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곱창 집의 시간도둑
곱창 집의 시간도둑
  • 홍기확
  • 승인 2014.12.16 11:5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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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57>

장인어른 댁에 놀러갔다. 놀러갔으니 특별히 주어진 임무는 없다. 그저 잘 놀면 된다.
 수원 화성을 산책로 삼아 한 시간을 걷고, 30분 동안 아이와 바람과 함께 연을 날렸다. 그리곤 다시 30여분을 걸어 곱창 집에 들어갔다.
 휴일이라 그런지 시장 안의 곱창 집들은 문을 닫은 곳이 많았고, 몇몇 문을 연 가게들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석에 자리가 보이기에 그 곳에 앉았다. 주문을 끝내고 10여분. 이것 참. 반찬조차 나오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가지 않은 듯해 우리는 처제를 파견했다. 처제가 종업원과 얘기를 나눈 후 반찬과 술이 나온다. 그리고 또 20여분. 이번에는 메인 메뉴인 곱창이 나오지 않는다. 역시 점원들이 바쁜가보다 해서 다시금 처제를 파견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40여 분만에 음식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
 
 반면 우리와 거의 같은 시간에 들어온 종족이 있었다. 더러는 아이를 업고, 더러는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8명쯤 되는 무리였다. 우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는 주문한 메뉴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기다렸다.
 반면 맞은편의 그들은 침묵했다. 지독한 기다림이었다. 어느 구성원도 얘기하지 않았다. 어미는 아이를 달래고, 아비는 말을 꺼내지 않는 성난 우두머리 할아버지를 보며 말을 삭혔다.

 우리는 주문한 메뉴가 나오지 않자 처제를 파견했다.
 그들은 주문한 메뉴가 나오지 않자 밥상을 엎었다. 정확히 주체와 객체를 말하자면 우두머리인 할아버지가 빈 밥상을 엎었다. 그리고는 사장을 나오라고 해선 종업원을 싸잡아 5분 동안 세상에서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소리로 광분(狂奔)하여 울부짖었다. 무리의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말릴 수 없었다. 세상은 시끄러워졌다.
 그들은 종족이었고 무리였으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먹이사냥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세상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똑똑한 아내가 말한다.

 “저 할아버지 가족 얘기를 수필로 쓰는 건 어때?”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華微笑)다. 나는 대답했다.

 “이미 휴대폰에 쓸 말 적어놨어. 저 할아버지, 시간 도둑이야.”

 내 휴대폰에는 이미 두 단어가 메모되었던 터였다.
 ‘곱창 집’, ‘시간도둑’
 
 할아버지는 5분 동안 미친 듯 사자후를 외쳤다. 자신의 시간은 그렇다 쳐도 7명의 가족들은 모두 할아버지에게 5분을 빼앗겼으니 35분을 도둑질 당했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음식을 기다리지 못하며 불평을 늘어놓은 20분은 7명의 가족으로 환산하면 140분을 도둑질 당한 셈이다.
 여기에 상상력을 더하자면 다음 사냥터로 이동하는 20여분, 음식을 다시금 기다리는 30여분, 식사를 하는 2시간동안 이어질 불편한 가족들의 시간. 이것을 1,190분이라고 하면 할아버지는 7명 가족의 평균 3시간, 총 22시간을 도둑질했다.

 시간도둑.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신사가 나온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금고에 저장한다.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은 점점 조급해지며 바빠진다.
 주인공인 모모는 회색신사와 전쟁을 벌인다. 능력은 단 하나. 듣기 능력이다. 진득하게 듣는 능력이다.
 마을 사람들이 싸우면 모모에게 찾아와 각자 하소연을 한다. 모모는 듣기만 한다. 오랜 시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모모는 대꾸도 없다. 결국 싸웠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잘못을 깨닫고 화해를 하고, 서로 놓았던 손을 다시금 붙잡는다. 심지어 회색신사들도 모모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 모모를 찾아왔다가, 모모가 진득하게 들어 주자 그들의 음모와 계획을 술렁술렁 얘기해 버린다.
 왜 듣는 능력만 있는 모모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소설의 나중 결말이지만 시간도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냈을까?
 해답은 듣는 시간,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빠도 싸우거나, 싸우기에 바쁘다. 바빠서 서로의 얘기를 들지 못하거나, 서로의 얘기를 듣지 못할 만큼 바쁘다.
 모모는 듣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기대하는 시간이고 기도하는 시간이다. 자기가 누군가에게 일일이 다가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할 때도 있다.
 매미는 17년을 땅속에 있다가 땅 밖으로 나가 일주일을 산다. 매미에게 ‘다음 주에 만날래?’라고 물으면 욕먹는다.
 하루살이는 3년을 유충으로 있다. 그리고 하루를 산다. 하루살이에게 ‘내일 또 봐’라는 말은 하루살이를 두 번 죽이는 짓이다.

 그럼 인간에게 묻는다. ‘다음 생애에 보자.’
 가능한가?

 매미의 화려한 여름의 일주일. 하루살이의 불같은 하루. 그렇다면 인간의 인생의 일생일대의 절정은 어디인가?
 매미에게 애벌레의 17년과 매미성충이 된 후의 1주일은 단절이 아니다. 연속적인 그들의 인생이다. 하루살이의 3년간 유충생활과 하루의 날개짓 또한 어디 하나에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는 연속적인 그들의 인생이다. 기다림과 준비, 화려한 것들 모두 인생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짧은 절정과 순간의 행복, 찰나의 쾌락을 위해 많은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아닐까?

 여행을 바빠서 가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대꾸한다. 바쁘게 여행을 가니까 그렇지. 계획을 세워서 가라. 계획을 세우는 것도 여행. 세운 계획을 기다리는 것도 여행의 일부란다. 왜 너의 미래는 그토록 치열하게 설계하면서, 그 인생의 일부분인 여행 계획은 세우기 싫으니? 바빠서 가지 못하는지, 가기 싫어서 바쁜지 따져볼 일이다. 분명 여행지에는 바빠도 여행을 온 사람들로 넘친다.

 또한 여행을 가려면 짐 싸고, 여행지를 알아보고, 운전하거나 이동하는 게 귀찮아서 못 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대꾸한다. 짐을 싸는 것도 여행. 여행지 알아보는 것도 여행. 운전하고 이동하는 것도 여행이란다. 왜 즐거움을 기어코 한정하니? 귀찮아서 못가는 건지, 안 가기 위해 귀찮은 건지 따져볼 일이다. 분명 여행지에는 귀찮아도 여행을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진정 당신의 시간도둑은 누구인가?
 그리고 바쁘고 귀찮다는 것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시간은 24시간이라 한다.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 이건 그냥 남들이 정해놓은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72년 시행된 협정세계시(UTC), 혹은 그리니치 평균시(GMT)에 따른 시간이다. 24시간의 역사는 겨우 4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우리의 시간은 12가지에 불과했다.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시. 각 시는 2시간정도로 여유로웠다. 서양 사람들이 더 치열하게 24시간으로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 분으로 나누고, 심지어 초까지 만들어 놓았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 지는 이유는 지나치게 나누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나누면 관리해야할 것이 많아지고, 지나치게 많으면 잃는 것이 많게 느껴진다. 왜 우리는 나누고 쪼개서 구태여 절정을 찾을까? 소설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모든 단계가 이어져 있고 중요하지 않은가? 절정이 최고의 가치인가? 논설문도 서론, 본론, 결론이 엮어 있지 않은가? 결론만 내리는 것이 유일한 진리일까? 왜 우리는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쁨을 왜 우리는 쉽게 잊는 것일까?

 어느 부모든 아이를 낳기 위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준비의 시간이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부모는 꼬박 10개월을 기다린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태어난다. 한 순간이다. 확장된 표현형으로 말하자면 하루, 아이의 생일(生日)이다. 준비와 기다림, 탄생 모두 의미가 있다.

 주문한 음식을 고르고, 기다리고, 차려지고, 먹고.
 여행을 준비하고, 이동하고, 구경하고, 돌아오고.
 아이의 잉태를 준비하고, 탄생을 기다리고, 출생을 기뻐하고.
 셋의 큰 차이가 있을까?

 ‘곱창 집’, ‘시간도둑’
 바쁘고 메마른 사람들.
 시간을 나누기 보다는 합쳐야 한다.
 짧은 절정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기 보다는,
 목적지는 결정하되 짐을 꾸리고 준비하는 기쁨과, 연속선상을 걷는 즐거움과, 마지막에 있을 무언가에 대한 기다림의 설렘을 간직해야 한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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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4-12-17 16:26:49
역시 좋은 글입니다

홍기확 2014-12-17 13:44:18
어떤 분은 윗글중에 '기다리는 시간은 기대하고 기도하는 시간이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던데 덧글의 '바쁜사람'님은 '시간을 쪼개지 말고 합친다'는 글귀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 택배를 받은 순간의 기쁨은 10분정도 지속 될까요? 물건을 고르고 배달이 될때까지인 2~3일의 기대와 설렘이 더 크겠죠? 일상에서 찾기 쉬운 기다리는 시간의 소중한 가치입니다.
- 시험 당일치기. 초치기. 심지어 벼락치기! 시험에 익숙해진 우리는 시간을 쪼개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부모님이 본인을 키워준 수십년을 정교한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눠보세요. 힘들다면 절정의 순간을 꼽아보세요. 나눌수 없고 뽑을 수 없는게 당연합니다.
현실세계, 그 중의 대표주자인 인생, 그 안의 구성원인 시간은 대부분 분해될 수 없습니다.
현실에 없는 걸 찾으려기 보다는, 현실에 맞춰서 사는 게 현명한 행동이죠.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인생 두 번살면 잘사는 사람 꽤나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은 공평하게 '한평생'. 실수해도 내 것. 성공해도 내 것.
여유를 가지시는 것도 좋지만, 여유를 찾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바쁜사람 2014-12-16 14:32:51
시간을 쪼개지 말고 합친다...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명쾌하고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네요... 오늘 하루 여유를 가져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