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제주대에 민속자료 3만점 모두 기증한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
196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설박물관이 만들어진다. 사설박물관 1호를 만든 주인공은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78)이다.
그는 50년간 제주 민속에 한 몸을 바쳤다. 그러나 박물관 자리가 삼양동으로 옮겨진 데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79년, 제주민속박물관 부지는 ‘제주도립 민속자연사박물관’ 부지로 수용된다. 박물관 전시실을 포함해 1500만원에 강제 수용을 당한다. 그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에 불복에 소송을 제기했고, 승리를 했으나 아픔만 남게 됐다.
그런 고난도 있었지만 그는 한 길을 걸으며 민속에 매달렸다. 그 결과 자신을 짓눌려온 모든 것들을 훌훌 털게 됐다.
진성기 관장은 28일 제주대 본관 2층 회의실에서 박물관 소장품 전체를 제주대에 기증하는 협약식을 가졌다.
그가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는 3만점이 넘는다. 민요 1500여점, 속담 2000여점, 전설 6000여점 등 일일이 세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가 이렇게 발품을 팔며 제주의 민속자료를 모은 이유는 있다.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문화권을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제주대에 자료를 기증하는 이날도 그 점을 강조했다.
“제주도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왔어요. (기증한 자료를 통해) 세계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유산으로 가꾸길 바랄게요.”
그러면서 그는 ‘짐을 내려놓았다’면서 쉽지 않았던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기도 했다.
“무거운 짐을 벗게 돼 홀가분합니다. 생애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에요. 제 나름대로는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혼자서 유물을 모으고 지키려 애썼죠. 다시 생각하니 가장 미련하고, 멍청한 행동이었어요. 이렇게 짐을 벗으니 편안하기만 합니다.”

그는 제주민속박물관을 ‘보배를 지키는 곳’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가졌다. 이날 협약식으로 그의 소장품은 모두 제주대박물관으로 떠나게 된다. 그가 말하는 ‘보배’는 그의 자서전인 「보배를 지키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다시 찾을 수 없는 것. 그것이 곧 보배이며, 그것은 또한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겨레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고 있는 유물들이 있다면 그것도 참뜻으로 보배가 될 것이다. 그것들은 한 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되살아날 수 없다.”(진성기 저 「보배를 지키는 마음」에서 일부)
50년간 조상들의 유물을 찾아낸 진성기 관장은 이젠 모든 걸 내려놓았다. ‘한 번 잃어버리면 영원히 되살아날 수 없다’고 했듯이 그가 모은 것들은 이젠 새로운 부활을 꿈꿔도 좋을 듯하다.
제주대는 진성기 관장의 소장품을 모두 받아들여 제주대박물관을 한층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됐다. 제주대는 현재 제주민속박물관에 전시중인 작품은 9월까지 이전을 완료하고, 12월까지는 제주민속박물관 창고에 보관중인 유물을 옮기는 건 물론 목록정리 등을 거쳐 상설전시실을 만들 계획이다.
‘자료 모두를 기증한 배경을 묻자’ 그는 “내 뒤를 이어 후배가 이런 일을 해주길 바란다”면서도 “이름표처럼 따라다닌 ‘민속박물관’이 사라지는 것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허·허·허”라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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