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중세의 도시 아비뇽(Avignon)
중세의 도시 아비뇽(Avignon)
  • 조미영
  • 승인 2014.08.23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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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여행자 조미영의 여행&일상] <11>

큰 여운을 남기고 교황 프란치스코 1세는 한국을 떠나셨다. 그 분이 계시는 동안 우리사회의 소외되고 아픈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교황께서는 스스로 몸을 낮춰 이들의 아픔을 나누려 애쓰셨고 그런 마음들이 전파되어 모두에게 전달된 것이다. 한동안 메말라 퍼석퍼석했던 사회 분위기가 일순 촉촉해지는 듯하다. 훌륭한 지도자에 의한 치유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경험케 한다.

하지만, 한때는 교황의 권위가 끝없이 추락하던 때도 있었다. 권력을 탐하고 부패가 깊어지던 시절이다. 왕권과 교권이 대립을 하다 프랑스 왕 필립 4세에 패하며 결국 1305년 새롭게 선출된 교황 클레멘스 5세는 로마 교황청 대신 아비뇽에 새로운 교황청을 두고 생활해야만 했다. 이후 약 70년간 교황은 프랑스 왕의 간섭 하에 놓이게 된다. 이게 바로 ‘아비뇽 유수(幽囚)’이다.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비뇽(Avignon)은 그렇게 역사에 등장한다.

아비뇽 역 앞 성문 모습(왼쪽)과 도시를 둘러싼 웅장한 성벽.
아비뇽으로 가기위해 파리에서 TGV를 탔다. 도심을 벗어나자 금세 곡식이 여물어 가는 들판이 나온다. 간간히 해바라기군락이 화사함을 선사하며 차창 밖 풍경에 활력을 준다. 약 2시간 반 만에 아비뇽 역에 도착이다. 역사를 빠져나오자 제일 먼저 오래된 성곽의 문과 맞닥뜨렸다. 성곽의 남문인 레퓌블르크 문이다. 역시 고도(古都)의 명성을 간직한 도시답다.

아비뇽 구시가는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교황청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는데 중세 최대의 성벽답게 아직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채 도시를 에워싼다. 이런 튼튼함 때문에 한때는 감옥으로 사용된 적도 있고 군대의 주둔지가 되기도 하였다.

다행히 숙소는 구시가 중심거리에 있었다. 가격대비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미리 숙소를 예약한 덕분에 이나마 구할 수 있었다. 이미 거리 곳곳의 숙소마다 빈방 없음이란 표식들이 나붙어 있다.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아비뇽페스티벌은 1947년 장 빌라르라는 연극인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실험적인 공연들이 각광을 받으며 성장하자 점차 영역을 넓혀 무용, 영화, 미술 등의 분야까지 참가하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축제기간동안 아비뇽을 다녀간다 하니 도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히 크다.

거리 곳곳의 홍보물들(왼쪽)과 거리 공연.
공연 홍보를 위한 퍼포먼스
뙤약볕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섰다. 축제를 위한 공연 홍보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곳곳에 붙어있다. 때로는 안내판을 들고 요란스런 행진을 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비공식부문에 참여한 아마추어 예술인들은 벌써 자리를 깔고 거리공연을 준비한다. 갤러리나 식당 앞, 거리, 광장 등등 빈 공간이면 어디든 장소 불문하고 공연장으로 변신이다. 이런 축제분위기 탓인지 과일 주스를 파는 거리의 노점상조차 삐에로 분장을 하고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구시가의 중심 우뚝한 곳에 교황청이 서 있다. 시민혁명 당시에는 내부 기물 대부분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외관만큼은 아직도 당당한 옛 모습 그대로다. 교황청 앞 넓은광장은 훌륭한 문화공간이었다. 한쪽으로 파라솔이 설치된 카페테리아가 자리 잡고 그늘이 드리워진 계단은 순식간에 관람석이 되어 공연을 즐긴다. 늦은 밤까지 축제의 흥은 가시지 않고 광장을 가득 채웠다.

교황청 앞 광장 모습(왼쪽)과 관람석으로 변한 교황청 계단.
다음날은 인근 지역을 방문하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아비뇽에 돌아왔다. 다시 역전에서부터 걸음을 옮겨 구시가 중심으로 향하는데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 눈에 띈다. 길 양 옆으로 노점상들이 형성된 것이다. 대부분은 헌책이나 LP판, 그림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냥 구경만 해도 재미가 쏠쏠하다.

녹음 사이로 형성된 노점(왼쪽)과 노점상이 들어선 거리 모습.
그렇게 거리를 배회하며 성 외곽에 다다르니 강이 나온다. 론(Rhone)강이다. 스위스의 산맥에서 시작한 작은 하천이 프랑스의 남동부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이 되었다. 지난번 아를지역을 소개할 때 나왔던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의 배경도 이 론강이다.

어느덧 해는 힘을 잃고 옅은 빛을 발산하며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치가 끊어진 채 남아있는 생 베네제 다리가 더욱 처연해 보인다. 12세기 이 다리를 지은 성인 베네제의 이름을 따 부른 것이다. 잦은 강물의 범람으로 자꾸 유실되어 복구가 거듭되다 1660년 이후 유실된 채 남아있다. 프랑스 동요 “아비뇽 다리위에서 춤을 춘다”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라는 데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세월의 무게만 굵직하게 남기고 있다.

아비뇽은 시간이 멈춰있는 도시 같다. 어디를 가든 옛 흔적이 남아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도시를 휩쓸고 간 역사의 생채기들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 많을 것이다. 덕분에 이 도시는 가볍지 않다. 오랜 수양을 거친 사람마냥 정제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장식 하나 없는 오래된 성담조차 기품 있게 느껴진다.

마지막 날, 성곽을 따라 걷다 만난 할머니의 아코디언을 연주소리가 골목을 타고 흐르며 긴 여운을 준다.

3개의 아치만 남은 생베네르 다리(왼쪽),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할머니.
우리는 너무 빨리 망각해 버리는 습성이 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히 구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송두리째 묻어버린다. 아픔이 많았던 역사 탓일까? 하지만 그러기에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이번 교황방문을 통해 얻어진 가르침들 역시 그저 하나의 유행처럼 지나가 버릴까 염려된다. 이번만큼은 사람들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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