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 두 번째 이야기
가방끈, 두 번째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4.12.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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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62>

 가방끈이 끊어졌다.
 몇 년 전 처제 둘이 돈을 모아 선물해준 옆으로 매는 비즈니스용 가방이다. 낡긴 했지만 수납공간이 다양하고 무엇보다 정이 많이 들었다. 살리고 싶다.

 최근 몇 달간은 중국어와 중국 고전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중국의 역사책인 『사기(史記)』에 공자의 일화가 나온다. 노년(老年)의 공자는 독서를 즐겼다. 특히 우리가 점을 치는 책으로 알고 있는 『주역(周易)』은 하도 많이 읽어, 책을 묶는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한다. 여기에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고사가 나왔다.
 춘추전국시대의 책들은 대부분 대나무를 잘라 글을 새기고, 가죽 끈으로 죽간들을 엮어 만들었다. 그래서 돌돌 말면 무게가 꽤 되었다. 특히 주역은 글자수가 24,000자에 달한다. 200자 원고지로 120매 정도 되니 단편소설의 분량이다. 도덕경의 글자수가 5,000자, 논어의 글자수가 13,700자 쯤 되니 그 무게와 돌돌 말았을 때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공자 팬클럽이 있다면 혼이 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역(周易)』을 많이 읽어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다. 과거 학자들에게는 일상이고 다반사였다. 『사기(史記)』에 있는 공자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나온다.

 “주역을 읽으시다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셨는데 대단하시네요.”

 공자 왈,

 “만약 저에게 몇 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제가 주역을 이해하여 외형과 내면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을 거예요.(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

 복잡한 문형이지만 가정법을 만드는 ‘假(만약…한다면)’과 ‘若是(만약…한다면)’ 구문을 두 개나 써서, 가정법 강조를 해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정법 결과인 ‘則(그렇다면)’를 써 결론적으로는 ‘그랬을 텐데’라고 결론을 지었다. 게다가 ‘矣(문장의 말미에 쓰는 강조형)’을 써서 문장전체를 강조하기까지 했다.
 결국 공자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고사의 출처에서 내외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자신의 학문에 대한 겸양을 표현했다. 아니면 오히려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진 건 별것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 둘의 해석 중 어느 것이 맞는다고 해도, 위편삼절로 독서, 다독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오히려 공자가 노년(老年)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틀을 깨자. 성인군자의 말과 글, 행동이라고 전부 옳은 것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괜히 성인(聖人)이라고, 대학교수라고, 자기보다 잘난 듯하다고 맹목적으로 꿀리지 말자는 얘기다. 가방끈이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 또한 재질이 제 각기 다를테니 서로 비교해보고 판단해볼 일이다. 가방의 쓰임에 따라 적합한 가방끈의 길이와 재질도 모두 다르다.

 얘기가 나왔으니 공자 팬클럽에게는 다시금 미안하지만 대한민국 선비의 말도 한번 들어보자.
 조선시대 호남지방에 책을 많이 읽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상서(尙書)』는 2만 번,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은 1만 번을 읽었다고 한다. 그가 바로 오윤상(吳允常, 1746-1783, 대제학을 지낸 오재순의 아들)이다. 친구인 박윤원(朴胤源, 1734-1799, 정조시기의 도학자, 훈고학자)과 오윤상의 대화를 들어보자. 박윤원이 쓴 『근재집(近齋集)』에 실려 있다.

 박윤원이 오윤상에게 묻는다.

 “윤상아, 공자는 위편삼절했다는 데 대단하지 않니?”

 오윤상이 ‘웃으며’ 대답했다.

 “성인도 반드시 나처럼 많이 읽지는 않았을 거야. 공자가 위편삼절했다지만 익숙하게 읽었다는 것일 뿐, 만 번씩 읽지는 않았을 걸? 성인은 지나치거나 모자란 일이 없으니(과유불급, 過猶不及), 책을 읽는 횟수도 중도(中道)에 맞았겠지.”

 오윤상은 공자의 제자들이 그의 어록을 모아 놓은 『논어(論語)』를 가르치는 걸 즐겼다. 하지만 그런 오윤상도 ‘웃으며’ 공자의 위편삼절을 평가한다. 멋진 자신감이고 자부심이다. 위편삼절. 정말 별 거 아니다. 쫄지 말자.
 우리는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공자보다 전반적으로 똑똑하다. 오윤상은 이미 18세기에 이것을 알았다. 오윤상은 공자의 글을 읽으며 공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 오윤상이 되려고 했다.

 나는 세상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먼저 세상을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강적(强敵)들에게 쫄지 않는다. 앞으로도 쫄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글의 속도와 쾌감은 소설가 김훈에 미치지 못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이끔과 논리는 소설가 공지영에 미치지 못한다.
 삶의 통찰력과 앞선 시대의식은 수필가 몽테뉴에 미치지 못한다.
 글자를 적게 쓰지만 단어를 효율적으로 활용함은 성인 공자에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미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미쳐버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글을 빠르게나 느리게만 쓸 수는 없어도 글의 속도를 조절할 순 있다.
 군더더기가 많은 문장이지만 위트와 유머로 극복할 수 있다.
 논리는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비약(飛躍)하지만, 반대로 논리에 함몰되지 않는다.
 글자를 많이 써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왼손으로 라면을 먹고 오른손으로 게임을 할 수 있으며 머리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지금도 과자를 먹으면서 키보드를 누르며 딴 생각을 하는 신공(神功)을 펼치고 있다.

 앞에서 미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미쳐버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했다. 이 때마다 좋다. 미치는 게 좋다.
 오윤상의 말을 한 번 더 들어보고 새겨보자.

 “성인은 지나치거나 모자란 일이 없으니(과유불급, 過猶不及), 책을 읽는 횟수도 중도(中道)에 맞았겠지.”

 위 말의 숨겨진 뜻은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의 책,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 제목과 같다.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은 둘 다 매 한가지라는 말이 옳을까(과유불급, 過猶不及), 아니면 미쳐야 미칠까(불광불급, 不狂不及)?

 친구에게 ‘웃으며’ 말한다.

 “요즘 사서삼경 연구하느라 좀 바빴어.”

 친구가 ‘웃으며’ 대답한다.

 “미친놈. 네가 그런걸 뭐 하러 공부하냐? 그리고 뭐? 연구? 니가 교수냐? 할 일이 그렇게도 없냐?”

 미친 놈 맞다. 여러 가지 의미로.

 가방끈이 끊어졌다.
 집에 돌아와 가죽이 찢어진 부분에 가죽용 본드로 떡칠을 해서 붙여 보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나와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나 보다. 용케도 내 책들의 무게를 한 번 더 지탱해준다.
 내 가방은 평범하다. 하지만 특별하다. 비범함은 바라지도 않는다.

 가방끈을 다시금 잇고 홀연히 도서관으로 향한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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