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맞아 제주도내 교회·성당 곳곳에서 아기예수 탄생 의미 되새겨
“이스라엘의 제후들아. 그만 하여라. 폭력과 억압을 치워 버리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여라. 내 백성을 수탈하는 일을 멈추어라. 주 하느님의 말이다.” (에제키엘서 45, 9)
천주교 제주교구의 강우일 주교가 성탄절을 맞아 교구장 사목 서한을 통해 인용한 성경 구절이다.
24일 성탄 전야를 맞아 제주도내 교회와 성당에서는 예배와 전야 미사를 통해 가장 누추한 곳에 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손을 내밀기 위해 와준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겼다.
강우일 주교는 성탄 메시지를 통해 “성탄은 단란한 우리 가족, 신자들만의 행복과 기쁨을 나누는 축제가 아니”라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줄 것을 당부했다.
강 주교는 “성탄은 세상에 가장 힘없고 고통받고 불행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천상 궁궐을 버리시고 춥고 냄새나는 말구유를 선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행하는 축제”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추락하시는 사랑에 함께 동승해 우리도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예언자 에제키엘의 메시지를 인용해 전한 그는 “예언자들의 목소리는 항상 짓눌리고 입막음을 당했다”면서 “어둠이 깊을수록 사람들은 빛을 갈구한다. 이에 주님께서는 손수 어둠과 그늘 밑에 있는 이들을 비추러 오신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한밤중에도 칼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달리는 대리운전 기사들과 택배 기사들, 새벽부터 노구를 이끌고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도 3000원밖에 손에 쥐지 못하는 노인들 곁에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남자들이 쏟아붓는 술잔으로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 술집 여자들 옆에 주님이 고개 숙여 눈물짓고 계십니다. 갑자기 명퇴를 당해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매일 집을 나서서 갈 곳 없는 거리를 헤매는 이들 곁에도 주님이 함께 걸으십니다. 머리 눕힐 방 한 칸도 없이 공원이나 지하도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새우잠을 자야 하는 노숙자들 곁에 주님이 함께 오들오들 떨고 계십니다. 산더미처럼 덮치는 성난 겨울 파도와 목숨 걸고 싸우며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들 곁에 주님이 함께 타시어 그물을 붙잡아 주고 계십니다.”
가장 낮은 곳에 함께 하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일일이 전하는 강 주교의 메시지는 자본과 정치권력에 의해 내쫓긴 이들을 향하기도 했다.
그는 “집단해고 당한 동료 노동자들을 대신해 전국 곳곳의 농성장에서, 70미터 고공의 굴뚝 위에서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동료들의 복직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노동자들 곁에 주님께서 함께 농성하고 계신다”, “헌법을 수호한다는 이들에게서 정당해선 판결을 받고 불관용과 억압, 단죄와 처단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어둠의 시대를 통탄하며 참담한 심정으로 절망의 골짜기를 걷는 이들 곁에 주님께서 침통하게 묵묵히 걷고 계신다”며 통합진보당이 정당해산 심판으로 내몰린 현 정국을 통탄하기도 했다.
강 주교는 25일 오전 11시 강정마을에서 성탄대축일 미사를 직접 집전하기도 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