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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통시, 돗궤기와 돗거름을 주었던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돗통시, 돗궤기와 돗거름을 주었던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4.07.30 16:59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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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제주에서 돼지고기처럼 여러모로 쓰였던 고기가 있었을까요?

가문잔치에는 물론, 사돈 댁으로 보내는 이바지 음식에도 돼지 뒷다리는 제일 중요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혼례를 ‘일레잔치’라 하였는데, 그것에도 ‘돼지 잡는 날’을 넣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제주에서는 돼지를 잡는 일로부터 잔치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잔치가 있을 과년한 딸을 둔 집안에서는 으레 돼지를 길렀던 것입니다. 정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집안 뒤쪽의 돗통시에는 검은 도새기가 자라게 됩니다. 보통 1년 정도를 키워 이용하게 되는데, 100근 내외가 되었다고 합니다.

돼지고기는 12부분으로 나누어서 이용하였습니다. 대가리, 휘양도래기(턱이 붙은 목), 접작뼈(앞다리 위 어깨의 살), 앞다리 2개, 갈비뼈와 살 2개, 숭(뱃살), 알룬(허리, 갈비뼈 뒤 끝에서 뒷다리 앞 끝까지), 뒷다리 2개, 부피(엉덩이, 뒷다리 위 끝에서 뒤 꽁지까지, 반드시 꼬리가 달려 있어야 함)이 그것이었습니다. 고기의 부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배설은 소장과 대장을 말하며 창지는 간, 복부기(허파), 염통(심장), 지래(비장), 멍얼(췌장), 콩팥(신장), 밥통(위)을 가리켰습니다.

오줌통(방광)은 먹지 않고 아이들의 장남감, 주로 공차기 놀이의 재료로 주었던 것입니다. 돼지를 잡아준 사람에게는 수고비로 내장, 대가리 또는 접작뼈를 주는 게 관례였다고 합니다. 잔치 전날 가문이 모여 가문잔치를 하고 이들을 대접하는 음식을 가문반이라고 했습니다. 가문반은 돼지를 잡은 후 돼지의 귀, 창자, 머리, 허파, 간 등을 꼬치에 꽂아 만들고 돼지 뼈와 부스러기들을 모아서 상을 차렸습니다. 잔치 다음날은 사돈잔치로 이 날은 신랑 측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신부 집으로 보냈습니다. 신랑측 사돈들이 신부 집에 와서 인사를 나누었던 의례였습니다.

또한 돗통시는 거름을 만들어주는데 더없이 고마운 곳이었습니다. 일년 내내 돗통시 속에 있던 보리 짚과 돼지 똥 같은 것이 쌓이고 밟히면서 다져진 돼지거름을 10월 보리농사 때에 맞추어 마당에 퍼내게 됩니다. 돗통시에 오래 다져졌기 때문에 돼지 거름을 쇠스랑으로 찍어야 파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마당에 널리 펴고 거기에 보리씨를 골고루 뿌립니다.

그리고 마소를 몰아다 보리씨와 거름이 잘 섞여지도록 밟아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름을 긁어 한 곳에 모아 2, 3일 동안 쌓아두었다가 밭에 실어가서 거름 묻은 보리씨를 손으로 뜯어가며 파종하였던 것입니다. 돼지거름을 담아 나르는데 사용했던 것을 ‘돗거름착’이라고 하는데, 보통 질메 채운 마소의 등에 지우거나 사람이 등짐으로 져 날랐습니다. 돗거름은 비료가 없던 시절, 척박한 땅에서 밭의 지력(地力)을 높이는데 더 없이 귀중하였던 재료였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벌써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88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대대적인 생활개선 사업이 사회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당시 돗통시도 대부분 헐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위생적인 전래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돗통시가 사라지면서 정화조를 이용하는 수세식의 화장실이 보급되었던 것입니다.

돗통시의 철거는 단지 화장실의 개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숱한 사연을 담았던 가옥 공간의 상실이라는 점에서 검은 도새기, 돗거름, 처첩간의 갈등으로 초래한 측도부인의 동티도 이제 더 이상 우리 제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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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2014-07-31 13:14:43
이제 제주출신 중장년들이 없어지는 앞으로 삼사십년후에는 제주 민속은 죽어있는 박제품이 되고 말것입니다. 관련 학자 연구자 들이 김동섭선생님이 열정을 본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여러 단체들이 많이 있는데 분발해야 될 것같습니다.

셋째 2014-07-31 13:09:07
육지출신 제주인이으로서 바깥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민속을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대부분 "뭐 뭐 하였다고 합니다" 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외지인이 느끼는점을 다양하게 조사하여 정리하는게 좋치 않을까 합니다.

둘째 2014-07-31 13:03:49
어떻게 보면 제주사람이 아니지만 제주사람이상으로 제주의 민속을 연구하는 김동섭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껴야되는것이 맞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쉬운것이 기고문들이 모두 본인이 체험하지 못했던 사실들이기 때문에 진실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글쓴이가 체험하지 못한 민속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는 대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차라리 채록하였다면 채록된 경위를 밝혀주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제주의 것에 대하여 2014-07-31 12:55:08
저는 이글을 비방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비판 할려고 합니다.
김동섭선생님이 기고문을 여러차례 읽으면서 느낀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우리 제주사람들이 게으르구나 - 돗궤기와 돗거름에 관한 이야기는 40대중반 이상이면 다 아는 내용인데 우리는 알고 있음으로 해서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성입니다.

민속에 대하여 2014-07-31 12:54:16
저는 이글을 비방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비판 할려고 합니다.
김동섭선생님이 기고문을 여러차례 읽으면서 느낀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우리 제주사람들이 게으르구나 - 돗궤기와 돗거름에 관한 이야기는 40대중반 이상이면 다 아는 내용인데 우리는 알고 있음으로 해서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