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에 휘둘리는 건축] <3> 세상에 대한 존중이 없는 건축주
언젠간 사라지고 말 걸 애쓰게 붙잡은 모양새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건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이하 수산검역본부)를 보니 그렇다. 헐리고 말 것을 시간만 좀 늘려놨을 뿐이다. 다시 철거 공사가 재개돼 조만간 세상에서의 영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한 개인의 작품이어서가 아니었다. 공공영역의 건물이기에, 이를 통해 도심에 활기를 일으킬 ‘재생’을 해보자는 몸부림이었다. 개인건축물을 없애는 건 극히 개인적이지만, 공공영역은 다중이 함께 논의를 하는 공간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런 몸부림을 하는 이들을 곱게 봐주는 이들은 없었다. 원도심에 산다는 이들은 ‘재생’을 하자고 외치는 이를 향해 쌍욕을 해댔다. 한 사람을 향해 다중이 돌팔매를 하는 마치 ‘마녀사냥’을 하는 듯했다.
행정도 사실 ‘철거하지 말자’는 이가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공개적인 설명회를 내세우며 “주민의 의견은 철거뿐이다”며 철거를 정당화시키는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건축물을 다루는 설명회엔 건축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철거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순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수산검역본부 취재를 하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 200평에 달하는 공공건축물의 설계단가가 평당 10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건축 현장에서조차 이해를 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엔 공사비에 따른 설계 단가 요율을 정하고 있다. 이 기준에 수산검역본부를 대입시키면 허망한 결과가 나온다. 제주시에서 지급한 설계비는 정당하게 받아야 할 설계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부러 수의계약을 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제주지역에도 건축문화가 점차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새로 개발되는 지구엔 볼만한 건축물이 있다. 건축주는 왜 볼만한 건축물을 가지려 할까. 자신의 건축물을 부각시키고, 그 땅에 대한 자존도 높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건축주는 건축가의 얘기를 도통 듣지 않는다. 무조건 싸게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답은 뻔하다.
어떤 이들은 설계를 대충대충 행하는 작업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설계를 하는 일이 ‘뚝딱’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며칠을, 몇 개월을 밤낮없이 매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축계획서를 작성하고, 법규도 검토해야 한다. 도면은 매우 복잡하다. 실내 마감과 배치도, 주차계획도, 각층 지붕 평면도는 말할 것도 없다. 입면도와 단면도, 투시도가 들어간다. 그밖에도 너무 많아서 지면으로 쓰기에 벅차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거쳐 땅 위에 세워질 건축물의 밑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전에 기자가 쓴 기사에 달린 댓글엔 설계비를 싸게 줬다고 칭찬하는 이들도 있었다. 싸게 준 게 아니고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인데 말이다.
제주시 일도1동이 수산검역본부를 없애고 난 뒤 들어설 복지회관은 신축건물이기에 앞으로 최소한 50년은 이 일대의 중심건물이 돼야 한다. 왜냐하면 원도심 재생 문제는 반드시 화두가 되기 때문이다. 원도심 일대를 아우르는 건축물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이를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 일도1동 복지회관은 지금 살아 있는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어서는 안된다. 나중에 원도심에 살아가야 할 이들까지 생각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설마 제주시는 수십년후에 일도1동 복지회관을 다시 헐어내고 지을 생각은 아니겠지. ‘무조건 싸게’만 외치는 건축주인 제주시는 이 점을 명심하라. >끝<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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