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맑고 순수한 맘을 가진 걸 새삼 느꼈어요”
“우리 아이들이 맑고 순수한 맘을 가진 걸 새삼 느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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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 현장] <28> 학생 전체의 목소리가 담긴 e-동시집을 펴낸 신례초

신례초등학교의 'e-동시집' 화면.
30년전 내 모습은 어땠을까. 아니, 초등학교 때 내 모습이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글을 어떻게 썼고, 내 목소리는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추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그걸 보존하고 있는 이는 거의 없을게다.

그러나 그런 추억을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곳이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작은 학교인 신례초등학교(교장 안재근). 신례초가 내놓은 것은 ‘e-동시집이다.
 
, 잘 들어봐!’라는 주제를 내건 신례초의 e-동시집은 온라인을 통해 공급된다.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라면 PC를 통해,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e-동시집을 들을 수 있다. 신례초등학교 홈페이지를 접속해 ‘e-동시집을 클릭하면 된다.
 
더 소중한 사실은 신례초 학생 80명 모두가 시를 짓고, 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것도 시를 보고 읽는 게 아니라, 직접 외워서 녹음한 것이어서 동시 속에 감정이입이 돼 있음은 물론이다.
 
아프지 않았으면
친구가 많았으면
지금보다 더 공부를 잘 했으면
부모님께서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으면
커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은 딸이 되었으면
영어선생님이 꼭 되었으면
유나 서진이랑 죽을 때까지 친구가 되었으면
건강하게 살았으면
늙어도 친구가 많았으면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어
(동시 ‘,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5학년 강민정)
 
신례초의 e-동시집은 저작도구와 서버를 무료로 제공받고, 거기에 교사들의 노력이 100% 더해졌다. e-동시집의 저작도구를 만든 업체인 웹켓은 교육적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흔쾌히 무상으로 제공했다. 서버업체인 샘빌 역시 신례초의 서버를 무상으로 제공, 학생들의 e-동시를 얼마든지 담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e-동시집 작업은 5월부터 시작됐다. 5월과 6월 두달간 동시를 만들고, 거기에서 마음에 드는 동시를 하나씩 골라냈다. 이후 7월과 8월은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일러스트 등으로 약간의 손질을 가했다. 그림은 저학년인 경우 스케치북에 그려 스캔작업을 거쳤으나, 고학년들은 태블릿PC에서 직접 그림을 직접 그려냈다.
 
교사와 학생들이 e-동시집을 펼쳐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올해 초임인 고경림 교사는 “80명엔 글도 읽고 쓸 줄 모르는 특수아동도 있다. 특수아동이 표현하는 걸 받아쓰고, 그 애가 또 그걸 외워서 시낭송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고경림 교사는 또 작은 규모의 학교여서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의 작품 하나하나를 편집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순수함이 담긴 동시를 들으면서 작업을 하니 너무 좋았다고 덧붙였다.
 
일학년 때 자전거를 처음 타봤다
아빠가 뒤에서 잡고 계셨는데
놓으실까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를 보니 안심이 되어
금방 정신력으로 탈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람을 느꼈다
시원하고 상쾌했다
기분도 좋았다
그 때 아빠가 소리쳤다
준혜야
뒤를 돌아보니 아빠는 엄청 뒤에 떨어져 계셨다
내가 혼자서 탄 것이다
(동시 ‘아슬아슬한 자전거 타기6학년 이준혜)
 
위에 쓴 동시처럼 신례초 어린이들은 졸업을 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게 됐다. 직장인이 돼서도 고향이 그리우면, 초등학교 때가 그립다면 언제든 스마트폰을 열면 된다.
 
직접 시를 낭송하며 녹음을 한 어린이들은 교사들보다 더 뿌듯하다.
 
강민정 어린이가 자신이 낭독한 동시를 보여주고 있다.
강민정 어린이는 스마트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다. 커서도 인터넷을 통해 내가 쓴 동시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정민 어린이도 아빠가 잘 썼다고 칭찬을 해줬다내년엔 세월호와 관련된 동시를 써서 내 목소리를 담고 싶다고 기대해달란다.
 
e-동시집을 만드는 데 들어간 예산은 편집과 관련된 책을 산 것 뿐이란다. 하지만 교사들은 녹음과 편집 기술을 배우는 열정을 e-동시집에 쏟아냈고, 학생들은 즐거움을 e-동시집에 담뿍 담았다.
 
안재근 신례초 교장은 세상에 하나 뿐인 아이들의 작품이 담겼다. 우리 아이들의 시를 모두 들었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내년에는 담임 선생님들의 감상문도 목소리로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안재근 교장의 설명처럼 동시엔 어린이들의 순수함이 가득 배어 있다. 아래에 있는 양혁재 어린이의 시처럼. 게다가 시를 그냥 읽는 것과 낭송의 차이점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집이 더러워서
집이 화났어
담이 없어 사나운 폭풍이 몰아칠 때
추워서 화났을 수도 있지
또 동네 아이들이 대문을 두드리고 도망쳐서
화났을 수도 있지
또 낡지 않았는데 부숴버려서
화났을 수도 있지
(동시 ‘집이 화났어1학년 양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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