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 어우러진 해원상생굿판"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 어우러진 해원상생굿판"
  • 조형근 기자
  • 승인 2005.04.11 00: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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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굿 '헛묘'를 통해 본 수눌음공동체, 그리고 영혼공동체

관의 부당한 수탈에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중산간 동광마을)을 찾은 사람들. 그들은 화전을 일구고 마소를 기르며 마을을 개척한다.

새로운 삶의 터전은 활기가 넘친다. 새로이 형성된 수눌음 공동체는 마을에 물방애를 만들고 잔치를 벌인다. 그 와중에 석중이와 정순이의 사랑이 싹튼다.

이것은 10일 오후 7시 제주문예회관 놀이마당에서 관람객 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놀이패 한라산의 ‘사월굿 헛묘’ 도입부 내용이다.

‘사월굿 헛묘’는 4.3당시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에 의해 사라진 동광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 4.3광풍에 동광마을 사람들이 학살되는 과정을 생생히 재현하여 관람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동광마을은 현재의 동광육거리를 중심으로 무둥이왓(130여 호), 조수궤(10여 호), 사장밧(3호), 간장리(10여 호), 삼밧구석(45호)의 5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던 중산간 농촌마을이었다.

그러나 1948면 11월 중순 이후 중산간 마을에 대한 토벌이 이루어지면서 마을은 모두 파괴됐고, 많은 주민들이 희생됐으며, 2백여 호의 집들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이 역사적 비극을 재현한 ‘사월굿 헛묘’라는 마당극을 통해 놀이마당에 둘러앉은 관람객들은 동광마을 사람들과 함께 4.3의 아픔을 나눴다.

한 시민은 “4.3을 ‘비극의 역사’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슬픈, 사람 사는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사월굿 헛묘는 앞풀이를 비롯해 4개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마당은 동광마을의 수눌음공동체를 통해 평온함을 강조하고 있다. 선소리꾼의 소리에 맞춰 방앳돌을 굴린다거나 마을잔치를 벌어지고, 석중이와 정순이의 물방앗간 사랑, 농사는 힘들지만 실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둘째마당에서는 수눌음공동체의 평온함은 온데간데 없이 깨지고, 미군정의 소개령과 함께 대토벌 단행으로 참혹한 학살이 이뤄지면서 극은 점점 숨가쁘게 진행된다.

셋째마당은 '죽음의 공동체'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큰 넓궤로 숨어든다. 굴속의 사람들은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마지막 넷째마당은 '영혼공동체'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때를 지우며 살아가나, 다만 목숨이 붙어있어 살아갈 뿐이다.

사월굿 헛묘는 바로 영혼의 공동체를 통해 잃어버린 마을과 잃어버린 공동체 문화를 다시 복원해 재생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으며, 또한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 어우러지는 해원상생굿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열린 놀이패 한라산의 ‘사월굿 헛묘’는 올해 세 번째 공연으로, 다음달 22일 광주 5.18자유공원에서 또 한번 열릴 예정이다.

이 작품은 윤미란씨가 연출을 맡았으며,  음악은 민중가수 최상돈씨가 담당했다.

 

#예전에 ‘사월굿 헛묘(1991년)’공연이 있었는데 지금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처음 선보인 헛묘는 4.3에 대해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예전에는 시민단체나 4.3관련 여러 단체들이 발 벗고 4.3을 이슈화하면서 전면에 나서지 못했는데, 마당극이라는 문화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4.3을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57년의 한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4.3을 겪은 분들의 아픔을 치유해드리고, 우리 후손들이 비극 속에서도 꿋꿋하게 마을을 재건한 어른들에게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추면 되겠나.

당시의 공동체는 다섯 개의 자연부락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갔던 공동체의 모습은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고 인정이 넘친다. 4.3을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의 모델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 자기만을 생각한다. 과거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경우도 있지만, 더욱 그렇다. 그러다가 왜곡되고 와전되는 것이다.

최소한 역사 앞에서는 냉정하고 객관적이었으면 좋겠다. 역사 앞에서 만큼은 겸허해야 한다.

#앞으로 ‘헛묘’공연 계획은.

새로운 공연이 만들어지면 광주나 부산투어를 자주 간다. 기획의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서울에 가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 생각한다.

장면만 보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연출로 ‘헛묘’를 재구성해 ‘제주말’이라는 언어적 장벽을 극복한다면 제주 외에도 타지방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3은 아픈 과거이고 슬픈 역사이며 한국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타지방 사람들은 4.3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 ‘헛묘‘와 같은 문화공연이 많아진다면 타지방 사람들이 제주와 소통하고 4.3을 알게 되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놀이패 한라산의 ‘사월굿 헛묘’를 통해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4.3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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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묘 2005-04-15 15:10:16
제주4.3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작품입니다. 윤미란 연출자의 뛰어난 감각에 감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