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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지친 여인들의 피안(彼岸)의 이상향(理想鄕)이었습니다
이어도, 지친 여인들의 피안(彼岸)의 이상향(理想鄕)이었습니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4.08.0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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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이어도는 지리상으로 마라도에서 남쪽으로 149km(80해리), 일본 도리시마에서 276km(149해리), 중국 퉁다오 섬에서 247km(133해리) 떨어져 있는 작은 바위 섬으로 1987년 등부표가 설치된 이후, 2003년 400평정도의 해양과학기지(전체 높이는 76m. 바닷 속에 잠긴 부분이 40m이고, 해수면 위 36m)를 설치하고 연간 60일 내외로 사람이 머무르는 우리의 영토인 것입니다. 2013년 발표된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 사람들은 ‘이어도’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바다에서 나는 소라, 전복, 미역 등의 씨를 뿌려주고 해상에서 작업중 안전을 보장하며, 풍어(豊漁)를 가져다주는 그런 고마운 신이 바다를 건너오는 길목에 있는 섬이라고 알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섬을 신들의 고향과 우리 제주를 이어주는 섬이라고 하여 ‘이어도’라 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이어도는 환상의 섬, 피안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전설에 의하면 어부들이 이 섬을 보면 돌아올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먼 옛날에 이곳에 와서 조업을 하다 파고가 10m 이상이 되어야 이 섬이 보였는데, 이 정도 파도면, 당시 어선(漁船)으로는 조난당할 만큼의 높은 파도로 무사히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외에도 제주에 전하는 다른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고려시대 때 몽골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제주에서는 매년 공물(貢物)을 중국으로 보내어야 했다고 합니다. 이 공물선은 중국의 북쪽 산동으로 들어가야 했으므로 섬의 서북쪽인 대정 모슬포에서 출발하였는데, 대정에는 강씨라는 거상이 맡아서 해마다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 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여러 척의 큰 배가 공물을 가득 싣고 출발했지만, 이 공물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씨에게는 늙은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슬픔은 이기지 못하고 “아아, 이어도야 이어도”로 시작하고 끝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제주에 이 노래가 전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옛날 제주 사람들이 섬 밖으로 출항할 때에는 반드시 들르는 섬이 있었는데 그 곳을 이어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곳에는 해적이 있어 소지품을 빼앗고 모두 죽였기 때문에 바다에 나간 사람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상 제사를 모실 사람이 없으니 목숨만은 살펴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이 있어 혀와 두 손을 자르고 작은 배에 태워 보냈는데, 운 좋게 제주로 실려왔습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매우 슬퍼하면서 이여도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이어도 할망에 관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조천에 ‘고동지’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중국으로 국마 진상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바람 한 점 없이 바다여서 고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말을 잔뜩 싣고 순풍에 돛을 달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배가 수평선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폭풍이 일어 배는 나무 조각처럼 흔들리며 표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날 며칠을 표류하다가 마침내 한 섬에 닿게 되었는데, 동료들을 모두 잃고 자기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섬은 고동지처럼 큰 태풍 때 고기잡이 간 어부들이 수중 고혼(孤魂)이 되는 바람에 이른바 과부들만이 사는 섬, 이어도 였습니다. 과부들은 고동지가 표착하자 대단히 환영하였습니다. 이 집에서도 묵도록 하고 저 집에서도 묵도록 하는 등 고동지는 애정을 나누는데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고동지는 불현듯 고향의 아내와 부모 형제가 그리워졌습니다. 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길같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밤 고동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면서 멀리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아내의 이름을 열백번도 더 불러 보았습니다. 파도의 가락에 따라 스스로를 달래며 구슬프게 노래도 불렀습니다. 애절한 내용의 노래였습니다.이어도 사람들은 이 고동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많은 여인네들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도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되었다. 그 후 고동지는 뜻밖으로 중국 상선을 만나,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어도’의 한 여인이 이 고동지를 따라 제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 되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 때 ‘이어도’에서 고동지를 따라 온 여인을 마을 사람들은 ‘여돗할망(이어도의 할머니라는 뜻)’이라 하여, 사후에는 마을 당신(堂神)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지금 조천리 ‘장귀동산당’이 바로 그 여인의 신당(神堂)이라고 합니다.

척박한 삶의 터, 제주에서 고된 생활을 하면서 불렀던 여인들의 노래 소리에 ‘이어도’가 불려집니다. 이는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불렸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불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이도는 제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절망을 주기도 하고, 늘 그리워하며 살지만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듯 하지만 하늘거리는 수평선 너머에 자리하고 있을 것만 같은 곳이 이어도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순과 이중성이 이어도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어도’는 보고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어부들의 섬이었으며, 남편과 아내를 그리워 하며 슬퍼하는 여인들의 한(恨)의 사연을 담은 노래 소리이기도 하였습니다. 또 척박한 삶의 터에서 고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현실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피안(彼岸)의 섬으로 알려져 온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멀리 신(神)들이 산다고 믿고 있는 ‘강남천자국’과 우리 제주를 이어주는 이상향(理想鄕)의 섬이기도 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해 하나 밝히더니 이제는 거대 대양 태평양의 출발점에 위치한 우리 영토의 막내로 자리하게 하였습니다. 꿈의 섬, 이어도의 내일을 기대해 봅니다.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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