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窓] 제주시 일도1동의 ‘복지회관 신축사업 주민 설명회’를 보고
세상에 부끄러운 일들이 참 많다. 오늘(18일) 그 현장을 목도하고야 말았다.
제주시 일도1동에서 ‘일도1동 복지회관 신축사업 주민 설명회’를 한다고 하길래 카메라를 걸메고 나섰다. 요즘 들어 ‘도시재생’이라는 말이 화두가 돼 있기에 이날 설명회에서 뭔가 나올 것으로 기대를 하고 갔다. 전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기에 일도1동의 설명회는 제주시 원도심의 도시재생에 새로운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걸 믿은 기자가 잘못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부끄러웠다. 계속 설명회를 지켜보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1시간정도 듣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부끄러워서 더 이상 자리를 지키는 게 시간낭비일 정도였다. 건축 전문가는 단 한명도 없는 설명회를 뭐라고 해야 할까?
도시재생 차원에서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가자”고 말한 이는 설명회 자리에서 초죽음이 됐다. 그렇게 말하는 1명에게 수십명이 폭언에다 고성을 질렀다. 그게 무슨 설명회인가.
그건 일도1동의 작전에 다름 아니다. 애초 일도1동은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를 뜯고, 복지회관을 신축하기로 했다. 설계는 이미 끝난 상태이기에 뜯지 말아달라는 사람이 불편했을 게 뻔하다. 그래서인지 이날 설명회는 건축 전문가도 없이 진행됐다.
일도1동 이성희 동장이 모든 걸 주도했다. 이성희 동장 자신이 나서서 복지회관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이성희 동장은 그러면서 2개의 도면을 보여줬다. 하나는 이미 설계가 돼 있는 복지회관 평면도, 또다른 하나는 원형을 보존하도록 한 중재안이다. 이 중재안은 제주대학교 김태일 건축학부 교수가 그렸다. 잘 나가는 교수의 중재안이니 주민들이 잘 경청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중재안도 주민들로부터 힐난의 대상이 됐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 하나이다. 건축 전문가도 없이 진행된 설명회였기 때문이다.
일도1동이 이겼다. 건축가 없이 진행함으로써 원하는 걸 얻었다. 이젠 행정절차에 따라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건축물을 지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설명회라면 뭔가 얻을 게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도시재생이 화두라면 왜 이런 중재안이 나왔는가라는 설명이 곁들여져야 하지만 건축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도시재생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건축물을 뜯지 말자고 한 1명만 인민재판을 받는 꼴이 됐다.
아쉽다. 도시재생을 말 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오늘 설명회를 기회로 일도1동도 도시재생의 선두주자로 나설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건축가를 모셔놓고 왜 도시재생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음으로써 ‘철거하지 말자’고 말한 사람만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어쨌든 일도1동은 목표를 이뤘다. 반면 도시재생을 해야 하는 이들은 이젠 설 자리를 잃게 됐다. 도내 건축인들은 더 문제다. 도시재생을 말하려면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고, 주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러는 건축인들은 없다. 뒤에서 말해봐야 누가 도시재생을 알아주나. 페이퍼로 말하는 도시재생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정부는 지난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정도로 도시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특별법을 만든 이유는 원도심처럼 활력을 잃고 있는 곳의 경쟁력을 키우고,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서 주민 한 분은 “이건 노인네 건물이다”고 톤을 높여 말했다. 제주도의 현실을 압축한 말이다. ‘노인네 건물’이니 아무도 건들지 말라는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도시재생이라는 말이 먹히겠나. 마냥 부끄럽다. 그냥 다 부숴버려라.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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