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역 농업이 거듭 진화하고 있다. 이제 제주지역에서 나오는 농·특산물이 단순생산에서 벗어나 가공, 유통, 체험에 이르는 다양한 6차 산업 수익모델 사업으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른바 6차 산업은 ‘1차 농·특산물 생산, 2차 제조 또는 가공, 3차 유통·관광·외식·치유·교육을 통해 판매’를 합친 걸 뜻한다. 제주엔 ‘수다뜰’이 있다. 여성들이 모여서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는, 수다를 떠는 곳이 아니다.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농산물을 가지고 직접 가공한 제품을 팔고 있는 ’농가수제품‘의 공동브랜드이다. 그 중심엔 여성 농업인들이 있다. 열심히 손을 움직여야하는 ‘수다’(手多)를 통해 이를 실천하고 있다. 농촌교육·체험농장도 6차 산업 실천현장이다. 이들을 만나 제주농업 진화와 미래를 확인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제 손으로 재배한 귤을 따다 정성 듬뿍 잼과 차를 만들면 몸과 맘속에 향기가 스며드는 듯해요. 제철 맞춰 색깔 내는 과수원 숲길 따라 내 꿈도 펼쳐놓고 재단도 해봅니다. 당유자차 한잔하면서 힐링 해 보세요“
제주시 노형동 한라수목원 남쪽(애조로와 맞닿은 곳)에서 ‘귤향기’ 감귤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고영희 대표(56)는 진한 귤 향기를 사시사철 품고 살아간다고 한다.
예전에 이곳은 초지를 재배하는 밭이었는데 남편 송성준 대표(58)가 30년 전에 개간해, 감귤 농원으로 일궈내 감귤을 재배해오고 있다.
현재 과원 4500평에선 노지감귤(3800평)을 비롯해 비가림,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고, 체험용으로 레몬·청견·오렌지·유자·당유자·금귤 등 다양한 감귤을 키우고 있다.
노형동 출신인 남편은 어려서부터 4H와 농업경영인으로 활동하면서 감귤을 재배해왔다. 25년 전에 제주농업기술센터 기술지도와 지원 등을 받아 감귤체험농장 문을 열었다.
“1983년 4H일원으로 대만을 견학을 가보니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걸 봐서 도입해야겠다는 맘을 먹었죠. 7년 뒤인 1990년에 이곳에 처음 문을 열었어요. 당시 도내엔 성산읍 수산리에서 사진 찍는 감귤농장은 있었지만 고객이 직접 따먹고 체험하는 곳은 없었죠”
수원에선 오래전부터 딸기체험농장이 있었지만 그때까지 도내에 감귤체험농장은 없었다. 당시 제주시에 감귤체험농장은 이곳을 포함, 오등·봉개동 등 모두 3곳이 있었다고 송 씨는 전한다.
이곳 체험농장은 ‘노형사슴감귤 관광농원’으로 시작했다. 당시엔 유자 500평, 감귤 4500평을 재배했고, 사슴 45마리, 흑염소 30마리도 키웠다. 2010년까지 녹용·녹혈을 팔다가 그만 뒀다.
이 농장이 문을 열자마자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1000원이면 귤을 맘껏 드세요. 일일농장주”란 홍보를 한 게 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농장을 찾은 손님은 1인 기준으로 1000원을 내면 맘껏 따먹게 했다. 하지만 갖고 가진 못하게 했다. 직접 따먹는 감귤은 적게는 4~5개, 젊은이들은 10개까지 따먹곤 했다.
처음엔 손님이 하루 40~50명이 올 정도로 상당히 많았다. 지금은 체험농장이 워낙 많이 생겨 경쟁이 심해 예전 같지는 않다고 고 대표는 귀띔한다.
지금은 손님들에게 감귤 종류를 설명하고 따는 요령 가르친 뒤 직접 따먹고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한 사람이 5000원을 내면 노지감귤을 맘껏 따먹고 1㎏ 갖고 갈 수 있다.
# “무농약 유자차, 당유자차, 귤 잼 가공해 팔아”
현재 이곳에선 노지감귤을 무농약으로 재배하고 있고, 3년 전에 농산물우수관리(GAP)인증도 받았다. 무농약 재배 감귤 연간 수확량은 6000㎏로 귤 따기 체험과 직판을 주로 한다.
“이곳 감귤나무는 따먹기 체험 위주로 쓰고 있어 나무에 열매를 오래 달리게 해야 하기 때문에 수세가 떨어지고, 수령이 오래돼 수확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수확량은 줄어들지만 직판하고 있어 수입은 많은 편이에요”
무농약으로 재배한 유자와 당유자로 무농약 유자차, 당유자차, 귤잼으로 가공해서 팔고 있는고 대표는 무농약 재배·가공·판매를 통해 요즘 농업에서 새로운 아이콘을 떠오른 ‘6차 산업’을 몸소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11월 중순엔 무농약 유자, 2~3월에 당유자. 10~12월에 귤잼을 가공해요. 수확한 뒤 냉동했다가 감귤 성수기를 피해 귤잼을 만드는 곳도 있지만, 여기선 바로 따서 제철에 만들기 때문에 품질이 좋아요”
잼을 만들려면 자체 응고할 수 팩틴 성분이 있어야 좋다. 12월이 지나면 그 성분이 없어 응고가 덜돼 설탕을 많이 써야하기 때문에 제철에 맞게 잼을 만든다. 처음엔 물엿과 설탕을 썼는데 지금은 자연성분을 이용, 설탕을 아주 줄여 만들고 있다고 고 대표는 말한다.
이곳에선 손님들이 직접 보고 따서 먹음으로써 믿음이 가도록 감귤을 무농약으로 재배해 9월말부터 이듬해 5월말까지 직접 따먹고 사가게 한다. 예전엔 10월말에서 이듬해 2월말까지 했지만, 비가림과 한라봉이 있어 기간을 조정했다.
지금은 관광지마다 감귤체험농장이 생겨 경쟁이 심해졌지만 이곳은 공항과 가깝다는 이점이 한 몫하고 있다.
“농원이 공항과 가까이 있어 찾기 쉽고, 도심과 가까워 많은 도움이 돼요. 공항을 갈 때 올 때 쉽게 들를 수 있어 일부러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해요. 공항에서 가까운 감귤체험농장이 어디냐 하면 이곳 소개시켜줘요. 과거에 체험농원이 몇 군데 없을 땐 시청에서 소개해줄 정도였죠”
한 렌터카업체는 직접 패키지 상품에 이곳 체험을 포함시켜 이벤트 행사를 겸함으로써 서로 윈- 윈하고 있기도 하다. SNS 등을 통해 홍보를 하는 건 물론이다
요즘 고 대표는 어려서부터 귤이 되기까지 과정, 귤을 이용한 식품을 만드는 걸 영상으로 보여주는 등 어리고 젊은 층을 겨냥한 새로운 체험거리를 만들려는 구상에 푹 빠져 있다.
“어린이집과 초등학생들이 이곳에서 귤따기, 무농약 네잎클로버 찾기, 큰 귤 따기 등 체험을 하고 있어요. 이를 다양화해 무농약 귤잎으로 염색, 귤껍질로 비누만들기, 감귤 꽃으로 꽃차 만들기 등을 했으면 좋겠어요. 뭔가 독특한 걸, 힐링 쪽으로 가고 싶은데, 머릿속에서만 맴도네요”
체험농장을 하면서 큰 어려움은 겪고 있진 않지만 처음 시작할 때보다 뭔가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고 대표 남편인 송 대표는 안타까운 속내를 털어놓는다.
“모든 게 세계화하는 변화 속에서 맞춰가지 못하고 있다는 맘이 들어요. 새로운 교육을 받으면서 변화를 추구하고 싶지만 흡족하게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젊었을 땐 밀어붙이기도 했지만, 요즘 젊은이만큼 생각할 수 없고, 도전해야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데 과감하게 투자를 못하는 게 아쉬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