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11:47 (목)
태풍은 무서워
태풍은 무서워
  • 박종순
  • 승인 2014.08.03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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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귀농일기] <32>

남원큰엉에서 필자.
태풍이라면 매년 3-4개 정도 지나고 있다.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초등학교 1,2학년 땐가 사하라 태풍이 기억난다.
당시 부산 서구 부민동로터리 2층집에 살고 있었는데, 바람이 몹시 불어와 동그란 로터리 중앙에 심어있던 규모가 꽤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버린 것을 보고는 너무 무서워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지냈던 기억도 난다.
 
제주에도 매년 태풍이 불어와 피해를 받아 왔고 한때 처갓집 역시 바나나 하우스가 무너져 경제적으로 곤란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육지에 있었고 얼마나 심각했는지 남의 집 불구경했던 것 같다.
 
중형 제11호 태풍 할롱과 제12호 나크리가 북상하면서 제주를 지나갈 것 이라는 기상예보가 방송을 타면서 며칠째 스마트폰으로 시설물 점검과 밭작물 침수예방 등 농업기술원을 비롯해 소방방재청, ㅁㅁ화재에서 실시간으로 공지를 해 주고 있다.
 
TV에서는 느리게 북상 하지만 바람이 걸치다는 중형 태풍이라며 며칠 전부터 방송을 하면서 연일 만반의 대비를 하라고 하지만 하우스가 없고 아파트에 있는 나로서는 딱히 할 것도 없다.
단지 농장에 심어둔 고추나무가 바람에 쓰러질지 몰라 지지대를 끈으로 단단히 묶고 화분을 옮겨 놓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재작년 태풍 볼라벤이 제주를 강타했을 때가 생각난다.
귀농하여 처음으로 맞는 태풍으로 주위에서는 태풍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난 노지감귤만 재배하다보니 별다른 대비가 필요 없어 TV만 열심히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동서와 처제는 하우스나 창고문을 꼭 닫고, 창고 밖에 이리 저리 굴러다니던 나무상자, 콘테이너, 각종 물건들을 창고로 옮기며, 심지어 원두막에 놓인 탁자며 커피용품 박스 까지 옮겼다. 농장은 마치 내무사열을 받듯이 종이 한 장 보이지 않는 오로지 하우스와 원두막과 창고만 보였다.
 
주변 농장을 살펴보니 문이란 문은 쇠사슬로 묶고 규모가 작은 간판도 흔들릴까봐 아예 떼어놓는 주민도 있었다. 원래 조용하던 마을은 더더욱 조용해 졌고 마치 전쟁을 준비하며 방화로에 숨어들듯이 침묵의 마을이 되어 갔다.
 
아파트 텃밭에 심어둔 고추를 2층 아낙은 모조리 따고 있기에 집사람도 덩달아 땄다.
또한, 동서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농장의 고추도 따버리고, 간이천막도 바람에 견디기 어려우니 철거해라. 잘못하면 바람에 날려 하우스 비닐이 찢겨나갈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태풍이 세다 한들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닌가 하고 지나가려 했는데 내 하우스도 아니고 혹시라도 다치면 큰일이다 싶어 다음날 고추와 천막을 자의반타의반 철수 해야만 했고, 철수 하면서도 며칠만 있으면 빨갛게 익은 고추가 될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드디어 볼라벤이 제주도를 향해 돌진했는데 새벽 3시가 통과 예상시간이었다.
낮에는 바람도 없고 간간히 비가 옷깃을 적시는 정도여서 별 것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해가 지고 저녁 9시쯤부터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속보방송을 하면서 유리창에 신문지와 테이프를 붙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도 아파트 인데 별일이 있을까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바람이 더욱 심해지자 베란다 유리창이 깨어질 듯이 흔들리고,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무서운 바람소리에 뒤늦게 신문지와 테이프를 찾았다.
 
다행히 테이프는 있는데 신문지가 없어 2층 아낙에게 얻어 겨우 붙였다.
새벽 1시쯤이 되자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같은 바람소리에 태풍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전기가 끊기더니 수돗물이 나오지 않고, 인터넷도 불통이고, 텔레비전마저 꺼져버리니 더더욱 고통스럽고 불안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새벽 3시가 되니 바람소리가 더욱 커져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시간아 어서 지나가라고 빌고 있을 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유리창에 붙여놓은 신문지도 수명을 다해 찢어져 너덜너덜거리고 양초가 없어 집 안이 어두움으로 싸여버렸다.
 
눈 붙일 여유도 없이 깜깜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도 비바람은 여전하더니 점심 지나 저녁 늦게 쯤 육지에 있는 친척이 안부를 물어오고 그곳도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할 때 쯤 잠잠해 졌다.
 
다음날 농장에 가보니 미처 못 따고 남은 고추는 비바람에 초토화되어 있었고, 주변 하우스는 구멍이 숭숭 나서 펄럭거리고, 20~30m 삼나무 방풍림도 넘어져 귤나무 위로 덮치고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전기·수도 역시 하루걸러 며칠째 나오지 않자 생활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양초나 신문지를 미리 준비 못한 나 자신을 탓하게 되면서 제주의 태풍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후에 안 사실이지만 해변가에는 사람 키만한 바위가 움직이고 방파제가 무너지며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면서 팔뚝만한 고기가 도로로 날아왔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집사람과 난 태풍이 지나간 후 감태와 통나무를 걷어 오는 즐거움도 얻었지만 제주의 태풍은 너무 무서워서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었다.
볼라벤 태풍의 위력을 경험한 나에게는 제주의 태풍이 너무 무섭다.
바닷가에 아담한 집을 짓고 파도를 보며 살아야겠다는 소망도 다시 한번 고려해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이번에 연달아 오는 2개의 태풍에 대비하여 양초, 랜턴, 비상식량, 물을 준비하고 집이나 과수원 주변을 철저히 점검해 봐야겠다. < 프로필>
부산 출신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서귀포 남원으로 전입
1기 서귀포시 귀농·귀촌교육수료
브랜드 돌코랑’ 상표등록
희망감귤체험농장 출발
꿈과 희망이 있는 서귀포로 오세요출간
e-mail: rkahap@naver.com
블로그: http://rkahap.blog.me
닉네임: 귤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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