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산. 버림받은 요새.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 따윈 관계없이, 기온이 연중 14도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꾸준하게 싸늘한 마츠시로 대본영. 일본 나가노현 산 속에 숨죽여있는 전쟁 유적, 잊혀져가는 지하 방공호를 취재했다. [편집자주]

전쟁유적지까지 가는 길은 푯말도, 안내문도 없었다. 초행자가 현지 주민의 안내를 받지 않고 지하방공호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위 사진에서 보이는 ‘토리이(鳥居)’만이 그곳으로 향하는 길임을 어렴풋이 안내해줄 뿐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면 침범해선 안될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사실 더 컸다.

방공호 입구에는 방문자들이 착용할 수 있도록 헬멧이 구비돼 있다. 물론 입장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곳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방문객 중 나가노시에 살고 있는 한 일본인은 이렇게 말했다.
“<마츠시로 지하 방공호>를 전화번호나 주소로 검색해 봐도 내비게이션에는 나오지도 않지. 이게 이상했어요. 우리집 내비게이션이 옛날 거라 그런가, 인터넷에 검색하니 나오더라구요. 산 이름이 ‘조잔(象山)’이고 이 안에 지하 방공호가 만들어져 있다고……. 전국적으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장소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이 내륙전을 할 경우를 대비해 만든 곳이라고 하더군요. 공개되지 않는 부분에는 마츠시로 지진 관측소도 있다고 하니까, 이렇게 광대하게 만들어 놓고 다 무의미하게 된 것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기도 하니 정말… 전쟁이란 것을 한번더 생각하게 하네요.”

조감도를 보고 있으니 말을 걸어오는 일본인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안내를 해주는 분들을 제외하고, 의외로 이곳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에 있는 이곳 ‘나가노현’ 출신자 두 명에게 ‘마츠시로 지하 방공호’에 대해 물었을 때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처음 나가노현을 찾은 지난해 8월은 ‘한국인이 어쩌면 일본사람들을 모두 뭉뚱그려서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된 조선인’을 추모하는, 이곳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11월 13일, 입구 설명문의 “총 300만명의 주민과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적으로 동원되었다”는 문구 중 “강제적으로” 이 부분이 흰 테이프가 붙여져 삭제됐다는 사실이 <니시노마이니치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는 나가노 시장 가토우 히사오(72세)씨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나가노 시장은 마츠시로 지하 방공호를 찾은 이들로부터 “전부가 강제적으로 온 건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을 받고 표기를 검토한 결과 결정된 사항이라 한다. 일부 시민단체와 재일 한국인, 조선인 단체는 원래의 표기로 돌려놓을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나가노 시측에서는 “이런 항의는 있었지만, 다시 시에서 검토한 결과, 결정한 대로 실시하기로 했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답답함을 간직한 채, 이제 숨죽여 지내는 그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