷기 시작하셨지. 그 때 함께 땅으로 내려오지 않은 할아버지 형제분들은 아직도 숲에서 사셔. 동물원에도 많이 계시고.”

 참으로 재미없는 대답일 것이다. 나는 과학책을 읽고 공부해서는 과학적인 사실(?)을 포함한 공상을 넣어 말할 것이다. 솔직히 진화론이 맞던 그르던 인간을 동물과 극명히 대조하는 개념은 ‘생각하는 짐승’ 아닌가?

 “아빠, 우리 조상이 원숭이야?”
 “너, 꼬리 있냐?”
 “아니.”
 “봐봐. 너 원숭이 아니었어.”
 “그런데 책에 보니까 원숭이 중에서도 유인원은 꼬리가 없데. 오랑우탄,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이런 것들 말이야.”

 흠칫. 이거 어쩌지? 아하!

 “너 나무 올라갈 수 있어?”
 “아니.”
 “봐봐. 너 원숭이 아니었어.”
 “그런데 타잔은 나무에 잘 올라 다니고 심지어 날라 다니던데?”

 1912년.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소설, 『타잔(Tarzan)』을 규탄한다!
 1999년. 이 지독한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디즈니의 문제작 『타잔(Tarzan)』도 성토한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나무를 잘 타! 너희 둘 때문에 내가 이토록 고생하는 거잖아!

 말문이 막힌다. 대답도 궁색하다. 왠지 예전에 내가 원숭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과학책을 더 읽어야겠다. 더 인간적이 되어 공상을 풍부히 해야겠다.
 어? 그럼 지금은 ‘덜 인간’인가? 혹시 진화해야 하는 건가? 어째 3단 변신쯤은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변신한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변신이 안 되면 3단 합체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헛갈린다.
 어쨌든, 공상과학수필의 탄생이다. 요즘은 장르파괴와 협업, 크로스오버가 대세지 않은가?
 켁!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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