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판 baby farming: 베이비박스
21세기 한국판 baby farming: 베이비박스
  • 임애덕
  • 승인 2014.07.04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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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생명위원회 칼럼] 임애덕 사회복지법인 청수 이사장

20세기 초 서구에 개인 간 아기를 맡기는 baby farming 제도가 있었다. 그것은 때로는 인신매매의 도구로 활용된 적이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유료보육원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baby farming’ 관행은 아동보호와 입양법의 개혁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유료 보육원 중 가장 악명이 높고 극악한 사례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매킨 부부(the Makins)사건에서 드러났다. 1892년 11월 매킨 부부가 아기를 키워줄 조건으로 미혼모로부터 아기와 돈을 받지만 미혼모가 떠난 후, 매킨 부부는 아기를 살해하고 마당에 묻고 또 다른 아기를 찾아 나섰다. 조사경찰은 그 잔인한 부부가 살았던 집 뒷마당에 12개의 영아기 시신을 발견했는데 이런 아동유기와 baby farming과 같은 문제 때문에 1902년 아동보호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료보육원(baby farming)관행은 20세기 중반까지도 계속되었고 공개적으로 신문에도 홍보되었다. 주정부는 그런 광고에 뒤따르는 개인 간 영아를 거래하는 ‘입양’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1923년 입양법이 마련되기 이전 호주의 입양은 양부모에 의해 서명된 문서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친부모들은 언제든지 아동을 데려갈 수 있었다. 입양부모는 이런 조건들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완전 고아’가 아닌 경우 입양하기를 꺼려했다. 이런 baby farming이 21세기에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엄마가 아기를 돌보지 않는다면 말하지 못하는 아기들은 누구에게 의존할 수 있을까?
 
몇 달 전 10대 후반 아기를 낳은 산모를 만났다. 미혼모의 가족은 입양을 결정하였지만, 아기의 친할아버지(미혼부의 아버지)가 아기를 양육하겠다고 하여 미혼모측에서 양가 대면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일반적으로 미혼부 가족들은 아기양육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양육을 원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잘 생긴 곧 20세가 될 아들과 아버지가 왔다. 무릎을 꿇으면서 "아들이 잘못했으니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아기는 내 핏줄이니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미혼모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쌓아왔던 울분을 터트렸고 제발 딸의 인생을 생각하고 아기 입양에 동의해달라고 사정했다. 미혼부의 아버지는 딸을 며느리로 데려가겠다고 요청했다. 그렇지만 결국 서로 소리 지르면서 헤어졌다.

미혼모의 어머니에게  아기를 보냈을 때 딸의 인생과 아기를 키울 때 딸의 인생이 무엇이 다를 수 있는지를 물었다. 어머니는 딸이 대학교육을 받아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한다고 했다. 미혼모의 어머니는 ‘임신과 출산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 '베이비박스'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기에게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싶었다. 아기를 쓰레기처럼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라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혼모의 어머니는 미혼부의 아버지를 향해 '핏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아기를 데려가서 키우라'고 떠밀었다. 미혼부의 아버지도 결국 포기하고 입양을 결정했다. 아기는 물건처럼 떠밀리다 7일간의 입양숙려기간이 끝난 뒤 결국 입양기관으로 보내졌다. 그 후에도 미혼모 원 가족들은 아기가 입양될 때까지 친자등록이 남아 있을 것에 대해 심히 부담스러워했다. 대부분의 입양 결정한 엄마들은 바로 이 부분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정작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홍 글씨처럼 남겨진 문서인가? 죄책감인가? 생명을 함부로 다룬 것인가? 입양법제는 아기를 버린 것에 대한 법적 면죄부를 줌으로써 죄책감까지 씻어줄 수 있었다. 입양이 오히려 책임 있는 결정이라는 신화로 쉽게 가족과 지역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타협하고 자신을 속이고 살아가는 경우가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입양은 합법적 절차를 거친 제도이다. 최근 아기로 넘쳐난다는 베이비박스는 미혼부모에게 아기생명을 쉽게 버릴 수 있는 장치로서 시대에 역행하는 괴물이지만 세간에 동정과 로맨틱한 이야기로 미화되고 있다.
 
쓰레기통이나 변기에 아기를 버리는 대신 베이비박스에 갖다놓는 것은 그래도 착한 것 아니냐하면서 로맨틱한 위안을 삼아야할까?

베이비박스를 묵인하는 사회는 영아유기를 묵인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영아유기가 범죄인 우리 사회는 그것을 왜 묵인하고 있을까? 게다가 누가 베이비박스를 미화하고 있을까?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기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왜 엄마들은 베이비박스로 향하고 있는가? 2014년 대한민국은 경제, 법제, 여성권한, 아동인권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모든 태어난 아동에 대해 양육을 책임질 수 있는 사회로 변화했다. 그런데 베이비박스는 수십 년 전 전시 또는 공단의 뒷골목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가는 느낌이다.

2012년부터 7일간 입양숙려제가 시행되었고, 입양될 때까지 가족관계등록을 의무화시켰다. 그런 의무들은 새로운 관행들을 불러왔다. 그 중 최악의 상황은 바로  베이비 박스관행으로 보인다. 그것은 20세기 초 서구에 있던 baby farming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영아유기관행을 묵인하는 것은 아기 생명에 대해 한국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 정치적 발전과 함께 사회적 인식과 관행도 성숙해야할 것이다. 미혼모의 양육 환경조성을 위해 인식개선에 주력해야한다. 그게 시간이 걸린다면, 적어도 사회적 부작용과 악습을 유도하는 법제를 개정해야 한다. 입양을 원하는 미혼모들에게 영아유기나 영아살해를 막아야한다. 7일간의 입양숙려제와 가족관계등록의무제에 현실적 욕구를 반영한 법제 변화를 가져와야한다. 그래서 밤중에 몰래 갓 태어난 아기를 길바닥, 쓰레기통(베이비박스), 변기에서 영아를 살해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 임애덕 사회복지법인 청수 이사장 <미디어제주>
<프로필>
사회복지법인 청수 이사장
애서원장
BPW한국연맹제주클럽회장
한국여성복지연합회부회장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출강
이화여대 영문과 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석·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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