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교육감 관사는 원도심 유형문화다. 울타리도 건들지 말라”
“교육감 관사는 원도심 유형문화다. 울타리도 건들지 말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4.08.05 09:0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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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보존’하려는 교육행정과 ‘파괴’에 앞장서는 지방자치단체

제주도교육청 교육감 관사.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리모델링,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쓸 계획이다.
지난주다. 날짜를 꼬집어 말한다면 81일 금요일이다. 이날 제주도교육청 브리핑실에서 이석문 교육감의 취임 한 달을 맞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교육에 대한 이석문 교육감의 비전을 듣는 자리였으나 기자에게는 다른 게 귀에 들어왔다. 교육감 관사였다.
 
제주도교육청은 올해 1차 추경에 교육감 관사와 관련된 예산 4억원 반영을 요구했으나, 10분의 1만 남은 4000만원만 반영하게 됐다.
 
당초 도교육청은 4억원을 투입해 교육감 관사를 리모델링,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산 삭감으로 도교육청의 계획은 다소 늦춰지게 됐다.
 
예산삭감이라는 을 맞았지만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석문 교육감은 매우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이석문 교육감은 관사를 팔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제주도엔 유형문화재가 없다. 구도심이어서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현대의 유형문화가 될 수 있다. 건물 자체를 잘 유지하는 것이 현대 문화유산을 남기는 것이다. 의원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면 내년 예산 반영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감 관사는 닫혀 있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달라진다. 외부에 공개된다. 그것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공개된다. 개인에게 팔수도 있는 건물을 팔지 않는 건 공공성에 있다. 외부에 판다면 당장 헐리고 만다. 제주도교육청은 팔아서 돈을 챙기기보다는 유형문화라는 가치에 중점을 뒀다.
 
기자는 교육감 관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터여서 교육감 관사를 직접 다녀왔다. 1977년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벽돌조 건물로 2개의 수평틀이 입면을 압도한다. 전통 건축에서 보이는 서까래를 표현하기도 했다. 현대적 감각이 풍기는 아주 깔끔한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제주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했던 건축가 김희수의 작품이다. 건축가 김희수는 1970년대와 80년대 제주 지역 건축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더구나 이석문 교육감은 관사 울타리도 건들지 말라고 했다. ‘울타리도 건들지 말라는 건 원도심에 있는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교육행정이 아닌, 제주도의 지방자치단체는 어떤가. 너무 파괴를 좋아하는 건 아닌지 참 우려스럽다.
 
옛 제주시청사가 있던 자리. 건물이 있을 때는 개인 소유였으나 제주시는 건물이 사라진 뒤 이 땅을 매입, 주차장 부지로 쓰고 있다.
최근 몇 년 만 보자. 지난 201212월 옛 제주시청사, 20133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올해 7월엔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이하 수산검역본부)가 땅 위에서 사라졌다. 건축사적으로나 그 건축물이 서 있는 위치로 봤을 때 생존해야 할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옛 제주시청사는 제주근대 건축의 1세대로 꼽히는 건축가 박진후의 작품이다. 당시 제주시는 개인 소유여서 간섭을 하지 못한다고 발을 뺐다. 그러나 제주시는 옛 제주시청사가 파괴되고 나서 그 부지를 매입,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지난해 파괴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는 건축 거장인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이다. 레고레타의 유작이기에 보존을 해야 한다며 국내외 문화계의 이슈로 자리잡았으나 제주도청과 서귀포시청의 무관심으로 그 땅에서 사라졌다. 그 땅엔 레고레타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하게 시공된 앵커호텔이라는 흉물이 세워져 있다.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파괴 장면.
올해 7월 땅 위에서 사라진 수산검역본부의 파괴전 모습.
얼마전엔 제주시 원도심에 위치한 수산검역본부도 사라졌다. 현재 제주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김석윤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떠나서 공공건물이기에 리모델링하는 방안이 제시됐으나 그런 의견은 완전 묵살된다. 제주시는 건축 전문가가 없는 주민 설명회를 개최, “주민들이 새건물을 원한다면서 다수결 민주주의를 외치며 없애버렸다. 제주시는 1977년 지어진 건물로, 눈으로(?) 봤을 때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서는 매년 논란이 되는 건축물 하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교육행정은 건축도 유형문화가 된다며 보존하려 하는데, 다른 쪽의 공무원들은 파괴에 혈안이 돼 있다. 같은 공무원인데 왜 이리 다를까. 건축문화를 바라보는 수준차이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커넥션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10년 서울시 공무원의 태도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서울시 공무원의 전화 한 통화가 아주 귀중한 건축물을 살렸기 때문이다.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누더기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려던 서울시는 방향을 선회, 20115꿈마루라는 이름의 건축물(20111121일자 한겨레 보도 참조)을 내놓는다. 서울시는 건축가 나상진의 작품을 온전하게 보존하며 리모델링했다. 무조건 파괴만 하려는 제주도는 언제면 그 수준에 오를까.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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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2014-08-05 10:49:15
가장 빛나는 개발은 보존하는 것입니다.
교육감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게 신선합니다.
교육감관사를 처음보는데 아름다운 건물이네요.

안타까운 수산검역원 2014-08-05 13:14:12
어처구니 없이 철거된 수산검역원. 교육감 관사 보존과 대비되는 제주시의 말도 안되는 일처리 방식. 안목도 없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제주시의 태도는 자신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제주시는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한다. 건축물이 유산이라는 것을 공부해서 시민들에게 무엇을 돌려줘야 하는지 고민해야한다. 철거해서 무슨 이득이 있는지도 시민들은 알고 싶다.

우이독경 2014-08-05 13:59:02
우이독경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표현입니다. 카사델아구아, 옛 제주시청사, 수산물검역원, 이 세 건축물 철거의 공통점은 제주도와 제주시의 우이독경의 결과입니다. 우이독경, 아니 우이독경인 척 하는 제주도와 제주시 행정의 우매한 처리방식은 21세기 제주도가 내거는 슬로건 '제주는 세계로, 세계는 제주로'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건축물은 유형윳

우이독경 2014-08-05 14:13:04
우이독경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표현입니다. 카사델아구아, 옛제주시청사, 수산물검역원, 이 세 건축물 철거의 공통점은 제주도와 제주시의 우이독경의 결과입니다. 우이독경 아니 우이독경인척 하는 제주도와 제주시의 우매한 처리방식은 21세기 제주도가 내거는 슬로건 ‘제주는 세계로, 세계는 제주로’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건축물은 유형유산일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공무원들은 해외연수 가서 무엇을 보고 배우고 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런 연수비용은 도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것입니다. 공무원 ‘해외여행’이 아니라 ‘해외연수’입니다. 도민 대신 행정을 맡겼으니 해외의 사례를 잘 배우고 와서 타산지석의 지혜로 제주 발전에 잘 활용하라고 해외연수를 보내는 겁니다. 이런 기획기사를 내준 미디어제주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비판, 고발하는 기사 소재를 계속 발굴해서 제주사회의 죽비역할 해주기 바랍니다.

제주시민 2014-08-07 10:05:13
새롭고 깨끗한 것에 너무나 익숙한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너무 유익한 글입니다. 교육청 관사가 미래세대에게는 소중한 역사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 기사 연재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