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홍기확
  • 승인 2014.06.10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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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52>

어릴 적 동네의 골목과 넒은 공한지는 아이들이 모이는 광장(agora)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저녁 먹기 전까지 자기들끼리 모여 놀았다. 시간약속은 필요 없었다. 항상 골목과 광장에는 아이들이 바글거렸다.
골목문화는 육아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오빠는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오고, 언니는 아장아장 걷는 남동생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수십 명의 아이들은 본인들도 놀며 아기들을 눈치껏 돌본다.
한편 엄마들은 이 때 밥을 하거나 집안일을 한다. 아이들이 없을 때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마당을 청소하며 빨래를 넌다. 물론 아빠들은 보통 직장에 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대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같이 밥을 먹으며 밥상머리 교육을 받는다. 그러고는 막내삼촌과 30분을 놀고, 막내고모와 30분을 논다. 또한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스스로 30분을 논다. 그러면 밤은 깊어 잠에 든다. 물론 아빠나 엄마는 이때 TV를 보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얘기하며 쉬고는 하루의 피로를 정리한다.

이렇게 본다면 출산율의 저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골목문화의 붕괴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와도 동네에 놀 친구들이 별로 없다. 친구를 찾기 위해서는 학원을 다녀야 한다. 골목은 텅텅 비고, 아이들은 점점 친구가 아닌 부모와 논다. 부모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두 번째는 대가족의 해체다. 과거에는 식구들이 많아 평균적으로 5~10명의 어른들이 한 명의 아이를 돌봤다. 지금은 3~4인 가족으로 보통 엄마 혼자나, 아빠가 거드는 식으로 한 명의 아이를 1~2명이 돌본다. 게다가 맞벌이는 대가족 해체와 아주 멋들어지게 맞물려 육아는 더욱 힘들어져 가고 있다.

덧붙여 세 번째 원인을 말하자면 아빠의 육아부담 증가다. 전 세계에 ‘유일’한 미국의 ‘프렌디(Frendy, Friend+Daddy, 친구 같은 아빠)’ 문화를 어떻게 들여왔는지, 언론과 TV, 육아서적은 이게 세계의 추세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과거 아빠는 일을 다녀와서 쉬었지만, 이제는 일을 다녀와서도 아이와 놀아야 한다. 요즈음은 퇴근 후 및 주말에 아이와 놀지 않으면 간 큰 아빠 취급을 받는다. 간 큰 남편도 부족한데!

동양의 육아 문화는 고사하고 유럽의 어느 국가도 자유방임적이고 나약한 “프렌디”문화는 없다. 아직까지 전 세계 육아의 대세는 친근하지만 엄격한 아빠다. 자율과 통제를 가르쳐 주는 객관적인 아빠다. 낭만의 도시 파리가 수도인 프랑스에서도 부모들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엄중하고 날카로운 어조의 “기다려!”이다. 아이는 통제 안에서 훨씬 잘 놀고 편안해 한다는 애착이론과 연관된 연구결과도 상당히 많다.
결론적으로 앞선 이유들로 엄마들이 아이 낳는 걸 거리끼는 것처럼, 이제는 프렌디의 압박으로 아빠도 아이 낳는 걸 꺼린다. 부부의 이러한 의사가 합치된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 내 친구들 중에는 합의하여 아이를 낳지 않은 부부가 꽤 된다.

나 역시 아이를 한 명 밖에 낳질 않았으니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에 대해 떳떳하진 않다. 조금 미안한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출산율(1.13명, 2013년)이라는 수치를 보면 우리 가족은 보편적인 핵가족이자 평범한 가정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 한 명을 잘 키우는데 오롯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차피 대가족과 골목문화는 해체되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친구 같은 아빠는 환상이요 현실과 맡지 않는 얘기다. 범람하는 육아서적을 50권 넘게 읽은 후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엄마의 육아방식 논의는 둘째 치고, 아빠의 육아방식은 분명 엄마와 달라야 한다. 그 방식은 전통적인 육아방법의 고수나 어수선한 프렌디 문화가 아닌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은 교육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애정을 남긴다면, 아빠는 아이에게 정신적 유산을 남겨야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성인 이전에 든든한 응원군이 된다면, 아빠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평생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의지력을 전달하고 삶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기 자식을 낳고 키울 때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도,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린 후 어깨를 활짝 펴야 한다.

의무처럼 친구 같은 아빠, 프렌디(Frendy)인 척 하거나 한 쪽으로 쏠리지 말자. 피곤할 때는 당당히 말하고 쉬며, 아이와 놀 수 있을 때는 화끈하게 놀자. 현재 짧은 아빠의 육아시간을 하루하루 조금씩 늘리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아이는 쑥쑥 자라 언젠가 아빠를 떠나 독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나 더 길게 아이의 미래에 영혼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는가도 분명 커다란 의미가 있다. 임팩트 있는 감동적이고 울림 있는 교육은 아버지의 몫이다. 언제까지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엄마가 둘 일수는 없다. 둘이서도 안 된다. 아빠는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빠는 아빠다워야 한다. 우리들의 아버지도 그랬다. 자신의 역할을 곰곰이 생각하여 입장을 정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
지금의 아빠들은 혼란 그 자체다. 자신이 과거 아버지에게 교육받은 것들, ‘아버지’의 역할과 세상이 떠드는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교육, 친구 같은 ‘아빠’라는 역할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역할갈등이다. 갈등의 원인은 본인과 외부 둘 다에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이제, 본인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해보자. 어떻게 아빠로써 자신의 역할을 정립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답은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

나는 미국의 ‘프렌디’가 아니다. 그저 우리 아버지 아들이다. 그리고 내 아이는 내 아들일 뿐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시대가 바뀌어도 보통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나는 내 길을 간다. 내 길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내가 아버지에게 교육받은 것을 조금 더 개선해서 내 자식에게 교육을 시킬 것이다.
1년전 자기계발서 읽기에 마침표를 찍은 것처럼, 이번에는 육아서적 읽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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