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에 휘둘리는 건축] <2> 공사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설계비
646㎡ 설계에 1799만원…공사비 기준으로 하면 4천만원은 넘게 받아야
646㎡ 설계에 1799만원…공사비 기준으로 하면 4천만원은 넘게 받아야
건축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저가 경쟁’에 휘말리고 있다. 제값을 받는 ‘토목’에 비해서 늘 저평가되며 뒷전으로 밀리는 직종이 ‘건축’이다. 제주도내 사회도 각종 개발이 이뤄지면서 ‘토목’은 가치 있게 쳐주지만 제주도를 제대로 디자인해야 할 ‘건축’은 냉대를 받고 있다. 게다가 공공영역에서 이뤄지는 건축설계용역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제주시 일도1동에 위치한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이하 수산검역본부)를 중심으로 관련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수산검역본부를 철거한 곳에 새로 지어질 건축물의 연면적은 1층과 2층을 포함해 646㎡(195평)다. 제주시는 새로 지은 건물을 경로당과 주민복지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제주시는 지난해 1회 추경 때 관련 예산을 첫 반영한다. 이 때는 설계비만 포함된다. 제주시는 수의계약을 하기로 하고, 예산 2000만원을 반영시켰다. 수의계약의 한계는 2000만원 미만이다.
제주시가 수의계약을 통해 건축사사무소에 직접 지불한 비용은 얼마일까. 수의계약을 하더라도 업체에 지급되는 예산은 늘 깎이기 마련이다. 제주시 일도1동에 알아본 결과 1799만8200만원이 건축사사무소에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195평에 달하는 건축물을 1799만8200원에 설계를 맡겼다면, 평당 건축설계 단가는 9만2000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싼 걸까, 비싼 걸까. 설계용역비로는 합당하기는 한 걸까.
현업에 종사하는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들과 직접 통화를 했더니 ‘터무니없이 낮다’는 답을 얻었다.
A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공사는 최소 평당 20만원은 받는다. 싸야 15만원이다”고 말했다.
B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195평에 달하는 건축물을 1799만8200원에 설계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수의계약을 하려고 짜맞췄네”라고 단박에 그런다.
어떤 이는 “창고 건축물이냐”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제주시는 지난해 10월 설계를 모두 마친 뒤 올해 예산에 공사비 9억원을 반영한다. 공사비는 건물매입비 등이 제외된 순수 공사만을 일컫는다. 수산검역본부 철거 및 폐기물 처리 비용 7000만원을 제외하면 순수 공사비는 8억3000만원이 된다.
일단 업계의 얘기대로는 설계비 단가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이를 확실하게 해 줄 근거자료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왜냐하면 설계단가는 발주를 하는 곳과 설계를 맡는 곳과의 계약 관계이기에 ‘싸다, 그렇지 않다’를 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사비도 195평에 적절한 것인지도 기자로서는 확인하기 쉽지 않다.
다행히 조달청이 지난달 ‘2013년 공공건축물 유형별 공사비 분석 자료집’을 내놓았다. 여기엔 노인복지시설인 경우 ㎡당 공사비 단가가 최저 164만3000원에서 최고 224만9000원으로 잡혀 있다. 신축될 일도1동 복지회관에 대입을 하면 10억6137만원에서 14억5285만원이라는 답이 나온다. 일도1동 복지회관 신축 공사비 8억3000만원은 큰 액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설계비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기자가 조달청 건축설비과를 통해 “공사비 분석이 아닌, 설계비를 분석한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그러나 현업에서 일하는 건축사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공공발주사업의 기준이 되는 게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바로 국토교통부에서 고시한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이었다. 이 기준은 건축사의 건전한 육성과 건축설계 및 공사감리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평당 단가는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공사비 규모에 대해 설계비의 요율을 정하고 있다.
건축사법 제19조에도 공공발주사업을 하는 기관은 건축사의 업무에 대해 적절한 대가를 지급하도록 명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공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이다.
제주시 역시 공공기관이다. 그렇다면 제주시는 이번 사안과 관련, 건축사의 업무에 대해 적절한 대가를 지급한 것일까.
국토교통부 고시는 건축설계 대가요율을 정하면서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서 1~3종을, 도면작성 구분은 기본·중급·상급으로 나누고 있다. 도면작성 ‘기본’은 인허가 관련 최소한의 도면만을 요구하는 것으로 대가요율이 가장 낮다. ‘중급’은 공종별 공사비 산정을 위한 설계도서를 작성하는 경우, ‘상급’은 중급에 비해 더 세부적인 공사비 산정을 위한 구체적인 도면을 요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가요율이 가장 높다.
대개 노인복지시설은 2종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도1동 복지회관을 2종으로 구분하겠다. 그렇다면 요율은? 인허가를 받기 위한 설계를 진행한 것이 아니기에 일도1동 복지회관은 ‘중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진1>을 참고하면 공사비가 5억원인 건축물의 설계 대가요율은 5.74%다. 10억원이면 4.91%로 대가요율이 다소 떨어진다. 공사비가 5억원에서 10억원 사이인 건축물의 대가요율은 국토교통부 고시의 ‘직선보간법’을 따르면 된다.
<사진2>의 직선보간법에 따라 계산을 하면 공사비 8억3000만원(앞서 제기했지만 공사비가 많은 편은 아님)인 일도1동 복지회관의 설계 대가요율은 5.19%가 된다. 즉 8억3000만원의 5.19%는 4307만7000원이다. 8억3000만원의 공사비가 들어가는 공공건축물의 설계 대가로 지불해야 할 적정 설계비는 4307만7000원이어야 한다는 답을 도출하게 된다.
실제로 제주시에서 건축사사무소에 지급한 1799만8200원과 기자가 공사비를 대입해서 도출한 4307만7000원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 둘 가운데 뭔가가 심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는 공사비를 기준으로만 했더니 이런 답을 얻었다. 공사비를 부풀려 설계 단가를 조정하지도 않았다. 일도1동 신축 복지회관의 공사비는 조달청 공사비 분석자료에서 드러났듯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설계 단가가 이렇게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의계약을 하기 위해 그렇게 했거나, 제주시가 싼 값에 일을 진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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