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사랑을 부르는 곳, 파리(Paris)
사랑을 부르는 곳, 파리(Paris)
  • 조미영
  • 승인 2014.12.18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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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여행자 조미영] <13>
몽파르나스 묘역의 전경.

12월 급작스런 추위로 겨울이 되었음을 알린다. 이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넘어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점가의 알록달록한 장식들은 성큼 연말분위기를 끌어당기고 있다. 겨울로 시작한 한 해가 또 이렇게 추위와 함께 저물어 가고 있다.

  뉴스를 통해 샹제리제 거리의 화려한 점등행사가 보도 되고 있다. 개선문에서 오밸리스크가 있는 콩코드 광장까지 약 2㎞ 구간의 가로수에 100만개 이상의 전구로 장식되어 겨울을 밝힐 예정이다. 이를 위해 약 100만유로의 비용 든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해에 비해 빠른 점등행사는 경기침체의 징표라는 분석이다. 서유럽의 중심도시 파리는 늘 그렇게 세계의 흐름을 알려주는 지표와도 같은 곳이다.  
 
  파리에 도착해서 첫 느낌은 다른 유럽도시들에 비해 복잡하고 규모가 큰 대도시라는 것이다. 파리지앵들의 바쁜 발걸음과 복잡한 지하철 등이 게으른 여행을 일삼던 나를 당황하게 했다. 우연히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된 프랑스 할아버지가 나의 허술한 가방매무새에 깜짝 놀라며 가방을 앞으로 당겨 꼭 끌어안으라 하신다.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도착지인 몽파르나스 역에 다다랐다.

쟝폴사르트르와 시몬느드보봐르의 무덤

파리의 남부 몽파르나스는 에꼴 드 파리(ecole de paris)의 산실이다. 많은 화가와 예술가들이 이 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은 몽파르나스 타워가 우뚝 솟아 에펠탑과 함께 파리의 마천루를 거느린다. 나의 목적지는 그곳의 화려한 쇼핑가 대신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묘는 물론 「여자의 일생」의 작가 모파상과 시인 보들레르 등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날씨마저 눅눅하고 어두운데 그들의 묘를 찾아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인적조차 없다. 순간 혼자라는 사실에 머리카락이 쭈뼛해진다. 빠른 걸음으로 묘지를 나와 뤽상부르 공원으로 갔다. ‘파리의 푸른 오아시스’라는 별칭에 맞게 아름다운 정원이 잘 가꿔진 곳이다. 여기서 늦은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뤽상브루공원에서 만난 아기와 엄마

이후 시떼섬을 향해 걷던 중 거리에서 우연히 소르본느 대학의 표식을 보았다. 우리나라처럼 커다란 캠퍼스를 갖추진 않았지만 이를 통해 세계적 석학들이 배출되었다. 대학가 주변으로 술집과 옷집이 즐비한 우리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쎙 제르멩거리는 카페거리로도 유명하다. 과거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고뇌가 담긴 유서 깊은 카페들이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 또한 노트르담 성당을 향해가다 만나게 되는 곳 중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 있다.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이다. 관광객들에겐 영화 비포선셋의 촬영지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오랜 시간의 무게를 그대로 갖고 있기에 더욱 빛이 난다. 1919년 처음 책방 문을 연 실비아 비치는 많은 작가들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등이 이곳에서 꿈을 키웠다. 이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파리가 점령되자 문을 닫았다가 1964년 실비아 비치 사망 후 조지 휘트먼에 의해 다시 이름을 찾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
 

이틀째 아침 일찍 서둘러 간 곳은 개선문이다. 에뜨왈 광장의 중심에 우뚝 솟은 개선문에 올라서서 파리 시내를 내다보았다. 12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나폴레옹이 승전을 기념해 지은 의기양양함이 느껴진다. 멀리 에펠탑과 몽파르나스타워 몽마르뜨 언덕 등이 방향등처럼 사방에 솟아 있다. 분지형인 파리의 특징이 오롯이 느껴진다.

샹제리제거리를 따라 알렉산드로3세 다리까지 걸었다. 화려한 명성에 걸맞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들이 다리를 수놓는다. 내친김에 세느강을 따라 계속 걸었다. 예술의 다리는 보행자들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다. 벤치와 다리난간 등에 자유롭게 앉아있는 사람들. 나도 그들 속에 묻혀 강변의 여유를 느낀다. 세느강변의 또 다른 유명한 곳은 퐁네프이다. 우리에게는 레오 까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잘 알려진 곳이다. ‘퐁네프’가 ‘새로운 다리’라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세느강변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곳이라 한다.

관광객을 가득 실은 유람선이 지나간다. 해지는 강변의 유람선은 사람들을 마법에 취하게 하는 듯 서로 사진을 찍어대는 연인들의 얼굴에 들뜬 설레임이 담뿍 담겨있다. 하지만 난 연인은커녕 벗 하나 없이 홀로 강변을 걷고 있다. 처량함이 철철 넘치는 외형이지만 마음만은 로맨틱해진다. 그래서 강변의 식당에 홀로앉아 와인을 벗 삼아 저녁을 먹었다.

이 겨울 다시 그날의 기억이 강하게 떠오르는 것은 연말의 들뜸과 함께 아직도 로맨스를 만들 누군가를 만들지 못한 내 처지가 변하지 않은 탓인 듯하다. 한동안 참 건조하게 지내온 시간들 앞에서 사랑을 부는 곳 파리의 감성을 끄집어내며 연말을 보내야겠다.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인사가 전해지길 바라며... 아듀 2014!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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