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절대 포기 불가라는 불편함
절대 포기 불가라는 불편함
  • 홍기확
  • 승인 2014.05.15 1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50>

영국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윈스턴 처칠(1874~1965). 수상 직에서 퇴임 후 옥스퍼드 대학의 졸업식 축사를 맡게 되었다.
자리에 오른 처칠은 1분여간 침묵했다. 그리고 축사를 시작했다.

“포기하지 마세요(Don’t give up).”

학생들은 더욱 기대를 하게 되었다. 시작이 남다른 축사. 설렘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처칠은 30초의 침묵 후 조금 더 큰소리로 한마디를 던진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Never give up).”

다시 침묵은 계속되었다. 팔삭둥이 조산아로 태어나 말더듬이, 학습 장애로 초등학교 때는 전혀 희망이 없는 아이가 처칠이었다. 중학교 때는 국어에서 낙제를 받아 3년이나 유급하며 선생님한테 대학을 갈 수 없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윈스턴 처칠은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도 삼수를 했다.
학생들은 이런 처칠의 과거와 현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졸업식장은 점점 흐느끼는 소리가 커져갔다. 그 때 처칠은 마지막 한마디를 우렁차게 외치고 퇴장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Don’t you ever and ever give up!).

역시 처칠은 위대한 정치가이자 웅변가임에 틀림없다. 졸업식 축사에서 단 세 문장으로 청중을 감동시키고 울리기까지 하다니. 웅변과 수사(修辭)의 격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여기에서 절대(never) 포기하지 말라는 표현이 조금 불편하다.
가끔 농담 삼아 하는 말들이 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라거나, 포기를 모르는 ‘오뚝이 정신’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루에 만 번 이상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빠질 수 없다.
가령 아침에 일어날 때 5분을 더 잘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선택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학교나 회사에 5분 늦게 갈 것이라는 단점과, 5분의 꿀 같은 잠을 추가할 수 있다는 장점 사이에서 고민한다. 바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면 꿀 같은 이불안의 5분을 ‘포기’해야 한다.
대형마트에서도 마찬가지다. 10만원을 예상비용으로 들고 간다고 하면, 다른 곳에 쓸 10만원을 ‘포기’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포기라는 단어를 적잖이 미화시킨다. 이미 투자에 실패한 돈을 포기할 때 사람을 헛갈리게 ‘매몰비용(sunken cost)’이라고 하며, 하나의 선택을 통해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을 멋있게 보이기 위해 ‘기회비용(opportunity cost)’라고 한다.
가장 극적인 포기는 결혼이다. 일부일처제 국가인 한국은 더욱 그렇다. 결혼은 하면 대체로 70억 인구 중 절반인 나머지와 결혼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포기는 세상에 널렸다. 웅변은 큰 목소리로 세상에 널린 것들을 잠재우고, 극적인 감정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절대라는 말이 불편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인생을 그 따위로 살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므로 기분이 더욱 나빠진다.

포기는 죄악이 아니다.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만 대충, 대강은 죄악이다. 적절히, 합리적으로, 시의 적절하게, 융통성 있게라는 포장을 하더라도 대충은 죄악일 뿐이다.
인간이 가진 두 가지 커다란 능력은 기억과 망각이다. 모순되는 개념이지만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쉽사리 세상을 살기 힘들 것이고, 모든 걸 망각한다고 해도 역시 힘겨울 것이다.
흔히 뇌과학자들은 뇌가 가지지 못한 유일한 능력을 ‘학습하지 못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분명 포기함으로써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회복탄력성 지수(RQ, resilience quotient)라는 것도 있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해도 장애, 사업실패, 가족의 죽음 등을 딛고 일어서서 원상태로 회복하는 능력을 말한다. 흔히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극복하고 상실과 역경을 통한 성장(GTLA, growth through loss and adversity)을 말할 때 제기된다.

세상의 신음에 귀 기울인 지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주며, 나는 나를 위로한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