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에 휘둘리는 건축] <1> 저가 경쟁을 막을 건 공공기관 뿐이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저가 경쟁’에 휘말리고 있다. 제값을 받는 ‘토목’에 비해서 늘 저평가되며 뒷전으로 밀리는 직종이 ‘건축’이다. 제주도내 사회도 각종 개발이 이뤄지면서 ‘토목’은 가치 있게 쳐주지만 제주도를 제대로 디자인해야 할 ‘건축’은 냉대를 받고 있다. 게다가 공공영역에서 이뤄지는 건축설계용역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제주시 일도1동에 위치한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이하 수산검역본부)를 중심으로 관련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건축사’는 자격증을 말하는 이름이다. 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거쳐야할 게 있다. 건축학부 체제가 4년에서 5년제로 바뀌면서 자격증을 따는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됐다.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5년을 거쳐야 한다. 여기에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3년 이상 실무수련을 받아야 한다.
대학 5년과 실무수련 최소 3년을 포함하면 8년이다. 8년이면 건축사라는 자격증이 주어지느냐? 그건 아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건축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이 된다.
20세에 대학의 건축학부에 들어간 학생이 병역의무까지 마친다면 빨라야 30세에 시험을 치를 자격을 주는 셈이다.
건축사라는 자격증을 따더라도 숱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고학력자인 건축사들이 고향 제주에 내려와서 건축사사무소를 차리면 그 때부터 또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수백곳이 넘는 건축사사무소와 피말리는 수주 경쟁을 해야 한다.
‘건축사’가 면허를 일컫는다면, 직업으로서의 건축을 말할 때는 ‘건축가’라고 한다. 건축가는 학생들의 장래희망 순위에서 항상 높은 곳을 차지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광풍에서 봤듯,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앞서 지적했듯이 숱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고생을 했으면 그에 적절한 보상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고학력자인 그들이 일을 하면서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그런 대우를 받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상당수의 건축가들이 저가 경쟁에 휘말리고 있다.
그런 저가 경쟁을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있다. 바로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에서 사업을 발주하면서 설계용역 대가를 제대로 준다면 저가 경쟁을 피할 수도 있다. 제주도다운 디자인을 구상하고, 뛰어난 건축물을 제주도라는 땅에 안겨주려면 그런 행정의 노력은 필수적이다.
요즘 제주시 원도심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수산검역본부’는 건축물 철거와 보존의 양갈래에서 피튀기는 혈전을 하고 있다. 철거를 외치는 쪽은 노인들을 위한 번듯한 새 건물을 올려야 한다고 하며, 철거 반대 쪽은 원도심의 기억을 살리면서 노인들이 쉴 수 있게 리모델링을 하자는 주장이다.
수산검역본부는 보존보다는 철거를 해야 한다는 쪽의 목소리가 높다. 조만간 이 건축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다.
수산검역본부가 사라지면 ‘일도1동 복지회관’이라는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선다. 신축 건축물의 공사비는 2014년도 예산에 9억원이 반영됐다. 하지만 설계는 공사비가 반영되기 전인 지난해 10월에 마무리됐다. 기자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왜 먼저 설계를 했을까’라는 것이다. 설계를 먼저 할 수도 있겠지만 통상적인 절차와는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계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지불했을까. 취재 결과 그건 아니었다. 평당 설계 단가가 10만원도 되지 않는 저가였다. 공공발주에 10만원도 되지 않는 건물은 없다. 창고 건물이 아닌 이상.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